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 회중교회가 존재하는가...정답은 ‘그렇다’
“현재 내가 연락이 닿는 북한 지하교회 선교사들은 총 11명”

북한 보위부가 제작한 '종교 광신자' 차덕순에 대한 영상(순교자의 소리 방송 캡처)
북한 보위부가 제작한 '종교 광신자' 차덕순에 대한 영상(순교자의 소리 방송 캡처)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 국가 북한. 김일성은 북한에서 기독교를 ‘박멸’하고 스스로 신의 자리에 올랐다. 북한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발각되면 처형을 당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 그러나 북한에서 비밀리에 신앙을 지키고 있는 이른바 ‘지하기독교인’은 40만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5만~12만, 최대 20만 명은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반인륜적 처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정권의 가혹한 박해와 살해 위험에도 불구하고 북한주민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정권의 삼엄한 감시체제 아래 이들은 어떻게 신앙을 지켜가고 있을까. 이 보고서는 독재 권력과 죽음도 막을 수 없는 영혼의 존재와 자유를 향한 갈망에 대한 기록이다.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 국가 북한. 김일성은 북한에서 기독교를 ‘박멸’하고 스스로 신의 자리에 올랐다. 북한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발각되면 처형을 당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 그러나 북한에서 비밀리에 신앙을 지키고 있는 이른바 ‘지하기독교인’은 40만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5만~12만, 최대 20만 명은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반인륜적 처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정권의 가혹한 박해와 살해 위험에도 불구하고 북한주민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정권의 삼엄한 감시체제 아래 이들은 어떻게 신앙을 지켜가고 있을까. 이 보고서는 독재 권력과 죽음도 막을 수 없는 영혼의 존재와 자유를 향한 갈망에 대한 기록이다.

북한에도 회중교회가 존재하는가

가족끼리 비밀리에 신앙을 지키는 이른바 ‘가정교회’ 외에 영적 리더와 다수의 회중으로 구성된 지하 ‘회중교회’가 북한에 존재하는가에 대해 많은 탈북민들과 선교사들은 회의적이다. 이명희 씨(가명, 73세)는 “북한은 두 사람만 모여도 한 명은 밀정인데 가족들끼리 가만히 모여서 하는 것을 몰라도 그런 것(회중교회)은 있을 수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1998년부터 2001까지 중국에서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비밀 합숙 성경통독반을 운영했던 최광 선교사도 북한에 남한과 같은 회중교회는 존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에도 회중교회가, 비록 초기 단계의 모습일지라도, 분명히 존재한다.

‘비밀 종교망’ 조직한 순교자 차덕순

북한 보위부의 영상에 나온
북한 보위부의 영상에 나온 차덕순이 지하종교망을 조직한 장소(순교자의 소리 방송 캡처)

 

지난 2018년 순교자의소리(VOM)는 단독 입수한 북한 보위부의 선전용 영상을 공개했다. 북한 황해북도 안전보위부 반간첩투쟁 전람관이 보위부 요원 훈련용으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영상은 ‘지하 종교망’을 조직한 ‘종교 광신자’ 차덕순의 행적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차덕순은 사리원시 출신으로 대학졸업생이다. 고난의행군 시절 생활난으로 이웃나라(중국)의 삼촌을 찾아가기 위해 “어느 해 겨울날 국경을 몰래 넘어 이웃나라로 비법월경”한다. 그러나 삼촌은 사망한 지 오래였다. 그녀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찬 눈 내리는 이국 거리를 헤맸고 천대와 멸시 속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렇게 이년 동안 중국 땅을 헤매던 그녀는 어느 날 우연히 서탑교회에 들어가게 된다. 서탑교회는 “목사의 위장된 신분을 가진 남조선 괴뢰 정탐기관 놈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갈 곳 없어 찾아오는 비법월경자들에게 반공화국 종교교육을 주어 간첩으로 전락시키는 정탐모략 소굴”이었다. 그러나 “미신에 빠져있고 신념이 확고치 못했던 차덕순은 여기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설교하는 정탐배들의 설교에 넘어가 하느님을 숭배하는 종교광신자가 되었으며 결국 놈들의 개”가 되었다.

영상에 따르면 차덕순은 이후 북한에 돌아와 사리원시와 함흥, 청진, 예산 등지를 돌아다니며 북한정권에 반감을 가진 주민들과 그루터기 기독교인들 등을 모아 지하교회를 구축한다.

차덕순은 “놈들로부터 북조선에 다시 들어가 지하 종교망을 조직할 데 대한 간첩 임무”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생활곤란을 내세워 장사의 미명 하에 함흥, 청진, 예산을 비롯한 여러 곳을 돌아치면서 신념이 없는 불평불만자들과 병으로 앓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지난 시기 종교와 미신을 믿던 자들과 그 자녀들을 찾아내서 돈과 물건으로 매수하고 종교교리를 선전”했다.

보위부가 제작한 영상에 나온 '차덕순과 지하교인들이 매주 주일마다 비밀리에 예배'를 드리던 사진(순교자의 소리 방송 캡처)
보위부 영상 속 '차덕순과 지하교인들이 매주 주일마다 비밀리에 예배'를 드리는 사진(순교자의 소리 방송 캡처)

 

차덕순은 사리원에 살고 있던 자신의 가족과 형제들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종교를 믿어오던 사리원시 교동교회당 집사의 아들 리기창, 제룡교회 집사의 딸 김승률” 등 그루터기 기독교인들과 “여러 명의 불건전한 자들을 모아 지하 종교망을 조직했다”.

