[김용삼 칼럼] 큰 거짓말을 밥 먹듯 해야 큰 정치인 대접 받는 사회
[김용삼 칼럼] 큰 거짓말을 밥 먹듯 해야 큰 정치인 대접 받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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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정치판뿐만 아니라 학계·언론계·지식인 사회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달인, 천재들의 집합소로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그런 현상은 여야, 진보-보수, 좌파-우파, 청년-장년 가릴 것 없이 동일하다. 악취의 주역들이 각자 분야에서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그런 특출난 재주를 가진 인간들이 중용되고 예우받는 시스템이 왕성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정치판의 경우 그런 인간 말종들만 생존하여 후보로 선출되고, 유권자들에게 표를 끌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인면수심의 오폐물들이 국가 운영의 책임을 맡으면, 그 나라가 향하게 될 종착역은 조지 오웰이 설파한 ‘동물동장’의 신세계 아니겠는가.

#. 거짓말을 누가 누가 더 잘하나 게임

대선 시즌이 본격화되면서 또다시 거짓말이 난무하고 있다. 누가 더 큰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잘하는가에 따라 지지율이 출렁거리고,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는다. 여당의 대선 캠프 공동상임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된 육사 출신 30대 워킹맘이라고 요란하게 선전을 해댄 인사가 결혼 후 남편이 아닌 남의 자식을 낳았다고 알려진 불륜 혼외자 출생사건이야 사생활에 해당하는 문제이니 그렇다 치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영입 인사의 추문이 불거지자 “가짜 뉴스” 운운하며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길길이 날뛰었으나 그 추문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개망신을 당했다. 수많은 검증된 사람들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하자투성이 여성을 그 자리에 임명하지 않으면 안 될 무슨 필연적인 곡절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사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무시로 왕래하는 이쪽 동네 사람들의 행동 양태는 조국 법무장관 사태를 포함하여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김경수 드루킹 댓글 조작사건 등을 통해 그 일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바 있다.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이재명 후보는 자신의 가족사 하나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부친 이력에 대해 발언한 것을 모아보면 언제는 화전민 출신이랬다가 광부로 슬그머니 직업을 바꾸더니 이제는 썩은 과일을 먹는 환경미화원 출신이었단다. 도박하다 집문서까지 날리고 야반도주한 상습 도박꾼으로 부친을 능멸하더니 느닷없이 "평생 남의 것 탐하지 않고 성실하게 산 선친", 서울대 출신 등등 여러 차례 말을 바꿨다. 최근 이재명 후보 가족의 증언에 의하면 이 후보 부친은 “전문대학을 나오신 분”이며 “아버님께서 영어 알파벳과 발음기호를 가르쳐 주셨고 그걸 다 외워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느 나라나 거짓말하는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인간들이 선출직에 도전하여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도지사로 당선되는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거짓말 하는 인간은 파멸”한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원리로 확고하게 정착된 것이 인류의  보편적 정의의 원칙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극히 예외 중의 예외의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1986년 이재명 후보가 대학 졸업 당시 부모와 함께 촬영한 사진(출처: 이재명 후보의 저서 『이재명의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 이 후보 아버지의 진짜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1986년 이재명 후보가 대학 졸업 당시 부모와 함께 촬영한 사진(출처: 이재명 후보의 저서 『이재명의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 이 후보 아버지의 진짜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이 나라는 거짓말을 크게 하면 할수록, 그것도 밥먹듯 일상적으로 잘하는 순서대로 국가의 중요 업무를 수행하는 신분으로 수직상승하는 경이와 기적의 나라가 되었으니 인류 문명사 차원에서 연구·실험·분석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정치판뿐만 아니라 학계·언론계·지식인 사회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달인, 천재들의 집합소로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그런 현상은 여야, 진보-보수, 좌파-우파, 청년-장년 가릴 것 없이 동일하다. 이러한 악취의 주역들이 각자 분야에서 왕성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그런 특출난 재주를 가진 인간들이 중용되고 예우받는 시스템이 왕성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정치판의 경우 그런 인간 말종들만이 끝까지 생존하여 대선 후보로 선출되고, 유권자들에게 표를 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인면수심의 오폐물들이 국가 운영의 책임을 맡을 경우 그 나라가 향하게 될 종착역은 조지 오웰이 설파한 ‘동물동장’의 신세계 아니겠는가.

