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대장동 비리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을 보면 그리스 철학자 제논의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에 관한 그 유명한 궤변이 떠오른다. 아킬레스는 거북이보다 열 배나 더 빨리 뛰지만 만약에 거북이가 100미터 앞선 지점에서 동시에 출발한다면 아킬레스는 결코 거북이를 넘어 설 수 없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증명된다는 주장이다. 거북이가 서 있는 지점까지 아킬레스가 가는 시간 동안 거북이는 느리나마 얼마는 움직였을 것이고 시간을 축으로 해서 본 그런 상대적 관계는 무한히 계속될 수 있기 때문에 둘 사이 거리는 계속 좁혀지지만 후발자가 선발자를 넘어서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논증이다.

시간이라는 사고의 범주를 마치 절대가치인 양 내세움으로 빚어지는 착시현상이요 궤변이다. 성남시장으로 재직할 때 본인이 기획했던 역사적 업적이라고 이재명 자신이 자랑했던 개발 사업이다. 불과 4억 원을 투자했던 7인의 개인이 50% 이상의 지분을 가졌던 성남시보다 몇 배 더 많은 4천억 원 이상의 이익을 챙겼다. 또 50억 원씩 규모의 뇌물을 받은 유력자가 여러 명 있는 돈 잔치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사업시행자가 그의 측근이 아닌 것만 증명되면 총책임자였던 그에게는 죄가 없다는 게 이재명과 그 옹호자들의 주장이다.

검찰 수사가 겉돌고 있는 사이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이재명을 서둘러 대선 후보로 확정하며 사건 수사와 재판에 편파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지를 마련해 주었다. 또 연이은 국정감사를 그의 ‘청렴과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전 성남시장, 현 경기지사, 집권당 대선 후보의 호칭을 다 갖추고 있던 본인은 “돈 받은 자=죄인, 장물 가져간 자=도둑”이라는 해괴한 주장을 담은 팻말까지 만들어 국민 앞에 휘두르며 유창한 궤변을 쏟아냈다. 누가 어떻게 도둑질을 해 장물이 생겼으며 왜 누구에게 그 장물(뇌물)을 주려 했는가는 따질 것 없이 그 장물을 받은 흔적이 한 군데 드러난 야당에게 비리의 총책임을 전가하면 된다는 자신만만한 자세였다. 그러나 제일 야당의 대응 또한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대장동 개발 사업 관련 비리는 그 규모와 담대함으로 보아 역대 최대의 공공 사업 관련 비리임이 틀림없고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그 비리의 핵심 인물임은 상식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대장동-이재명 사건이 경악스럽고 심지어는 공포스럽기까지 한 것은, 이재명이라는 개인과 그 주변의 탐욕과 부패, 범죄적 대담성보다도 그런 일이 가능하게 만든 우리 사회 전반의 도덕 불감증, 특히 정치권과 검찰의 공직 윤리나 공직자의 책임에 대한 의식의 부재이다.

대장동 관련 비리의 큰 윤곽은 이미 드러난 지 오래고 이재명 자신은 자기의 죄를 자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장동은 처음부터 당시 집권 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기가 설계하고 추진해서 성남시에 막대한 수익을 가져온 큰 업적이라고 자랑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이 몇몇 개인에게 부당하게 돌아가고 뇌물이 오고 간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자기는 몰랐던 일이고 오히려 그 사업에 반대했던 전 여권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공공기관이 주관하는 사업은 처음부터 공익의 이름으로 개인 소유의 토지를 시가(市價) 이하로 강제 수용할 수 있는 권한을 발동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이권 사업이다. 그래서 시장의 배임, 직무 유기, 권력 남용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고 책임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책임자 발령, 업자 선정, 계획안 마련 등 모든 일에서 시장이 모르는 중요한 결정이 있을 수 없고 몰랐다 하면 그것은 직무 유기가 된다. 만약에 “보고를 받지 못했다”, “몰랐다” 하는 것이 면책 사유가 될 수 있다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은 누구든 책임을 하급자들에게 밀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또 한 가지 물어야 할 것이 공공개발 사업의 주목적이 공공기관의 소득을 늘리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사기업체보다 효율적이고 비영리적인 방법으로 사업을 추진해 수요자들에게 시가와 상관없이 합리적인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하자는 데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얼마나 많은 성남 시민이 땅은 싼 값으로 내놓고 비싼 값으로 집을 분양받게 되어 발을 구르며 분개하고 있는데 부당 이익을 시로 환수하겠다는 말로 시장은 면죄부를 받는 것인가? 사기업에 불과한 삼성이 소유권 승계 과정에서 회사가 불이익을 입었다는 이유 하나로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던가?

특혜로 부당 이득을 누린 사업자/투자자들과 이재명 전 시장의 관계가 어떤 것이고 어떤 불법 로비가 있었는가는 중대한 문제이고 헌법 질서 파괴 가능성을 포함한 여러 가지 맥락에서 철저한 수사와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재명과 관련해서는 그것들은 이미 가중 처벌을 요구하는 여(기타)죄에 해당되는 것이다. 설사 수혜자들이 그의 측근이고 아니었고 시장 자신이 돈을 받은 흔적이 없다 해도, 그런 가능성은 없지만, 그의 도덕적 책임은 말할 것도 없고 법적 책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검찰은 공직자의 책무나 윤리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이 권력의 눈치만 보기 때문에 핵심은 빼놓고 주변만 맴도는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집권 세력은 너무도 오랫동안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추월할 수 없다는 제논의 역설을 훨씬 능가하는 궤변으로 국민을 우롱해왔고 그에 맞서 싸웠어야 할 야권 정치 세력은 너무나 나약하고 비굴했다. 하지만 뼈 빠지게 일을 해도 살아갈 길이 없어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이 속출하는 마당에 천문학적 공돈 먹기 놀이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에게 면죄부를 주고 대선 후보로 내세운 행태는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만약에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때는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대장동 사업 같은 엄청난 일들을 벌일 것이며 모든 공직자가 그를 모범으로 받들며 그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단 말 아닌가? 이것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을 믿던 사람들에 대한 예우인가?

나라의 격은 말할 것도 없고 권리 당원들에게 진정한 선택의 기회를 되돌려 주기 위해서도 민주당은 이재명 옹호를 접고 늦기 전에 새 대선 후보를 내세워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지적해야 할 것이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 전체의 책임 문제이다. 모든 역대 정권에서 우리는 부패와 비리를 경험했고 억울함을 호소할 데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심해지면 항의하여 맞설 줄도 알았고 권력은 진정한 주인 앞에서 굽힐 줄을 알았다. 하지만 이번 대장동 사건에 드러난 비리 주체의 뻔뻔함과 집권 세력의 무모함, 검찰의 무능과 무책임은 국민 전체에 대한 무시와 국가적 치욕일 뿐 아니라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가능성 자체에 대한 부정이다. 국가적 자살골이라고까지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가 민주화 투사로 위장한 반국가 세력이나 조폭 유사 세력의 놀이터로 전락하는 것을 방관할 수는 없다. “돈 받은 자=범인” 대신 “특검 포함 수사 거부자=범인”이라는 팻말을 세워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결코 정신적으로 죽지 않았음을 온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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