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별세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31년 경남 합천군 율곡면에서 빈농(貧農)10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당초 그의 선대(先代)는 전북 완주 지역에 살았는데 증조부가 동학혁명에 연루되는 바람에 합천으로 이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합천에서도 가난에 시달렸던 전 전대통령 일가는 그가 중학생이 되기전 대구로 이사를 가게되고 전 전 대통령은 대구에서 중학교와 고교(대구공고)를 다니게 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소년시절, 6·25 전쟁 전후 대구 수성천 변에서 뛰어놀던 또래의 세 사람이 있었다. 1931년생, 같은 나이의 이들 중 한명은 대구시 수동(지금의 수성동)에 있는 삼성상회 주인 이병철의 큰 아들인 이맹희 본인, 또 한명은 유승민 전 의원의 선친인 유수호 전 국회의원 , 전두환 전대통령이었다.

세 사람은 집안 형편이나 출신은 판이했지만 나이가 같고 집이 근처라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수성천 부근에서 어울려 놀았다고 한다. 하루종일 어울려 놀다가 점심이나 저녁 밥을 먹을 때면, 나중에 한국 최고의 부자가 되는 이맹희 회장의 아버지, 이병철 회장 집이 아니라 유수호 집에서 주로 끼니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유수호 전의원의 집안이 셋중에서 제일 부자였기 때문이었다.

이 만남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있었기에 나머지 두 사람의 인생까지 큰 변화를 겪는다. 유수호 전 국회의원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판사를 하다가 몇가지 판결로 정부에 밉보이는 바람에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비애를 맛본다. 하지만 1980년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절친친유수호에게 공천을 줘서 국회의원으로 만들고 오늘날 그 아들 유승민 전 의원에 이르기 까지 정치를 가업으로 삼게된다.

이 만남으로 운명이 가장 크게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맹희 전 회장이다. 이맹희 전 회장은 20여년전 펴낸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눈 밖에 난 것은 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영향이 컸는데 전 전대통령이 이병철 회장에게 어릴적 친구인 자신에 대해 경영을 맡기면 안된다” “능력이 안된다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이맹희 전 회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렇게 행동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어릴적 대구 수성천변에서 같이 놀던 친구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 또한 그 무렵에 같이 뛰어 놀았는데 그 인연이 독이 됐다는 것이다.

이맹희 전 회장은 어릴적부터 친구 동생이던 전경환은을 쥐어박기도 했고 나중에 삼성 비서실에 전경환을 취직시킨 뒤에도 그런 일이 몇 번 있었는데 이에대해 전두환 경환 형제가 앙심을 품었고, 특히 전두환이 대통령 시절 아버지에게 자신을 깎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회장은 더불어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학도의용군으로 차출된 친구 전두환이 전쟁터에서 죽지 않도록 아버지 이병철 회장에게 돈을 얻어 헌병대에 주고 전두환을 빼냈다는 주장을 자서전에 넣었다가 나중에 삭제하기도 했다.

이맹희 전 회장의 이런 주장에 대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아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또 이런 에피소드만으로 후계자가 결정됐다고 믿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가업승계를 놓고 한창 고민하고 결행했을 때가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시절이었음을 감안하면 이건희 삼성의 탄생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에 이르게 된 시작이 유승민 전 의원의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박 전 대통령 및 친박그룹과의 갈등이었던 만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소년시절 친구들은 삼성가와 박정희가의 운명까지 크게 바꿔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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