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앞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규탄하고 있다.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날 전체회의에서 여당 단독으로 처리됐다.2021.8.19(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앞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규탄하고 있다.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날 전체회의에서 여당 단독으로 처리됐다.2021.8.19(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내년 3월에 실시될 제20대 대선 여·야 대진표가 결정되었다. 역대 어떤 대통령선거도 이번처럼 당내경선에서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예선전만 놓고 보면 이번 대선 역시 정책이나 공약보다 볼썽사나운 이전투구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미 우리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이 내놓은 장밋빛 선거공약들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또 표를 얻기 위해 남발한 선심성 공약들의 폐해가 어떤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후보들은 집권만 하면 모든 민생문제들을 다 해결해 줄 수 있고 지상낙원을 건설할 수 있을 것처럼 호언장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각 진영 스스로도 그들이 내놓은 공약들이 모두 실천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듯 싶다. 어차피 후보도 유권자도 별로 신뢰하지 않은 공약들을 두고 벌이는 TV토론 역시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TV토론은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하는 장이 아니라 토론과정에서 후보들의 위기대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많다.

이처럼 선거공약이 남발되는 상황에서도 각 후보들이 겉으로 잘 드러내놓지 않는 정책공약이 있다. 바로 언론 즉, 미디어 관련 공약이다. 1987년 직선제 대통령선거제도가 도입된 이후 어떤 후보도 언론 관련 공약을 겉으로 표방한 적이 거의 없다. 물론 각 후보의 공약집에는 언론 관련 공약들이 들어 있다. 하지만 선거기간 중에 드러내놓고 이슈화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언론개혁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고 정권 내내 밀어붙였던 문재인 정권조차 언론 관련 공약을 드러내놓고 쟁점화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정파들이 말로는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언론 자유를 외치지만 언론을 권력유지를 위한 통제 도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의 공약이 진실이었다면 대한민국은 이미 무한한 언론 자유를 누리는 선진국이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다.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규제기구는 물론이고 KBS를 비롯한 공영방송 이사회조차 여·야가 나누어 먹는 후진적 구조가 오랫동안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도리어 몇 번의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정치 게토(gheto)화가 더 심화되어 70~80년대 권위주의 정권 때보다 더한 정권 호위방송으로 역진화한 상태다.

물론 역대 후보들의 공약집을 보면 무한한 언론자유를 누리고 언론에 대해서는 손가락하나 건드리지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을 쟁취한 정파는 정권에 충성하는 아니 최소한 정권 우호적 언론환경을 만들어야겠다는 유혹에서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도리어 국민 지지를 얻어 권력을 쥔 정권에 대한 언론 감시활동을 반민주적이고 정권을 폠훼하려는 적폐세력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언론 자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왔던 현 정권의 언론장악 행태들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언론의 정치도구화는 한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집권 여당을 물리치고 정권 탈환에 성공한 정파는 더 철저하게 언론을 장악하려는 반작용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과거 정권에 충성하면서 호가호위했던 언론들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내 편으로 만들겠다는 집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정권이 교체되고 나면 공영방송 이사회와 경영진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편으로 바꿔치고, 이전 정권에 충성했던 언론사나 언론기관들을 자신에게 줄 선 인사들로 재배치하는 악행이 반복되고 있다.

선거를 통한 민주적 정권교체가 이어져 오면서 언론은 더욱 반민주적으로 퇴화하는 역설적 현상이 한국사회에서는 상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정권에 밉보이거나 충성하지 않아 자의반타의반 밀려난 언론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불나방처럼 특정 후보 주위에 몰려들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당연히 집권 여당 후보 주위에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그러니 여든 야든 정권이 교체되고 나면 이전 정권보다 더 극심한 언론장악 행태들이 자행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선거는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과 재탈환하기 위한 정파간에 벌이는 복수혈전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자유민주주의는 정치권력을 독점해왔던 세력들이 권력을 양보하면서 성장해왔다. 마그나 카르타에서 명예혁명에 이르는 영국이 그랬다.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시작한 프랑스는 이후 거의 100여 년 가까이 왕정과 공화정이 반복되면서 권력분점이 이루어졌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의 자유는 권력을 쥔 세력이 양보할 때 진보할 수 있다. 가진 자의 양보와 배려가 없다면 언론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진 자의 양보의 미덕은 자신이 국민들로부터 감시받고 견제받을 수 있다는 민주주의 신념에서만 나올 수 있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런 정치지도자를 이제까지 거의 가져보지 못했다. 

다행히도 야당 대통령 후보가 집권하고 나면 공영방송의 사장이나 경영권에 일제 관여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게 공약인지 후보의 개인적 생각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집권한 이후에 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미 적지 않게 후보 주위에 몰려있는 정치인들과 전·현직 언론인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어쩌면 주변인사들은 대부분 복수혈전을 꿈꾸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대장동 사태나 조폭연루, 폭언사건 등으로 각종 언론보도에 시달리고 있는 여당 후보는 가짜 뉴스를 규제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것을 보니 그에게 언론 자유를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야당 후보라도 선언적 수준을 벗어나 집권 이후 언론의 정치적 독립과 자유를 구현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정책 방안들을 제시할 것을 권고해본다. 차기 정권에서 그것 하나만이라도 성취할 수 있다면 후보가 내세우는 공정과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될 것이다.

황근 교수.(사진=황근 교수)
황근 교수.(사진=황근 교수)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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