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유노조, 대기업'를 조직한 귀족노조, 노(勞)에 의한 노의 착취 만들어내
'비정규직 철폐'는 미래세대 기회의 박탈...공공부문 정규직 신규채용은 꿈도 못 꿔
'제3노조' 나타나..."기존 노조는 직원 위한 노조가 아닌, 정치적 이념 따르는 노조"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의 ‘첫 행선지’는 2017년 5월 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였다. 문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임기 내에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참석자로부터 큰 환호를 받는다.

하지만 의문이 제기된다. ‘첫 행선지’는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왜 인천국제공항공사였을 가? 그리고 2017년 당시 한국경제가 풀어야할 가장 긴급한 현안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인가? 수긍하기 어렵다. 짐작컨대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은 데 대한 나름의 답방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문대통령이 발설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은 그 후 우리 사회에 큰 후과(後果)를 가져왔다. 하지만 당시 이를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지난 2월 1일 민주노총 산하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상담원 노조는 보험공단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총 파업을 벌었다. 그 후 7월 23일 민주노총은 건보공단 앞에서 대규모집회를 열고 상담원 노조의 파업을 지원했다. 콜센터 고용문제를 협의해온 보험공단 ‘사무논의협의회’는 10월 21일 15차 회의를 열고 ‘소속기관 신설’을 통해 콜센터 직원을 직고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1600여명의 정규직 전환이 10월 21일 결정된 것이다. 그 같은 전환결정에는 민주노총의 화력지원이 결정적이었다. 어느 듯 한국사회는 논리와 명분이 아닌 힘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미개사회로 변해버린 듯하다.

O 비정규직은 악(惡)의 근원인가?

한국노동연구원의 『비정규직 고용과 근로조건, 2017』를 인용한다. 근로자는 <그림-1>에서처럼 ‘정규직 여부, 노조조직 여부, 대기업 여부’로 구분된다. 모든 근로자는 “정규직, 유(有)노조, 300인 이상 대기업”에 소속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정규직(67.2%), 유노조(25.7%), 대기업(12.4%)이라는 세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근로자(일자라)는 전체 근로자의 7.6%다. 그림에서 ‘D’이다. 귀족노조는 D를 조직한 것이다. D와 대척점에 놓인 것이 ‘E’이다. 즉 비정규직이며, 무(無)노조, 중소기업이다. E에 속한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27.0%이다. 사각지대에 놓였다고 보더라도 과장이 아닌 근로자 군이다.

보호의 정책적 방점은 어디에 찍혀야 할 가. D가 이난 E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D에 모든 혜택이 집중되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가장 힘 있는 D를 조직한 것이다. 현대자 노조 지부의 생산직 의 임금은 협력업체 임금보다 훨씬 높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민주노총’ 소속이라는 사실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고는 살인’이라는 끔찍한 한 구호가 나온 것이다. 다소 과장하면 ‘정규직, 유노조, 대기업 ’를 조직한 귀족노조가 그렇지 못한 의 이익을 침탈한 것이다. 노(勞)에 의한 노의 착취일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노동계가 요구하는 대로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모든 문제가 풀리는 가? ‘비정규직 철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정치구호는 될 수 있어도 현실적인 정책목표는 될 수 없다.

비정규직은 ‘악의 근원’인가? 우선 ‘정규직’은 법적 용어(개념)가 아니다. 일종의 저널리즘 용어인 것이다. 경제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면, ‘근로계약의 종료기간이 명시되지 않은 무기계약’이 정규직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규직은 ‘시간근로’가 아닌 ‘상용근로’를 의미할 뿐이다. 마트 등에서 계산원으로 고용된 주부는 ‘시간근로’의 전형이다. 그러면 모든 계산원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옳은 가?

악의 근원은 딴 데에 있다. 탈(脫)산업사회를 넘어 ‘지식정보화사회’로 넘어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컨베어 벨트’를 연상시키는 정규직·비정규직 구분이 적절하냐는 것이다. 경제 조직이 분화됨에 따라 고용형태가 매우 다양화되고 있음에도 근로자를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구분해 ‘비정규직를 악마화 시킨 것’ 자체가 잘못 된 것이다.

비정규직을 민간이던 공공부문이던 모두 정규직화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무늬만 정규직이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 가? 비정규직 문제의 뿌리는 ‘정규직 과보호’에 따른 노동시장 이중구조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해야 한다. 정규직의 과보호를 완화하려면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혜택을 집중(공공부문+정규직)시키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고 인기발언을 한 것이다.

그는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평등’을 국정철학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는 미사여구이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무분별하게 정규직화하면, 공공부문 정규직이 되는 것을 목표로 정진하는 미래세대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라는 ‘결과적 정의를 위해 과정의 공정성’을 훼손한 것이다. 한 쪽에 특혜를 주면 그 부담을 다른 계층이 져야하는 것은 철칙이다.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고 다른 누구에게 혜택을 줄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무분별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청년 세대에 비수를 꽂은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몰랐다면 무능한 지도가가 아닐 수 없다.