이들은 북한당국의 삼엄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주일마다 모여 비밀 예배를 드렸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이면 바쁜 농사철에도 안식일이라고 하면서 신자들을 모아놓고 기도를 올리고 찬송가를 부르며 종교교리를 학습하는 등 무려 4개 모임을 조직”했다. 영상은 차덕순과 신자들이 어느 일요일 산속에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몰래 촬영한 사진을 보여준다. 차덕순과 지하교인들은 결국 주민들의 신고로 발각된다. “종교미신에 빠져 허황한 하느님의 세상을 세우기 위해 책동하던 종교 광신자 차덕순 년의 정체는 경각성 높은 군중들의 신고에 의해 적발됐다.”

북한에서 지하교회 직접 설립한 박민우 씨

박민우 씨(가명, 41세)는 2004년 처음으로 탈북을 했다. 그는 보위부에서 하사관으로 군복무를 하던 중 이모부를 고문 치사한 보위부 상관을 폭행한 죄로 10년 형을 받았다. 배급이 형편없는 감옥에서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려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던 그는 병보석으로 5년 만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가족들도 몹시 굶주리고 있었다.

박 씨는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고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말을 감옥에서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중국으로 가기 위해 어둠을 틈타 백두산을 넘었다. 산기슭을 헤매던 그는 우연히 조선족 선교사가 혼자 칩거하며 소를 키우는 처소에 닿았다. 조선족 선교사는 ‘거지꼴’을 한 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제공해주었다. 박 씨는 은혜를 갚기 위해 그를 대신해 열심히 소를 돌보아주었다. 그리고 밤이면 심심하던 차에 집안에 놓인 성경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박 씨는 성경책을 읽으면서 궁금한 것들이 많이 생겼다. 조선족 선교사는 질문이 많은 그를 중국 길림성 장춘시에 있는 ‘GNF 미니스트리’ 신학원에 들어가도록 해줬다. 그곳은 한국의 대신교단에서 파송한 선교사가 상주하면서 북한에 파송할 탈북민 출신 기독교 지도자들을 양육하는 곳이었다. 당시 그 신학원에는 예닐곱 명의 형제들과 일고여덟 명의 자매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탈북민 학생들이 들어오거나 북한으로 파송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인원은 계속해서 달라졌다.

신학원의 일과는 오전 5시 30분부터 시작됐다. 예배와 성경 통독, 성경구절 암송, 찬송가 암송이 이어졌다. 북한에 들어가 지하교회를 조직할 리더들이었기에 조직신학과 전도훈련도 받았다. 박 씨는 그곳에서 1년 동안 단기훈련을 받았다.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3~4년 동안 장기훈련을 받았다.

2005년 박 씨는 북한으로 파송됐다. 그는 성경책 26권과 반도체 라디오, 1:1 제자양육 지침서, 십자가를 직접 등에 메고 북한으로 들어갔다. 무모할 만큼 위험한 행동이었다. 국경 경비대에 발각되면 그 자리에서 즉결처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경비초소를 지키던 군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덕분에 그는 기적적으로 무사히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박 씨는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가족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했다. 또한 그보다 앞서 그 지역에 파송됐던 선교사 여섯 명과 주일마다 만나 비밀리에 성경말씀을 나눴다. 그들은 함께 나눈 그 말씀을 가지고 각자 처소로 돌아가 다시 가족들에게 전했다. 박 씨는 “너무 과감하게 성경책 등을 나눠주면서 전도사역을 하다”가 고향에 돌아간 지 3개월 만에 북한당국에 체포됐다. 그러나 그는 4년 만에 출소해 선교사들과 함께 000지하교회를 다시 설립했다.

보위부의 차덕순 영상(순교자의 소리 방송 캡처)

 

그가 설립한 지하교회는 선교사 두 명이 체포되면서 위기에 처했다. 북한당국의 조사를 받는 중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연락선을 자백한 것이다. 보위부 부장과 반탐과장 등이 선교사들 집에 들이닥쳤다. 보위부원들은 선교사들이 집안 깊숙이 숨겨놓았던 성경책을 찾아냈다. 설상가상으로 성경책 안에는 000지하교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담긴 쪽지가 들어있었다. 그들을 파송한 남한 선교사들에게 지하교회의 현황에 대해 보고하고 나서 미처 소각하지 못한 쪽지였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다. 선교사들은 비상연락망을 통해 이 같은 위급상황을 긴급히 서로에게 전달했다. 이들은 보위부의 추격을 피해 북한 각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박 씨도 급히 청진으로 피신했다.

그는 청진 바다에서 3년 동안 배를 탔다. 보위부에 잡혀갔던 선교사 부부가 다행히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른 지역으로 피신갔던 선교사들도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보위부의 삼엄한 감시가 붙었다. 결국 2012년 그는 또다시 탈북해 남한으로 왔다.

박민우 씨는 현재 자신과 연락이 닿는 북한 지하교회 선교사들은 총 11명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중국에서 사역자로서 훈련을 받은 전문 사역자들이라고 했다. 때문에 성경을 현지 상황에 맞게 풀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설교할 수 있다고 했다. 남한처럼 공개적으로, 함께 모여 큰 소리로 예배를 드릴 수는 없어도 가족들에게 비밀리에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북한정의연대 정베드로 대표는 “중국 시진핑 정권의 박해로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중국 사역지에서 철수한 상태”라면서도 “여전히 중국 현지에서 북한 지하교회를 돕는 곳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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