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죄의 非범죄화'에 대하여─무엇을 처벌할 것인가?

1
박순종 펜앤드마이크 기자

“피고인은 무죄.”

내 사건의 재판장을 맡은 서울북부지방법원 형사합의13부 오권철 부장판사가 내게 ‘무죄’를 선고한 그 순간, 지난해 8월19일 서울 방배경찰서로부터 내 앞으로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때로부터 어언 1년간 경찰·검찰과 씨름을 한 장면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여타 언론에서도 내 사건을 많이 다루게 되는 바람에, 내 사건은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들 아는 사건이 됐지만, 다시 한번 설명을 하자면, 나는 허위사실을 적시해 조국 전(前) 법무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니까 내가 조 전 장관을 비방·중상할 목적으로 일부러 거짓말을 한 탓에 조 전 장관의 명예가 훼손됐으니 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사건은 재판부의 배려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19일 오전 9시 30분 서울북부지법 702호 대법정에서 배심원 선정 절차를 거쳐 같은 날 오전 11시부터 진행된 서울북부지법 2021고합36 사건의 공판은 날을 넘긴 20일 오전 1시 25분경 재판부의 ‘무죄’ 선고로 끝이 났다. 오 부장판사는 ‘무죄’ 선고가 배심원단의 평의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장장 3시간에 걸친 배심원단 논의 결과 내가 쓴 기사로 인해 조 전 장관의 명예가 훼손됐음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났다는 것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배심원단 평의에 앞서 오 부장판사가 내 사건 검찰의 공소장을 다시 한번 읽어준 부분이다. 오 부장판사는 내가 쓴 기사의 사본을 배심원들에게 보여주면서 검사가 작성한 공소장에는, 피고인(박순종)이 조 전 장관이 인터넷 커뮤니티인 클리앙의 아이디(ID)를 사용해 잡지 ‘맥심’(MAXIM)의 표지 사진을 게재했다고 했으나 실제로 조 전 장관이 해당 ID를 사용해 맥심의 표지 사진을 게재한 사실이 없으므로 ‘기사 내용은 허위’라는 주장이 적혀 있지만, 피고인이 작성한 기사를 읽어보면, 조 전 장관이 문제의 ID를 사용해 ‘맥심’의 표지 사진을 게재했다는 취지로 적힌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어쨌든, 해당 기사 내용에 관한 이야기는 별론으로 하고, 조 전 장관이 나를 고소함으로 인해 ‘명예훼손죄를 비(非)범죄화하자’는 조 전 장관의 주장을─의도하지않은 계기로─고찰해 볼 기회가 생겼으므로,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우리 독자들에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우선 조 전 장관이 공인(公人)에 대한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쳐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조 전 장관은 지난해 7월말 조전 장관의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을 통해 제보를 받을 목적의 이메일 주소를 개설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자신 또는 자신과 관련한 허위사실 유포에 ‘하나하나 따박따박’ 대응한다는 취지로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에 조 전 장관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공인에 대한 광범위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자는 평소 신념을 스스로 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러자 조 전 장관은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비(非)범죄화를 주장한 적이 없고, 오히려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은 처벌돼야 한다”며 공인에 대한 폭넓은 비판은 허용할지라도 명백하고 악의적인 허위보도에 대한 형사 처벌 철폐를 주장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대응하고 나섰다.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엄격히 별개의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만 선택적으로 철폐하자는 주장, 동의 못 해”

과연 그럴까?

엄밀히 말하면 우리 형법(‘광의의 형법’을 말함)은 ‘명예훼손죄’와 관련해 ‘사실 적시’와 ‘허위사실 적시’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어이쿠! 법을 공부하지도 않은 아마추어 기자가 약을 파는구먼!’하고 생각할 이도 있겠지만, 이는 사실이다.

《형법》

제307조(명예훼손)
①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10조(위법성의 조각) 제307조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벌칙)
①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③ 제1항과 제2항의 죄는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실제로 《형법》(‘협의의 형법’을 말함)은 제307조(명예훼손)에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1항)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2항)고 정하고 있다. 1항과 2항의 명문 규정에서 상이한 부분은 ‘사실 적시 명예훼손’보다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쪽 형량이 보다 중(重)하다는 점뿐이다.

다만 우리 형법은 “진실한 사실로써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형법 제310조) 등의 위법성 조각 사유를 도입했는데,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타인의 명예가 훼손된 경우, 위법성은 인정되나, ‘참작 사유’(공익성)가 인정될 경우 위법성을 조각하는 방식으로 가해자를처벌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조문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사실을 적시했다고 하더라도 ‘참작 사유’가 없을 경우에는 처벌받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 형법은 ‘사실을 말해도 처벌하고 허위사실을 말해도 처벌한다’고 정하고 있다” 내 설명에 동의하지 않을 법학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결론을 먼저 제시하자면 나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은 비범죄화하고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만을 남겨두자’는 조 전 장관의 주장에 강력히 반대한다. 대신 ‘명예훼손죄 자체를 비범죄화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사실, 외국, 특히 영미법계 국가들에서는 명예훼손죄를 물어 사람을 처벌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 이는 ‘어떤 행위를 형벌로써 다스릴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기반이 대륙법계 국가의 그것과 매우 다른 데에 기인한다.

기본적으로 영미법계 국가의 형법은 사인간의 분쟁에 있어서 ‘타인의 소유권에 대한 침해 행위’만을 처벌하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고의로 다른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살인)는 해당 피해자의 자기 신체에 대한 자기 소유권을 침해한 것이요, 고의로 다른 사람 신체의 일부를 손망케 한 행위(상해) 역시 해당 피해자의 자기 신체에 대한 자기 소유권을 침해한 행위다. 타인의 재물을 고의로 훔치는 행위(절도)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기준에서 볼 때, 영미법계 국가에서 대개 어떤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되는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