#. 완전 가짜 판타지로 도배질 된 한국 근현대사

필자는 그동안 칼럼을 통해 근현대사의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을 추적하는 작업을 해 왔다. 작업을 하면 할수록 충격과 경악의 연속이다. 도대체 무엇을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역사적 사실이 왜곡·날조·윤색·변조되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예를 들면 미국과 일본이 체결했다는 태프트-가쓰라 밀약(1905)은 완전 가짜였다. 미국이 필리핀을 차지하는 대가로 대한제국을 일본에 넘겼다는 밀약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가짜 밀약을 사실인 것처럼 교과서에까지 실어놓음으로써 전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학자들의 무지와 특정 이념에 함몰된 가치관이 이런 비극의 원천이었다.

올 광복절에 문재인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에 특별기까지 파견하여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가운데 홍범도의 유해를 송환하고 그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그런데 홍범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완전 다른 인물이었다.

그는 공산주의자 이동휘의 감언이설에 따라 1921년 러시아의 자유시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볼셰비키 적군 편에 서서 적군 편입을 거부하는 한국 독립군을 몰살하는 쪽에 가담했던 문제적 인물이다. 그는 한국의 항일독립운동가들을 소탕해줘서 고맙다고 레닌으로부터 격려금과 권총까지 선물 받고, 소련공산당에 입당하여 당원이 된 사람이다. 홍범도가 과연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그에게 1등급 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한 것일까?

홍범도는 1921년 자유시에서 소비에트 적군 편에 서서 한국의 항일무장독립군을 몰살하는 데 가담했던 문제적 인물이다. 그 대가로 그는 레닌에게 격려금과 자기 이름이 새겨진 권총, 군복 한 벌을 선물 받았다. 사진은 최진동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레닌에게 하사받은 권총을 차고 찍은 사진이다.
홍범도(좌)는 1921년 자유시에서 소비에트 적군 편에 서서 한국의 항일무장독립군을 몰살하는 데 가담했던 문제적 인물이다. 그 대가로 그는 레닌에게 격려금과 자기 이름이 새겨진 권총, 군복 한 벌을 선물 받았다. 사진은 최진동(우)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레닌에게 하사받은 권총을 차고 찍은 사진이다.

#. 어떤 독립운동을 했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나라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수적 민족주의 광풍이 휘몰아쳤다. 그들은 스스로를 ‘문민정부’라 정의하고 이승만 정부에서 노태우 정부까지를 건너뛰어 자신들이 상해 임정의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위대한 문민정부가 ‘신한국’을 창조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조작하기 위해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시작했다.

광복 50주년을 맞은 1995년, 김영삼 정부는 민족정기를 회복한다면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던 중앙청 건물을 폭파 철거했다. 이 건물은 1926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총독부 건물로 사용되었고, 해방 후엔 미군정청 청사, 1948년에는 제헌국회 설립, 대한민국 건국이 선포된 역사의 현장이다.

건국 후엔 건물 이름을 중앙청으로 바꾸고 대한민국 정부청사로 사용되었다. 6·25 때 부서진 것을 수리하여 박정희 정부가 사용하다가 전두환 정부 시절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용도 변경하여 국보급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역사 바로 세우기’ 운운하며 강행된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는 제헌국회, 대한민국 건국 현장과 근대화의 상징을 없애는 결과를 가져왔다.

제2탄은 일제가 한국에서 인물이 나지 않도록 명산의 기맥을 끊기 위해 박았다는 쇠말뚝 제거 사업이었다. 몇 개월에 걸쳐 군부대의 지뢰탐지기와 지방 행정기관을 총동원하여 전국에서 18개의 쇠말뚝을 제거했다. 그런데 쇠말뚝 제거 과정에서 일제가 박은 것인지를 검증하는 작업은 국가가 공인한 전문 과학자·기술자·문화재 감정가·학자가 아니라 동네에서 용하다는 역술인·지관·풍수가들이 담당했다. 국정에 미신과 풍수도참을 끌어들인 것이다.

겸영삼 정부는 독립유공자도 확대했는데, 이때부터 확대된 독립유공자의 상당 부분이 사회주의·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였다. “사회주의·공산주의자들도 독립운동을 한 것은 사실이니 당연히 독립유공자로 추앙하는 것은 후손들의 도리 아닌가?”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신다.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에게 묻는다.

“자유민주주의자들은 하늘이 개인에게 준 천부적 자유를 누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 반면에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현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귀하의 세금으로 그 후손들에게 독립유공자라고 칭송하며 연금을 주고 싶으신가?”

