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차 운전자가 아니고서는 이름마저 생소했던 ‘요소수’ 대란은 전기차 시대를 한층 앞당기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요소수 사태를 통해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경유차를 기피하는 흐름이 가속화되는 실정이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전기차 시대를 맞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는 것으로 관측된다. ‘요소수 부족’ 대신 ‘전기 부족’ 사태를 겪게 되리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경유차는 그동안 높은 연비와 토크로 인기를 끌었다. 한때 경유 차량은 ‘클린 디젤차’라 불리며, 가솔린 차량에 비해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당시에는 경유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솔린차보다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로, 친환경차에 포함시켰다. 가솔린차에 비해 연비가 좋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것은 맞다.

요소수 사태 겪으며 ‘경유차 구매 기피현상’ 두드러져

하지만 이산화탄소보다 ‘미세먼지’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는 사회적인 흐름 속에서, 경유차는 미세먼지 배출의 주범으로 낙인 찍혔다. 게다가 가솔린차보다 질소산화물(NOx)을 23배 이상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유차에 대한 인기는 급하게 식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 중국 등에서 환경규제를 강화하며 경유차 퇴출을 선언했다. 완성차 기업들도 이런 추세에 발맞춰, 경유차 생산을 점차 줄여 나가는 추세이다. ‘카이즈유(Carisyou)’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경유차 판매량이 정점을 찍은 것은 지난 2015년이다. 승용차 시장 내 경유차의 판매 비중은 45.9%나 되었다. 그 이후 점차 그 비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40.9%, 2017년 36.7%, 2018년 35.6%, 2019년 28%, 2020년 24%까지 축소됐다. 올해 1~10월에는 17.8%로 급락했다. 화물차 등 상용차를 포함할 경우, 경유차 점유율은 2015년 52.5%에서 올해 25.4%로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실제 자동차업계에서는 이번 요소수 사태 이후, 경유차를 기피하는 현상이 급증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자동차 업체의 영업사원은 “경유차를 구매하기로 한 계약자 중 상당수가 계약을 취소하거나 다른 모델로 변경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대란으로 차량 출고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경유차를 계약한 고객들은 아예 계약을 취소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14일 오전 제주시민복지타운에서 제주도가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업체를 대상으로 요소수 2천ℓ를 배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4일 오전 제주시민복지타운에서 제주도가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업체를 대상으로 요소수 2천ℓ를 배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유차 비중이 높은 수입 자동차 딜러도 “수입 경유차는 요소수를 꽉 채워서 오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고객들이 선택을 바꾸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제네시스’는 2025년부터 전기차와 수소차 ‘신차’만 출시, 벤츠는 2030년부터 전기차만 출시

지난 10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카페캠프통에 마련된 제네시스 GV60 특별전시장에서 제네시스 첫 전용 전기차 GV60이 공개됐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0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카페캠프통에 마련된 제네시스 GV60 특별전시장에서 제네시스 첫 전용 전기차 GV60이 공개됐다.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전 세계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전환에 매진하는 상황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와 관련, 2025년부터 출시하는 모든 신차를 전기차와 수소차로 내놓을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2030년에는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고 전기차·수소차만 생산·판매할 방침이다. 현대차는 올해 초 디젤 엔진 신규 개발을 완전 중단하기로 했으며, 디젤 엔진 생산도 점진적으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제네시스는 G70, G80 디젤 모델에 대해, 지난 10월부터 신규 계약을 중단했다. 코나, 셀토스 디젤 모델 등도 생산을 멈췄다. 현대차는 전동화 비중을 오는 2030년 30%, 2040년 80%까지 높일 계획이다. 유럽에선 2035년부터 전기차만 판매하고, 2040년에는 미국과 한국 등 주요 시장에서 순차적으로 모든 차량의 전동화를 완료할 방침이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2035년 이후 내연기관차 생산과 판매를 전면 중단할 것으로 알려진다. 2025년까지 전 세계에 30종 이상의 전기차를 출시하고, 향후 5년간 연구·개발에 270억 달러(약 31조900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2030년부터 전 차종을 전기차로 출시하기로 했으며, 배터리 전기차 부문에만 400억 유로(약 54조75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신차 절반을 전기차로 판매할 계획이며, 2035년에는 유럽에서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한다. 볼보는 2030년까지 생산하는 모든 차종을 전기차로 전환할 예정이다.

전기차 보급 빨라지며 벌써부타 ‘전기 부족’ 우려 제기돼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전기차 구매는 아직 글쎄...”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올 초만 해도 테슬라 전기차가 주상복합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불타는 사고가 발생한 탓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테슬라를 시작으로 긴 주행거리와 첨단 기술을 탑재한 전기차가 계속 나오고 있는 데다 올해는 현대 아이오닉5, 기아 EV6, 제네시스 GV60 등 국산 전기차가 연이어 출시되며 전기차에 대한 여론이 반전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요소수 대란은 경유차 퇴출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하지만 전기차 보급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소비자들은 벌써부터 전력대란을 우려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전국에서 동시에 전기차를 충전하면, 요소수처럼 전기가 부족하지 않을까?’라는 우려이다. 요소수 부족 사태를 겪은 소비자들이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산업부 관계자, “전기차 충전에 의한 전력 수급 불안은 점검해야”

18일 오전 한국자동차기자협회가 ‘탄소중립,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주제로 김대중컨벤션센터 컨벤션홀에서 개최한 ‘2021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심포지엄’에서 실제로 이런 우려가 제기됐다.

이민우 산업통상자원부 자동차과장은 전기차 보급 확대에 따른 전력 수급 우려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전국 곳곳에서 전기차 충전이 진행되면 전력 수급이 불안해 질 수 있다는 우려는 분명히 점검하고 대비해야 할 부분”이라고 동의했다. 이어 “전기차 보급이 늘수록 언제, 어느 시간에 전기차 충전이 많이 진행되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구축하고 정보를 투명하게 안내하는 등 앞으로 전기차 충전에 따른 전력 수급에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는 의례적인 답만 내놓아 비판을 받았다.

심포지엄에서 채영석 한국자동차기자협회 고문은 정부의 미래차 계획에는 알맹이가 없다고 질타했다. 채 고문은 “정부의 계획은 항상 화려하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외국과 비교하거나 현실에 닥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전기차 시대에 대비해 전력수급을 ‘어떻게(how)' 하겠다는 계획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인 것이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탄소중립위원회가 최종 의결한 2개의 시나리오 중 A안에서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최대 70.8%까지 늘어나고, 원전 발전 비중은 6.1%로 축소’된다. 원전 없이 신재생에너지만으로 어떻게 전기차에 대한 전력 수급이 가능할지, 벌써부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