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북한 지하교회 리포트 3] 북한의 지하기독교인은 4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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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북한당국의 가혹한 탄압에도 신앙을 지켜온 그루터기 기독교인들의 정체
강철환 "1970년 요덕 수용소에서 기독교인 본 적 있다"
"우리 어머니가 기독교인이었어요..."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 국가 북한. 김일성은 북한에서 기독교를 ‘박멸’하고 스스로 신의 자리에 올랐다. 북한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발각되면 처형을 당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 그러나 북한에서 비밀리에 신앙을 지키고 있는 이른바 ‘지하기독교인’은 40만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5만~12만, 최대 20만 명은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반인륜적 처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정권의 가혹한 박해와 살해 위험에도 불구하고 북한주민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정권의 삼엄한 감시체제 아래 이들은 어떻게 신앙을 지켜가고 있을까. 이 보고서는 독재 권력과 죽음도 막을 수 없는 영혼의 존재와 자유를 향한 갈망에 대한 기록이다.

북한의 지하기독교인은 40만?

북한에 보내질 쌀과 이동식저장장치(USB)가 담겨있는 페트병들(국제기독연대)
북한에 보내질 쌀과 이동식저장장치(USB)가 담겨있는 페트병들(국제기독연대)

 

모퉁이돌선교회는 2020년 직접 연계하고 있는 지하교인의 숫자가 37,000명이며, 구금시설에 수감된 인원의 약 11~45%는 기독교인들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북한에는 약 40만 명의 기독교인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미 국무부의 국제종교자유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정부는 북한의 전체 인구를 256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유엔은 북한의 기독교인을 20만~4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제기독교연구소(CSGC)는 북한의 기독교인을 10만 명으로 추산한다.

북한정의연대 정베드로 대표는 북한지역에 존재하는 최대 40만의 기독교인 가운데 정치범 수용소나 노동 단련대 등에 수용되지 않은 ‘자유로운’ 기독교인은 약 2~5만 명 정도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에서 직접 지하교회를 설립했던 박민우 씨(가명, 41세)는 “지하교회 성도의 자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지하교인의 숫자는 달라질 수 있다”며 “단순히 복음을 들었느냐 안 들었느냐의 차원에서 본다면 40만은 너무 적은 숫자”라고 했다.

박 씨에 따르면 대북전단에 포함된 USB는 기독교 복음 전파의 주요 통로다. “대북전단이 북한지역에 떨어지면 군인들과 남한의 하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당 간부들이 수거와 소각에 나서는데 그들이 USB를 몰래 챙겨요. 남한의 새로운 드라마와 영화가 들어있는 USB를 온 가정과 친척들이 돌려보고 복사본을 만들어 장마당에 내다 팝니다. 돈이 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영화나 드라마가 안에 들어있는 광고예요. 예를 들어 드라마에서 가장 재미있고 자극적인 부분을 끊고 기독교 복음을 3~5분 정도 넣거든요. 북한주민들은 그것을 광고처럼 보지만 실제로는 복음을 접하는 거죠.”

그는 북한 독재자의 여동생 김여정이 대북전단에 대해 그토록 난리를 치는 이유가 북한 공무원들이 동요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반 주민들은 대북전단을 접하지 못해요. 북한을 떠받치는 공무원들이 흔들리는 것을 북한정권이 좌시할 수 없는 거죠.”

그루터기 기독교인들

북한 내 지하교회 신자들이 희미한 손전등 아래서 성경을 읽고 있는 모습(순교자의 소리)
북한 내 지하교회 신자들이 희미한 손전등 아래서 성경을 읽고 있는 모습(순교자의 소리)

 

‘그루터기 기독교인’은 해방 이후 북한당국에 의해 행해진 기독교 탄압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북한지역에서 개인적으로나 가족끼리 비밀리에 신앙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북한정의연대 정베드로 대표는 “고난의 행군 이전에 북한에 남아있는 북한의 교인들을 ‘그루터기 기독교인’이라고 부른다”며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무의식 중에 발설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들이 신앙에 대해 비밀로 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고, 구원, 성경에 대해 비밀리에 알려주는 경우가 지금도 존재한다”고 했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1970년대 후반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인 요덕 수용소에서 기독교인 가족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1977년 9살의 나이로 일가족과 요덕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의 할아버지 강태휴는 재일교포 출신으로 조총련의 간부였다. 1959년 재일교포 북송 사업 당시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가족들과 함께 북한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북한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일가족이 연자죄로 10여 년 동안 수용소에 수감돼 고초를 치렀다. 강 대표는 “요덕 수용소에서 봤던 그 기독교인 가족은 해방 전부터 북한에서 신앙을 가지고 있던 분들의 후손들이었다”고 했다.

이명희 씨(가명, 73세)는 자신의 어머니가 지하교인이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북한에 있을 때는 기독교를 몰랐지만 여기(남한) 와보니까 우리 어머니가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유행가인줄 알았던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는 ‘예수님 승천가’ ‘탕자의 노래’와 같은 찬송가였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네가 남한테 대우받자면 남을 먼저 섬기라”고 가르쳤다. “마음을 깨끗하게 먹으라” “퍼런 하늘이 항상 너희들을 내려다본다”고도 했다. 이 씨는 “‘하나님이 너희를 내려다본다’고 할 수 없으니까 ‘하늘’이라고 한 것”이라며 “어머니가 항상 우리를 교육하던 말씀이 성경 말씀이라는 것을 여기 와서 알았다”고 했다.

이 씨의 어머니는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있을 때가 많았다. 편하게 누워서 자라고 권하면 “아이, 안 잔다. 내 생각한다. 오늘 한 일을 생각한다”고 했다. 그것이 기도하는 것이었다는 것은 남한에 와서야 깨달았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어머니는 “어젯밤 꿈속에서 아버지를 봤다” “아버지가 금으로 내 집을 지어놨다고 했다. 삼일 후에 나를 데려간다고 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기분이 아주 좋아보였다. 당시 이 씨는 “이 어무이가 돌아갈 때가 되니까 정신이 돌았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정말로 삼일 후에 세상을 떠났다. “해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너무나 예쁜 얼굴로 세상을 떠났셨죠. 얼굴이 너무 아까웠어요. 여기 와서 성경 말씀 듣고 엄마가 천국갔다는 걸 알았죠.”

지현아 작가는 1998년 2월 탈북을 위해 잠시 머물렀던 북중국경 인근의 한 가정에서 기독교인들을 처음으로 봤다. 그 집의 주인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새벽마다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렸다. 어느 날 새벽 강을 막 건너온 여자들이 그곳을 방문했다. 그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 같았고 함께 예배를 드렸다. 지 작가는 “주기적으로 그들이 모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가 직접 예배를 인도했다”고 했다.

김미진 씨(가명, 38세)는 북한에 있을 때 어느 날 동네의 한 가정이 쥐도 새도 모르게 차에 실려갔던 일을 기억했다. 그 가정에 대해 ‘안기부 간첩’이라는 소문이 동네에 돌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가정이 예수님 믿는 가정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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