O 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원 직접고용이 부당한 이유

그동안 건보공단은 콜센터 상담사 직고용을 놓고 4가지 대안을 검토했다. ‘민간위탁 유지, 자회사 설립, 소속기관 신설, 공단 직접고용’이 그것이다, 1안은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고 3안이 이번에 채택된 것이다, 신설될 소속기관은 ‘같은 건강보험공단에 속해’ 있기 때문에 ‘사실상’ 직고용이나 마찬가지다.

콜 센터 상담사 직고용이 부당한 이유는 3가지로 압축된다. 가장 큰 이유는 ‘공정성’ 위배이다. 상담사 직고용은 공단은 부정하고 있지만 순차적으로 ‘취업준비생’의 보험공단 정규직 진입의 기회를 축소시킬 것이다. 둘째 건보공단 고객센터 직원은 이미 외주업체 정규직이기에 ‘민간부문 정규직을 공공부문 정규직화’ 할 필요는 없다. 셋째 건보공단은 세금과 건강보험료로 운영되기 비(非)수익창출기관이다. 따라서 ‘대규모 인원의 정규직화’는 많은 재정을 추가로 필요하게 하며 이는 결국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은 이 같은 지적을 부인하고 있다. 직고용된 상담사들은 ‘신설기관’에서 별도로 관리하기 때문에 이번 조치로 향후 취업준비생의 보험공단 취업에 어떤 불이익도 없다는 것이다. 만약 불이익을 주장하면 이는 ‘가짜뉴스’라는 것이다. 견강부회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정규직 채용이 크게 감소했다. 중앙정부 산하 공기업 36곳의 신규 채용이 2019년 9326명에서 2020년에는 6833명으로 줄다가 급기야 올 상반기엔 1911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년으로 치면 4000명으로 줄 것이다. 이 같은 감소추세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무관할 수 없다.

공기업의 수지도 크게 악화되었다. 36개 공기업의 순이익 총합은 2016년 13조9400억원에서 작년에는 2065억원 순손실로 급전직하 했다. 앞으로 공기업의 신규채용 여력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공기업 종사자를 과잉 보상했다는 방증인 것이다. 취준생의 공기업 취업은 그만큼 옥조여질 것이다.

이번 직고용의 당사자인 건강보험 재정수지도 급격히 나빠졌다. 2017년까지 7077억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던 건강보험은 문재인 케어 도입을 계기로 2018년에는 적자전환을 했고 2019년에는 2조 7천억의 적자를 기록했다. 건강보험 재정주지 악화는 건보공단의 전반적인 운영을 압박할 것으로 예측된다. 상담사의 직고용은 필히 비용증가 요인으로 나라탈 것이다.

O 제3 노조 신설 움직임

서광이 비치고 있다. 깨어 있는 젊은 근로자들이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1일에 서울교통공사 제3노조 ‘서울교통공사 올(All)바른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신설된 제3의 노조는 기존노조를 ‘직원을 위한 노조가 아닌 정치적 이념을 따르는 노조’라고 비판하고 있다. 2018년에 행해진 ‘불공정한 일반직 전환을 전면 무효화하고 전환직은 자회사로 재분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맥을 제대로 짚은 주장이다. 그리고 향후 활동방향으로 ‘불공정한 정규직 전환’에 대항할 것이라고 한다.

O 에필로그

문재인 정권은 미사여구에 함몰됐다. 국정실패의 근저 요인은 깊은 철학적 고뇌 없이 표피적인 인기발언을 대단한 국정철학인양 포장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좋은 것을 연결하면 필히 ‘과다식별’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면 결과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결과적 정의’는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결과적 사실’만 존재한다. 좋은 것을 연결한다면 “치타허리와 독수리 날개 그리고 코끼리 다리”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연결에 성공했다손 치더라도 작동불가의 괴물에 지니지 않는다. 문재인정부의 정책 행태가 그래왔다.

비정규직은 척결대상이 아니다. 주부의 계산원 일도, 대학의 주차 관리 일도 모두 필요한 일이다. 정책의 본령은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시킬 수 있는 물적 토대를 튼실하게 하는 것이다. 계산원을 영업직 정규직원으로 임명한들, 주차관리원을 총무과 직원으로 임명한들 무엇이 본질적으로 달라지겠는 가.

인국공 보안요원의 정규직 전환,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원의 정규직 전환 등에서 무슨 본질적인 변화가 있었는 가를 자문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민간기업인 현대제철 외주 업체의 본사 직고용을 요구하는 점거농성이 벌어진 것이다.

文 정부는 ‘공정을 표방하면서 불공정 조장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근로형태를 감안했을 때, ‘정규직·비정규직’ 이란 용어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존재이유’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비정규직도 마찬가지다. 용어를 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문대통령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인기발언으로 결과적으로 ‘노동시장에 아직 진입하지 못한 취준생의 등에 칼을 꽂은 것’이라고 한다면 과장일가?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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