#. 볼셰비키 공산혁명 위해 목숨 바친 여성에게 건국훈장 수여

김 알렉산드라라는 여성이 있었다. 정식 이름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 스탄케비치다. 아버지 김두서는 함경도 경원 출신으로, 연해주로 이주하여 우수리스크에 정착했다. 우수리스크에서 태어난 딸 김 알렉산드라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학교를 졸업하고 교원으로 활동했다.

김 알렉산드라는 아버지의 러시아 친구였던 스탄케비치의 아들과 결혼했으나 1914년 이혼하고 1915년부터 우랄 지방 벌목장에서 통역으로 일하던 중 공산주의를 만났다. 예카테린부르크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지부에서 공산주의 이론과 혁명 투쟁 교육을 받고 1917년 볼셰비키당에 입당하여 한인 최초의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이동휘를 공산주의자로 포섭하고, 그에게 공산당을 조직하도록 공작한 김 알렉산드라. 러시아 공산혁명을 위해 투쟁하다 총살당한 이 여성에게 이명박 정부는 2009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동휘를 공산주의자로 포섭하고, 그에게 공산당을 조직하도록 공작한 김 알렉산드라. 러시아 공산혁명을 위해 투쟁하다 총살당한 이 여성에게 이명박 정부는 2009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시베리아가 적백 내전에 휘말리자 볼셰비키당 위원회는 극동에 공산혁명 정권 수립을 위해 김 알렉산드라를 하바롭스크에 파견한다. 당은 하바롭스크시 소비에트 외무인민위원(외무부장)으로 활동하던 김 알렉산드라에게 “이동휘를 포섭하여 공산주의자로 만들고 한국 최초의 공산주의 정당을 창당하라”고 지령했다.

볼셰비키당이 한인 공산주의 조직이 필요했던 이유는 일본이 시베리아에 대병력을 파병하여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백군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인들을 끌어들여 공산주의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한인들을 이용한 것이다. 김 알렉산드라의 공작에 의해 이동휘는 1918년 5월 10일, 하바롭스크의 볼셰비키당사에서 한국인 최초의 마르크스 레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을 창립했다.

이동휘는 레닌으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아 상해 임시정부 공산화 작업을 시도했고, 한인 무장부대를 자유시로 유인하여 몰살시키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이때 홍범도가 소비에트 적군에 가담하여 한인 무장부대 몰살에 일조한다. 김영삼 정부는 이동휘의 이러한 행위를 혁혁한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둔갑시켜 1995년 이동휘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1918년 9월 4일 러시아 백군이 하바롭스크를 점령했는데, 미처 도피하지 못한 김 알렉산드라는 백군에게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처형 직전 김 알렉산드라는 “나는 프롤레타리아트와 소비에트 정권을 위해 싸워왔다. 나는 조선 인민이 러시아 인민과 같이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할 때 국가의 자유와 독립을 얻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외쳤다.

김 알렉산드라는 연해주에서 태어나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고, 볼셰비키당원으로서 러시아 공산화를 위해 투쟁하다 총살당한 인물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김 알렉산드라에게 “조선 독립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치하하여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대체 이 여성이 한인 사회에 공산주의를 퍼뜨린 것 외에 대한민국 건국에 어떤 역할을 했기에 건국훈장을 추서한 것일까?

#. 박헌영의 첫 부인 주세죽에게도 건국훈장 추서

주세죽은 일제 시절 허영숙·고명자와 함께 조선의 3대 여성 공산주의자로 꼽혔다. 함경도 함흥에서 태어난 주세죽은 상해 유학 과정에서 공산주의 청년 지도자이자 한 살 연하의 박헌영과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다.

이후 주세죽은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 집행위원(1924), 경성여자청년동맹(1925)에서 활동했다. 1925년 서울에서 조선공산당이 창당되었을 때 그 외곽단체로 결성된 고려공산청년회에서 남편 박헌영은 책임 비서, 부인 주세죽은 중앙후보위원이 되었다.

1925년 11월, 제1차 조선공산당 검거 선풍으로 부부가 신의주 경찰서에 체포된다. 주세죽은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 남편 박헌영은 수감된다. 박헌영은 감옥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자기 인분을 집어먹는 등 정신이상자 행세를 하여 병보석으로 풀려난다.

1928년 8월, 주세죽은 남편 박헌영과 두만강 건너 블라디보스토크로 탈출한다. 망명지에서 딸 박 비비안나가 태어난다. 모스크바로 간 주세죽은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하여 공산주의 이론을 공부하던 중, 1931년 3월 “상해로 가서 조선공산당 활동을 지도하라”라는 코민테른의 지령을 받는다.

