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등의결권', '포이즌 필' 등 해외 투기세력에 경영권 방어할 수 있는 수단 없어
정부가 나서 헤지펀드에 국내 대기업 바치는 꼴이라는 비판

정부가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에 관한 정부 검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24일 관계 부처 등에 따르면 법무부는 최근 다중대표소송제 도입과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에 관한 정부 입장을 담은 상법 일부 개정안 관련 검토 의견 보고서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주주가 불법행위를 한 자회사나 손자 회사 임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있게 한 제도다.

집중투표제는 두 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후보별로 1주당 1표씩 던지는 게 아니라, 1주당 뽑을 이사 수만큼의 투표권을 주는 제도다. 예를 들어 이사 세 명을 뽑을 때 1주를 가진 주주는 세 표를 행사할 수 있으며 이를 한 명에게 몰아줄 수 있다.

현재 집중투표제는 기업이 정관에 이를 배제하는 조항을 만들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실시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개별 회사가 정관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는다’고 규정하면 이를 시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번 의견서에서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의 상장사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도가 강제적인 효력을 발휘한다면 대주주나 회사 경영진이 원하지 않더라도 투표에서 외국인이나 소수주주가 추천한 이사가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재계는 정부 추진 방향대로 상법이 개정되면 국내 주요 기업들의 경영권이 해외 악성 투기자본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기업지배구조 규제를 법으로 강제하기보다 유연하게 적용하면서 투자자의 판단에 맡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재계의 주장이다.

더군다나 현재 우리나라 기업의 경영권 방어는 헤지펀드들의 공격에 취약한 상황이다. 적대적 M&A(인수합병)에 대한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 가운데 대표적인 방법인 '차등의결권'은 한국은 '1주 1의결권'의 상법 규정에 따라 허용되지 않는다. 미국, 유렵 등지에서 도입하고 있는 차등의결권은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하여 적은 주식를 보유하고도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

경영권 침해 시도가 발생하는 경우에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미리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인 '포이즌 필(poison pill)' 또한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하다.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지에선 주요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쓰이고 있으며, 미국과 일본은 이사회 의결만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적 차원의 구비가 미비하기에 최근 엘리엇의 현대차 공격 등을 비롯해 헤지펀드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고 있다. 더군다나 최근 국내 기업들은 순환출자를 해소하라는 정부와 여론의 압박에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해야하는 상황에서 경영권을 방어하기 더욱 취약한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권 방어 수단은 사실상 없다고 보는게 맞다.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순환출자 해소는 바람직하지만 경영권 방어 수단없는 지주회사체제 전환은 기업 구조가 명확하게 노출돼 외국 투기자본세력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며 “경영권 방어 수단이 전무한 상황에서 순환출자는 그동안 외부 투기 세력이 공격하기 힘든 복잡한 지배구조로 인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었던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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