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칼럼] 자유의 등불, 어느 누가 끌 수 있으랴
[김석우 칼럼] 자유의 등불, 어느 누가 끌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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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76년 전 11월 23일 신의주 학생의거가 일어났다. 해방 바로 100일째다. 해방군으로 진주한 소련군의 약탈, 방화, 폭행, 겁탈 등 만행과 북한 공산당의 실정과 횡포에 대해 주민과 학생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11월 18일 신의주에서 약 80리 떨어진 용암포 제일교회에서 소련군과 조선 공산당의 만행과 실정을 비난하는 시민대회가 열렸고, 공산 당국이 시민들을 공격 폭행하여 사태가 터졌다. 23일에는 신의주의 6개 중학교와 부근의 5,000여 명의 학생들이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학원 내에 첩자를 운영하던 소련군은 미리 기관총으로 대비하여 시위 학생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전투기로 기총소사까지 했다. 24명이 사망하고 50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수백 명이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끌려갔다. 그 후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제2차대전 후 소련 공산 치하에서 일어난 최초의 저항운동이다. 동유럽 헝가리의 56년 자유 의거에 훨씬 앞서 일어난 자유투쟁이다. 신의주 학생의거가 도화선이 되어 함경북도 길주의 고려학생동맹사건, 평양학생사건, 함흥학생사건, 해주학생사건 등 북한 전 지역에서 공산 학정에 항거하는 공산당 타도와 반소 운동으로 잇달아 전개되었다.

자유의거는 북한 땅에서만 그쳐 버린 게 아니다. 소련군과 공산당의 만행과 폭정에 시달린 북한 주민들이 자유를 찾아 3.8선의 경계를 뚫고 남쪽으로 탈출했다. 그들이 북한에서 직접 체험한 공산주의의 허구와 잔혹성을 남한 사회에 알려서 막연한 환상을 깨뜨렸다. 그들이 바로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핵심이 되었고, 48년 대한민국 건국을 거쳐 사회 여론 주도층이 되었다.

6.25 남침으로 북한군이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낙동강까지 일사천리로 남하했지만, 박헌영이 김일성에게 장담했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주민들의 대대적 환영은 없었다. 북한에서 내려온 인사들의 생생한 증언이 예방주사 역할을 한 탓이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의 49년 농지개혁으로 농민들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해방 당시 거의 비슷했던 인구가 지금은 남한의 5,000만 명과 북한의 2,400만 명으로 큰 차이가 벌어졌다. 신의주 의거를 계기로 일어난 북한 주민의 대탈출이 큰 이유다. 50년 6.25 남침 이전에도 소련군의 감시를 뚫고 3.8선을 넘어왔지만, 특히 51년 1·4후퇴를 계기로 피란민 행렬이 대거 남쪽으로 줄을 이었던 결과다.

근대 개화기에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하였다. 거기서 일찌기 선진문화를 흡수한 북한의 지식인, 교육자, 기업인, 종교인, 예술인, 언론인의 개방성과 개척정신이 한국의 발전과정에 밑거름이 되었다. 한경직 목사, 함석헌 선생, 백선엽 장군, 김형석 교수, 김동길 교수와 같은 인사들의 언행이 선구자적인 울림을 주었다. 서울의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은 맨손으로 넘어온 피란민들의 생활 터전이 되었다. 그들의 억척스러운 의지와 근면성이 한국 사회에 큰 자극을 주었다. 월남한 북한 출신 청년들은 전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북한 출신이 몰려갔던 서울고등학교는 참전 희생자가 가장 많은 자랑스러운 학교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의식을 다잡아서 유엔군과 함께 6.25남침을 물리쳤고 전후 복구도 이뤄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휴전협정 60주년 기념 연설에서 6.25 한국전쟁을 ‘승리한 전쟁’이라고 정의하였다. 한국전쟁을 무승부로 끝난 ‘잊혀진 전쟁’이라는 종래의 인식을 바로잡았다. 한반도에서 공산 침략을 막아냄으로써 전 세계의 자유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자유의 방파제 역할을 한 것이다. 1985년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 이후 냉전 구조의 해체를 통해, ‘승리한 전쟁’의 의미는 더욱 선명해졌다. 88 서울올림픽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성공모델을 동유럽 선수들과 주민에게 보여주었다. 북한의 허위 선전에서 깨어나 남북한의 현격한 격차를 보고, 그들은 민주화 혁명에 박차를 가하였다.