주세죽은 네 살 된 딸을 모스크바 육아원에 맡기고 남편과 함께 상해로 간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딸 박 비비안나는 고아인 줄 알고 육아원에서 외롭게 자라 무용수가 된다. 박 비비안나의 육아원 동기가 중국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이다. 마오안잉은 6·25 때 중공군으로 북한에서 활동하다 미국 폭격으로 사망한다.

2년 후인 1933년 7월 5일, 상해에서 지하 공산주의 조직 활동을 하던 남편 박헌영이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서울로 압송된 박헌영은 징역 6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된다. 상해에 홀로 남은 주세죽은 남편의 친구이자 동료 공산주의자, 유부남 김단야와 눈이 맞는다. 그들은 모스크바로 도피하여 살림을 차린다. 주세죽은 김단야의 아들 김 비탈리를 낳는다.

1937년 11월 김단야는 스탈린의 대숙청 회오리에 휘말려 일제 밀정 혐의로 처형된다. 졸지에 주세죽은 일제 간첩의 부인으로 추락한다. 주세죽은 ‘사회적 위험분자’로 낙인찍혔고, 아들 김 비탈리는 죽었으며, 카자흐스탄으로 유배되어 종신 노동형에 처해졌다.

1939년 가석방으로 대전형무소에서 출옥한 박헌영은 아내 주세죽이 친구 김단야와 눈이 맞아 모스크바로 도주하여 살림을 차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박헌영은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해 지하 활동을 하던 중 정순년이란 여성과 동거하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승려 원경(속명 박병삼)이다. 승려 원경은 1987년 박원순 변호사, 박헌영을 흠모하여 이름까지 ‘임헌영’으로 바꾼 문학평론가 임준열, 서경석과 역사문제연구소를 세워 한국 사회에 좌경 역사관 전파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모스크바의 주세죽 묘비 앞에 선 박 비비안나. 주세죽과 박헌영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남로당 괴수 박헌영의 첫 부인 주세죽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모스크바의 주세죽 묘비 앞에 선 박 비비안나. 주세죽과 박헌영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남로당 괴수 박헌영의 첫 부인 주세죽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해방되자 박헌영은 조선공산당을 재건했고, 남로당을 조직한 후 월북하여 북한 부수상 겸 외무상 등 요직을 맡는다. 카자흐스탄에서 유배형이 끝난 주세죽은 이후에도 피혁공장 개찰원, 봉제 작업장 노동자로 힘겹게 살아야 했다. 고된 노동에 견디다 못한 주세죽은 스탈린에게 여러 차례 옛 남편이 있는 북한으로 보내달라고 탄원서를 제출한다.

옛 남편 박헌영은 자신을 배신한 주세죽의 탄원을 매몰차게 거절한다. 이미 그에게는 새 여자 윤레나(본명 윤옥)가 생겼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조선공산당 대표 박헌영의 비서로 일했던 윤레나는 월북하여 강동정치학원에서 게릴라 훈련을 받는다. 박헌영과 동거하던 윤레나는 1949년 8월 정식으로 결혼했다. 나이 차가 무려 25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에 딸 나탸샤, 아들 세르게이가 태어난다.

고된 노동으로 연명하던 주세죽은 1950년대 중반 사망하여 모스크바 시내 다닐로프 공동묘지에 묻힌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주세죽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훈장은 모스크바에 살던 딸 박 비비안나가 대신 받았다.

박헌영과 주세죽이 참여했던 조선공산당은 자신들의 창당 목적과 행동강령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조선공산당은 국제공산당의 한 지부로서 폭력혁명에 의거하여 공산주의 건설을 목적으로 한다. 조선 문제는 공산당 지도아래 노동자 농민의 결합에 의해 공동전선을 전개하고, 일본제국의 통치를 변혁하여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려는데 있다. 세계 프롤레타리아 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자본주의 일본의 제국주의를 타파하고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족문제 해결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일부로 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민족운동을 원조함은 물론, 전술로서 민족주의적 단체와 제휴하여 이를 이용한다.”

폭력혁명에 의한 공산주의 건설, 사유재산제도 부인,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해 열혈 투쟁하다가 남편까지 차 버리고 공산주의 유부남의 품에 안긴 것이 대한민국 건국에 혁혁하게 이바지한 공로였을까?

이런 인물들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갖다 안기는 행위는 국가 차원에서 전 국민에게 독립운동 거짓말을 강요하는 행위나 다름없는 일 아닌가. 어쩌다 이 나라는 국가 차원에서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나라가 되었을까?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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