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가 선거방송토론회에서 거짓말하는 게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 위해 표현의 자유 보장하게 되면 도리어 민주주의가 위험해지는 딜레마
"국가 간에 오가는 거짓말보다 지도자가 자국민에게 행하는 거짓말이 더 위험"
유권자들, 이번 대선후보자들의 발언 중 거짓말 있는지를 면밀히 살피는 부담

황우섭 객원 칼럼니스트

이재명의 선거방송토론 거짓말에 대해 대법원이 내린 무죄 판결은 선거방송토론의 신박한 문제를 야기했다. 이재명은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켰으나, 선거방송토론회에서 그 사실을 부인하는 취지의 허위사실을 공표한 협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는 무죄를 받았지만, 2심에서는 당선 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을 받았다. 만약 상고심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이재명은 경기지사의 당선이 무효가 되고, 30억원이 넘은 보전된 선거비용도 반환해야 하며, 5년 동안 피선거권도 박탈될 상황이었다. 그러나 2020년 7월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이재명의 거짓말에 대해 ‘허위사실 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후보자가 선거방송토론회에서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논리와 적극적인 거짓말이 아닐 경우 처벌대상이 아니라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주주의를 보장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게 되면 도리어 민주주의가 위험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딜레마 상황이다.

다수의견은 무죄 판단, 소수의견은 ‘허위사실의 공표’에 해당

재판의 쟁점은 2018년 5월 경기지사 후보 선거방송토론회에서 김영환 바른미래당 후보는 이재명 후보가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킨 의혹에 대해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하셨죠?”라고 한 질문에 “그런 일 없습니다. 김영환 후보께서는 저보고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는 주장을 하고 싶으신 것 같은데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답한 것이 ‘허위사실 공표’인지 여부였다. 대법관 11명이 파기환송과 상고기각 원심 확정을 놓고 6:5로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실상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서 재판부는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대법원 선고 2019도13328).

대법관 7명의 다수의견은 “공적ㆍ정치적 관심사에 대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하여는 그 생존에 필요한 숨 쉴 공간, 즉 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중립적인 공간이 있어야 한다”며 “후보자 등이 토론회의 주제나 맥락과 관련 없이 일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드러내어 알리려는 의도에서 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표명한 것이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직선거법에 의하여 허위사실 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고 보았다.

반면 대법관 5명의 반대 소수의견은 “‘공표’의 범위를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다수의견의 논리는 자칫 선거의 공정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 사이의 균형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며 “이재명 후보는 단순한 묵비나 부작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구체적 사실을 들어 거짓 해명을 한 것일 뿐만 아니라, 부하 직원들에게 형에 대한 정신병원 입원 절차를 지시하고 독촉한 사실을 숨기거나 은폐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보아 선거인의 정확한 판단을 그르칠 정도로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으로서 ‘허위사실의 공표’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선거방송토론은 공영제 선거운동, 공정성이 지배적인 실천원리가 되어야

우리의 공직선거법은 후보자 선거방송토론회를 선거운동방법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선거방송토론회는 헌법상 선거 공영제에 기초하여 고비용 정치구조의 개선과 선거운동의 공정성 확대를 위하여 도입되었다. 선거방송토론회는 후보자에게는 별다른 비용 없이 효율적으로 유권자에게 다가설 수 있게 하고, 유권자에게는 토론과정을 통하여 후보자의 정책, 정치이념, 통치철학, 선거쟁점 등을 파악하고 각 후보자를 비교ㆍ평가하여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공직선거법은 ‘당선되거나 되게 할 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거나 하게 한 자’를 처벌한다. 이 규정의 취지는 선거인의 공정한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허위사실을 공표하는 행위 등을 처벌함으로써 선거운동의 자유를 해치지 않으면서 선거의 공정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선거과정에서 유권자에게 허위사실이 공표되는 경우 유권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되어 민의가 왜곡되고 선거제도의 기능과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선거방송토론은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공정성에 최우선의 무게를 두어야 한다. 공직선거 후보자가 선거방송토론회에서 거짓말을 하면 수많은 ‘가짜뉴스’를 언론이 확대 재생산하게 만든다. 미국 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는 ‘국가 간에 오가는 거짓말보다 지도자가 자국 국민에게 행하는 거짓말이 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후보자가 선거방송토론회에서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대법원 판결의 논리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적극적인 거짓말이 아닐 경우 처벌대상이 아니라면 소극적인 거짓말은 용인될 수 있다는 논리도 논란이 확산되기는 마찬가지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거짓말을 허용하고 적극적인 거짓말이 아니면 공직선거 후보자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선거방송토론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공정성이 훼손된 선거는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공정성은 모든 공직선거를 지배하는 실천원리가 되어야 한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방송토론, 선택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우리는 이미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허위사실을 공표하여 선거를 혼란스럽게 만든 대형 사건들을 경험했다. 필자는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역사 못지않게 대통령 선거에서 거짓말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해 왔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지방 선거방송토론에서 거짓말을 했지만, 최종 심급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여느 정치인들처럼 거짓말을 했더라도 일시적인 소동을 일으킨 후 면죄부를 받을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재명 지사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그리고 이재명 후보 재판 건에 참여했던 권순일 대법관이 퇴임 후 대장동 개발사업 시행사인 화천대유에서 고문으로 일하면서 고액의 변호사 수임료를 받은 것이 사후수뢰죄가 될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재판에 영향을 미치거나 의심을 살만한 행위로 인해 이재명의 선거방송토론 거짓말의 대법원 무죄 판결은 다시금 그 정당성이 의심을 받게 되었다.

이재명 후보 거짓말에 대한 법적 판단은 대법원 선고로 일단 종결되었다. 그런데 언론에 관한 사안은 법원 판단에 이어 사상의 자유시장(marketplace of ideas)인 공론장에서 심층적으로 논의해 왔다. 공론장에서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이제 시작되었고, 상당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제20대 대통령 선거방송토론회는 곧 시작될 예정이다. 선거방송토론은 정치인 입장에서는 강력한 홍보 수단이고, 유권자 입장에서는 미디어가 취사선택한 정보가 아니라 후보자의 인격 자질 능력 등을 직접 비교해 볼 수 있는 정보를 접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 선거방송토론부터 유권자들은 진실을 다투는 후보자들의 발언 중에 거짓말이 있는지를 면밀하게 살펴야 하는 부담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정치인의 거짓말에 속든지 받아들이든지, 국가를 이끌어갈 차기 지도자를 평가하는 역할은 유권자들의 몫이 되었다. 지난 지방 선거방송토론회 거짓말에 대해 대법원이 내린 무죄 판결 사건 이후에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방송토론에서 후보자의 거짓말에 대해 유권자들은 어떤 판단을 할지 궁금하다.

황우섭 객원칼럼니스트 (전 KBS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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