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두 판결 모두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에 선 것은 아니다.

아래 우리말 기사는 2021년 11월13일 미국의 외교 전문 매체 ‘디플로맷’에 “Anti-Japan Tribalism on the Comfort Women Issue”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영문 기사와 같은 내용의 것입니다. ‘디플로맷’은 2021년 11월15일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동의 없이 ‘편집 기준’(editorial standards)과 다르다는 이유로 동(同) 기사를 삭제했습니다. 기사의 삭제 사유가 ‘기준 미달’이라는 일부 국내 보도가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님을 알립니다.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지난 2015년 12월, 한국과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에 합의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고, 정부 예산에서 10억엔(당시 환율 기준 우리 돈 108억원 상당)을 거출함으로써 소위 ‘피해자’들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화해치유재단’이 설립돼, 당시 생존자 45명 중 34명에게 일본 정부의 ‘지원금’이 지급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인 2017년 정부는 “피해 당사자”인 전(前) 위안부들의 의사(意思)가 협상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근혜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다. ‘화해치유재단’에는 60억원이나 되는 기금이 남아 있었지만, 재단 설립 허가가 취소됐고, 문재인 대통령은 “진정한 문제 해결”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선언하였다. 일본 정부는 합의를 준수할 것과 국제법 위반 상태를 해소해 줄 것을 우리 정부에 요구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무시해 왔다.

올해 1월, 또 하나의 폭탄이 터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제34부는 12명에 이르는 전 위안부가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일본이 원고 1인당 1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해당 소송의 원고가 된 전 위안부들 중에는 자신이 유괴·납치됐다고 증언한 사람들이 있었고, 이 재판에서도 그렇게 주장한 원고가 많았다. 전형적인 ‘강제연행설’인데, 재판부는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

그러나 ‘강제연행설’은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들의 증언은 종종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용수 씨다. 이 씨는 최초 취업사기를 당했다고 했지만, 나중에 일본군에 강제로 연행됐다는 식으로 말을 바꿨다. 또 이들 증언은 객관적 증거에 의해 입증되지 못한 ‘신상(身上) 이야기’에 불과하다. 강제연행을 입증하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고, 가족이나 지인(知人) 등, 제3자로서 그 사실을 증언하는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반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기대는 또 하나의 지주(支柱)는 바로 ‘성(性)노예설’이다. 일본군 위안부들에게 임금이 주어지지 않았고, 원하더라도 위안부 생활을 그만 둘 수 없었으며, 자유로운 이동(移動) 등 일상적 자유도 없었다는 것이다.

판결문상의 ‘기초 사실’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본 정부가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한 재판부는 이 ‘성노예설’을 일관되게 추종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한국의 반일종족주의적 인식, 즉 허구적 관념에 기반한 것이다.

‘위안부’라는 직업은 ‘고위험·고소득’(high risk, high return) 직군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거액을 번 사람도 종종 발견된다. 계약기간 등 고용계약에 따라 퇴직한 후, 조선으로 귀환하거나 재취업한 경우도 매우 많다. 일상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받았던 것은─전장(戰場)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군인·군속·간호부 등도 마찬가지였다. 결론적으로,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라, 지금의 성산업 노동자와 근본적으로 동일한, ‘성노동자’였던 것이다.

한 국가의 법원은 다른 국가가 주권을 행사한 행위에 대해, 그것이 불법이라고 할지라도,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 ‘국가면제’라는 국제관습법상의 원리 때문이다. 상대 국가를 서로 법정에 세움으로써─극단적으로는─무력 분쟁으로 비화하라 상황을 방지하고 국제평화를 증진하고자 하는 차원이다. 재판부는 위안부의 동원, 유지 및 관리를 위해 일본 국가가 취한 행위를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단정하고 ‘국가면제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는 이날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내리는 결정이다.
지난 4월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15부는 고(故) 곽예남·김복동·이용수 씨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주장해 온 이들과 그들의 유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사진은 이용수 씨.(사진=연합뉴스)

올해 4월, 서울중앙지법 민사제15부는 지난 1월 내려진 판결과 전혀 다른 판결을 내림으로써 국내·외를 놀라게 했다. 전 위안부 등 20명이 1월 재판과 같은 내용으로 제소하였는데, 이번 재판부는 ‘국가면제’를 이유로 사실심리 없이 소(訴)를 각하했다. 총 79페이지의 판결문에서 이와 관련한 서술이 3분의 2를 차지한다. 이 판결에 따르면, ‘반인도적 범죄행위’를 ‘국가면제’의 예외로 하는 국제관습법은 아직 확립되어 있지 않다. 또 제2차대전 중 독일군의 불법행위와 관련해 나온 미국이나 유럽 7개 국 각급 재판소, 그리고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보면, 이탈리아의 일부를 예외로 하고, 독일군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모두가 국가면제를 인정하였다.

4월 판결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내용이 있다. 재판은 ‘위안부 피해자’의 권리를 구제할 유일하거나 최후의 수단이 아니며, ‘외교적 합의’도 대안이 되고, 구체적으로 2015년의 ‘한·일 위안부 합의’가 바로 그것이라고 지목한 점이다. 관련 내용도 소상하다. 결국, 4월 판결은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도와 방법을 고려한 ‘실용적’ 판결로 보인다. 1월 판결에서는 “외교에는 상대가 있다”는 상식이 부정됐다. 일본 정부는 합의 준수를 요구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없다. 일본의 정당들은 물론이고, 국민의 3분의 2 이상이 파국적 상황의 책임은 한국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월 판결은 반일종족주의에 의지한 ‘관념적’ 판결이었다.

4월 판결에 문제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재판부는 ‘기초적 사실관계’라는 항목을 통해 ‘강제연행설’과 ‘성노예설’을 수인했다. 그러므로 두 판결 모두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에 선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지금 ‘다수설’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또 일본에서 역사인식이 변화하였던 경험, 그를 위한 투쟁도 상기해보아야 한다. 《반일종족주의》의 선풍에서 보듯이, 지금 한국에서는 변화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 더구나 한국은 모든 것이 빨리 변하는 ‘다이나믹 코리아’가 아닌가.

이우연(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경제학 박사)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