일찍이 인도의 유명한 시인이며 사상가였던 타골은 일제에 항거한 3.1운동을 보고, 조선을 ‘동방의 등불’이라고 높이 칭송하였다. 그렇다. 동방의 등불이 신의주 의거에서 다시 빛났고, 북한군 남침 격퇴, 4.19의거와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더욱 빛나는 등불로 밝아졌다.

실은 지금의 동아시아는 ‘자유와 인권’의 눈으로 보면 매우 어둡다. 지구상 가장 어두운 변방이다. 중국은 수많은 탈북민을 체포하여 북한으로 강제 송환시킨다. 난민조약 위반이다. 티베트와 신장의 소수민족 탄압과 홍콩사태에서 보이는 인권침해는 전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다.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보이코트하자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군부 집단이 주민들의 자유의사를 억누르고 탄압과 인명 살상을 자행하고 있다. 일본은 2차 대전 패전 후 미국에 의해 민주주의를 제일 먼저 도입한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단일민족 신화에 갇혀 아직도 사회적 차별 문제에 자유롭지 못하다.

어찌 그뿐인가? 북한의 인권탄압은 전 세계적으로 최악의 상황이다. 지난 11월 17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는 지금까지 가장 강한 북한인권결의안을 컨센서스로 채택하였다. 이번 결의안도 정치범수용소를 이용한 자의적 구금과 고문·성폭력, 북한송환 탈북민에 대한 처형, 사상·양심·종교·표현의 자유통제 등 광범위한 인권침해 실태를 고발하였다. 또 북한인권침해에 가장 책임 있는 자를 명시해 추가 제재를 강구하라는 내용도 담았는데, 이는 바로 김정은을 겨냥한 것이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끌려간 국군포로와 그 후손들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도 처음으로 명기하였다.

이렇게 어두운 동아시아 지역에서 그러면 누가 자유와 인권의 등불을 밝힐 것인가? 한국 이외에는 찾기 어렵다. 남북분단 상황을 극복하고,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자유와 정의를 위한 투쟁에 승리한 한국만이 그 역사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 타골의 예언적 찬사가 다시금 현실화할 시점이다. 한국은 당장 북한 동포들이 당하고 있는 처참한 인권침해의 비극을 뒤엎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

불행하게도 문재인 정권은 북한인권 문제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시대적 요청에 역행하는 것이다. 2016년 3월 2일 어렵게 통과한 북한인권법의 시행을 철면피처럼 거부하고 있다. 대북 전단을 금지한다.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의 참여도 회피하고 있다. 심지어 2019년 11월 7일 동해안에서 해군이 나포한 북한 어부 2명을 적법절차도 거치지 않고 수갑 채우고 안대를 씌워 판문점에서 북한군에 넘겨주었다. 그들은 머리에서 피가 터지도록 저항했다고 한다. 평화를 위한다는 구실로 북한 정권의 인권탄압을 용납하려 한다면 너무 비겁한 짓이다. 북한인권문제 제기를 금기시하는 것이야말로 독재정권의 인권유린을 방조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반인권적 행태는 아시아지역 전체의 인권상황에도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 역행적 일탈은 영원할 수 없다. 일시적 현상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시대정신은 굽이쳤다가도 다시 도도한 흐름이 되어 밀고 나아갈 것이다. 일시적 장애를 만들었던 인간도 큰 흐름에 휩쓸려 사라질 것이다. 다만 역사적 죄인으로 책임을 면할 길은 없다.

김석우 객원칼럼니스트(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원장, 전 통일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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