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정치에는 미래의 생존이 달려 있다. 이를 둘러싸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치를 공유하는 민주정 국가와 전체주의 중국이 명운을 걸고 싸우고 있는 중이다. 한국은 어느 편에 서야 할지 국가 대전략 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당장 세계 지도를 펼펴놓고 생각이란 것을 해야 한다. 전 세계가 인지하고 있는 국제정치의 본질에 한국은 언제까지 눈을 감고 있을 터인가?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소위 ‘요소수 대란’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어처구니가 없다. 사실 전략물자 축에도 들지 않는 요소수로 우리 사회가 한바탕 소동을 빚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한국만 겪은 괴이한 사태다. 사실 중국 공산당이 한국을 겨냥해 요소수를 무기화했다고 보기에도 좀 무리가 있다. 중국이 석탄 부족으로 요소 생산을 줄인 시점에서 이미 이같은 사태를 일찌감치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은 정부당국의 탓이 크다. 기존의 서플라이체인(공급망)이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현실을 도외시한 결과다.

시진핑(習近平)의 3연임을 위한 포석을 마련한 중국 공산당 제19차 6중전회가 열린 지난 8일,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와 국영 매체 신화사가 공동으로 출판하는 격주간지 ‘반월담’(半月談)에는 의미심장한 헤드라인의 사설이 실렸다. 미국·일본·인도·호주의 4각 동맹인 쿼드(Quad)회담 사진과 함께, 〈세계는 지정학(geopolitics)의 시대에서 기술정치(technopolitics) 시대로 진입: 기술 연맹에 대한 미국의 야심은 매우 크다〉라는 제목으로, 동맹국들끼리 무리 지어 기술 연맹을 결성하는 국제 정세 추세에 주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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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격주간지 ‘반월담’(半月談)에 실린 사설 〈세계는 지정학(geopolitics)의 시대에서 기술정치(technopolitics) 시대로 진입: 기술 연맹에 대한 미국의 야심은 매우 크다〉(從 “地緣政治時代” 進入 “技術政治時代”: 美國 “技術聯盟” 野心很大)의 내용.(출처=반월담)

‘반월담’은 기사에서 “바이든이 집권한 이래 미국은 적극적으로 동맹국들과 함께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클린에너지 같은 새로운 기술 영역에서 합작을 추동하고 있다. 바이든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동맹관계를 복원하고 있으며, 특히 기술 연맹을 강화하고 있다. 기술 연맹의 다층차원의 합작이다. 동맹국 간의 합작일 뿐 아니라 그 정부, 기업간의 합작이기도 하다. ‘쿼드’는 첨단기술이 인터넷으로 유출되는 것을 봉쇄하려 시도하고 있다. 바이든은 미국의 R&D를 강화하는 한편 첨단 기술의 대중(對中)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반월담’에 실린 이 사설은 중국 공산당의 명징한 현실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으로 구성된 ‘쿼드’는 기본적으로 지정학에 기반한 대중 포위망인 동시에 기술동맹(techno-alliance)이라는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시공간의 개념이 옅어진 오늘날, ‘techno’(기술)라는 접두사가 ‘geo’(지리)를 갈음하게 된 게 작금의 국제정치다. 또 호주·영국·미국의 3자 동맹인 ‘오커스’(AUKUS)도 해양 세력의 급부상을 의미한다. 호주가 프랑스에 발주하기로 한 잠수함 계약을 깨고 미국을 향한 것은, 같은 앵글로색슨이며 해양세력인,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정학상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강점을 모두 가진 미국과 영국, 호주의 연합은 나토(NATO)와 유럽연합(EU)이라는 유럽 대륙 세력과의 결별도 의미하고 있다. ‘쿼드’와 ‘오커스’는 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의 정보동맹인 ‘피이브아이스’(Five Eyes)와도 중첩된다. 군사·정보동맹인 동시에 글로벌 서플라이체인의 동맹이기도 한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기술분업도 이들 동맹체를 따라 재편성되고 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한·미·일 삼각동맹의 중요한 한 축이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미국의 방위역할 분담을 크게 늘리는 일본과 우호·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나아가 ‘쿼드’에도 참여하게 된다면, 중국과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을 크게 상쇄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분업 서플라이체인에 있어서도 지분을 확고히 챙길 수 있는 것이다.

‘기술정치’ 시대로 진화했다고는 하나, 해양세력 대(對) 대륙세력 간의 힘의 균형을 다룬 ‘지정학’ 이론은 변함이 없고 지금도 유효하다. 지정학은, 1916년 스웨덴의 정치학자 J. R. 셸렌이 유기체로서의 국가가 어떻게 생존하고 그 영역을 어디까지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써, 20세기초 열강의 제국주의 영역 팽창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중심부와 주변부.(이미지=인터넷 검색)
중심부(분홍)와 주변부(빨강).(이미지=인터넷 검색)

국제정치학의 무게 중심이 아시아 태평양으로 급속히 이동하는 현실은 바다를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내용의 해상권력사론을 저술한 미국의 알프레드 머헨(Alfred T. Mahan)의 이론과도 일치한다.

대륙세력이냐 해양세력이냐의 논쟁은 영국의 할포드 맥킨더(Halford J. Mackinder)와 봉쇄정책의 아버지라 불린 미국의 니콜라스 스피크만(Nicholas J. Spykman)이 널리 알려져 있다. 맥킨더는 일찍이 1차 세계대전은 영국으로 대표되는 해양세력과 독일로 대표되는 대륙세력의 투쟁으로 간주하면서 유라시아 중심부(Heartland)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장악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의 스피크만은 주변부(Rimland)를 장악하는 나라가 유라시아 중심부까지 장악한다고 주장했다.

스피크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것을 목도하고도 미래에는 현재의 주적인 일본이 유라시아 중심세력을 견제할 국가가 될 것이며 미국이 일본의 국력을 신장시켜 극동에서 대륙세력에 대한 방파제로 만들 날이 올 것으로 예견했다. 스피크만의 이 같은 예견은 지금 그대로 적중했다. 기본적으로 앵글로 색승 연합에 일본까지 가세하는 주변부 이론이 유라시아 중심부에 대한 태평양 주변부 국가들의 포위망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다만 유라시아 중심부가 러시아가 아닌 중국이 됐다는 사실만 달라졌을 뿐이다. 스피크만의 이론에 적용시켜 보면 일본과 함께 한반도 역시 주변부에 속하는 일종의 완충지대다.

2020년, 미국의 정권이 바뀌면서, 세계는 지정학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으면서 전에 보지 못한 혼돈스런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바이든의 미국이 셰일가스 채굴을 포기하고 신(新)재생에너지, 기후변화를 이슈로 내세운 탄소중립을 전세계에 확산시키면서 미국뿐 아니라 서유럽에도 천연가스부족으로 인한 에너지 대란이 일어났다. 또 호주와 중공간 무역분쟁과 함께 공교롭게도 중국에서는 석탄대란과 전력난도 발생했다. 그런가 하면 반도체 칩을 둘러싼 미국-중국-유럽-대만-일본 간에 벌어지고 있는 쟁투(爭鬪)와 합종연횡, 중국의 제조업붕괴로 인한 글로벌 서플라이체인의 재편 등, 국제정세의 변화는 요란하면서 어지럽기 그지 없다.

과거처럼 무기를 동원해 영역을 확장하는 전쟁의 지정학적 위험도 상존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에너지, 자원, 소재, 재료, 일반 제조업, 첨단 기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비전통적인 전쟁이 지금 현재 발생하고 있다. 지정학의 역사적 프레임이 반복되면서 기술정치라는 패러다임의 변화까지 겹치고 있다.

기술정치에는 미래의 생존이 달려 있다. 이를 둘러싸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치를 공유하는 민주정 국가와 전체주의 중국이 명운을 걸고 싸우고 있는 중이다. 한국은 어느 편에 서야 할지 국가 대전략 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당장 세계 지도를 펼펴놓고 생각이란 것을 해야 한다. 전 세계가 인지하고 있는 국제정치의 본질에 한국은 언제까지 눈을 감고 있을 터인가?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 前 MBC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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