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신냉전 시대, "죽고 사는 위협" 앞에서 "종전선언" 타령만 하는 문정권
북한,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밝힌 계획에 따라 '5대 전략무기' 개발...'핵보유 기정사실화' 넘어 '핵강국' 지위 추구
한국 여권 정치인들과 미국 내 좌파 단체들의 워싱턴 정가 로비 극성...바이든 행정부, 예전의 미국 정부들과 같지 않아
종전선언 또는 평화선언이 국가의 패망과 대학살로 이어진 역사적 사례 상기해야...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세상이 많이 혼란스럽다. 미·중 간에는 신냉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미·러 간에도 ‘작은 신냉전’이 전개되고 있다. 중국은 대륙과 해양 그리고 우주 및 사이버 등 모든 공간과 군사, 경제적, 정치, 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에 도전하고 있다. 미국에게는 ‘중국판 스푸트니크 충격(Sputnik Shock)’이다. 유럽에서는 핵병기와 에너지 자원의 무기화를 통해 초강대국으로의 복귀를 꾀하는 러시아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즉, 또 한번의 세계 위기가 예고되고 있다. 그것이 기존 패권국이 성장하는 도전국을 용인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에 의한 것이든,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도전국이 미래에 대한 초조감으로 조성하는 위기든, 또는 기존 패권국과 도전국 모두가 쇠락할 때 지도력 공백이 가져오는 ‘킨들버그 함정(Kindleberg Trap)’에 의한 것이든, 세계는 또 한번의 큰 위기를 맞이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아시아의 신냉전은 “현상유지 세력인 미국과 현상 타파세력 세력인 중국 간의 전면 경쟁 구도 하에서 중·러·북 대륙세력과 미국과 미국의 민주주의 동맹국들로 구성된 해양세력 간의 세력 경쟁 및 군비경쟁”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 구도 하에서 당면 위협이자 갈수록 엄중해지는 미래 위협인 북핵과 중국의 팽창주의는 미국에게 ‘심대한 위협’이, 일본에게 ‘결정적인 위협’이 그리고 한국과 대만에게는 ‘죽고 사는 위협’이 되고 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동북아 그리고 한반도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종전선언에 올인하는 모습이다. 당면 위협과 미래위협에 동시에 대비하면서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지키기에 바빠야 할 시기에 종전선언 타령을 하는 있는 것이다.

최빈국 북한의 핵강국 행보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국방과학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을 제시하고 ‘5대 전략무기’ 개발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5대 전략무기란 고체연료 다탄두 대륙간탄도탄(MIRVed ICBM), 장거리 순항미사일(C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및 이를 운용할 핵추진 잠수함(SSN), 변칙기동 탄도미사일(pull-up BM), 극초음속 미사일(HGV, HCM) 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핵강대국들이 보유해온 무기들이지만, 지금 최빈국 북한이 이런 ‘게임체인저들’을 선보이면서 기염(?)을 토하고 있다.

북한은 2021년에만 여덟 차례나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중거리 순항미사일, KN-23 변칙기동 탄도미사일, ‘화성-8형’ 극초음속 활공체 등이 포함되었다. 변칙기동 탄도미사일은 자유낙하하는 미사일의 궤도를 계산하여 요격하는 통상의 미사일 방어(MD) 시스템으로는 막아내기 어렵다. 극초음속 활공체와 변칙기동 SLBM은 더욱 그렇다. 9월 28일 발사된 ‘화성-8형 미사일’에 대해 합참은 초보단계의 초음속 활공체로 추정했지만, 러시아와 중국만이 실전 배치한 극초음속 무기들을 북한이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10월 19일 발사된 변칙기동 SLBM도 그렇다. 북한의 말대로 ‘측면기동 및 활공도약 기동’ 이 가능한 것이라면 변칙기동 SLBM이라는 뜻이다. 수중에서 발사되는 특징으로 인해 SLBM 자체도 방어하기 어려운 무기인데 거기다가 변칙기동 기능까지 입혔다는 것이다. 특히, 상대국의 입장에서 보면 다탄두 ICBM이나 극초음속 미사일은 반드시 선제해야 하는 대상이어서 핵전쟁을 유발할 수 있는 지극히 ‘불안정한 무기((destabilizing weapon)’로 분류된다.

북한의 이런 핵행보를 종합하면 적어도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북한은 ‘핵보유 기정사실화’ 목표를 넘어 명실상부한 핵강국의 지위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는 대화나 협상을 통한 북한 비핵화가 사실상 불가능함을 재확인시켜 주고 있다. 둘째, 핵대화를 할 때든 평화쇼를 연출할 때든 늘 뒤로는 핵무기 개발하는 ‘대화 따로, 핵개발 따로’라는 북한의 이중전략(two-track strategy)을 재확인할 수 있다. 지금 한국 정부는 이런 북한과의 종전선언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며, ‘북한 비핵화’라는 아젠다는 온데간데 없다.

종전선언을 향한 심상치 않은 움직임

종전선언을 성사시려는 한국 정부와 여기에 대한 미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 9월 21일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연속 3년째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한 국제협력을 호소했고,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부부장은 9월 25일 담화를 통해 “종전선언은 흥미롭고 좋은 발상”이라며 화답했다. 10월 15일에는 윌리엄 번스 미 CIA 국장이 문 대통령을 예방했고, 10월 19일에는 미국의 15개 정보기관들을 관장하는 애브릴 헤인스 정보국장(DNI)과 일본의 정보수장인 다키자와 히로아키 내각정보관이 서울에 와서 국정원장과 만났다. 이에 앞서 9월초에는 노덕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방미하여 성김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만났다. 노 본부장은 회담 전에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를 논의한다”고 했고, 성김 대표는 회담 후에 “종전선언도 논의했다”고 했다. 미국 민주당을 향한 한국 여권 정치인들의 종전선언 로비도 활발했던 것으로 기억되며, 미국내 좌파 한인단체들의 로비도 극성스럽다. 지난 5월 20일 미 민주당 하원의원 네 명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촉구하는 ‘한반도평화법안’을 발의한 것은 이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런 움직임들을 종합해보면, 서울-평양 간 내면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한국 정부가 종전선언과 대북제재 완화를 위해 미·일과 의견조율을 시도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미국도 예전의 미국이 아닌 것으로 느껴진다. 예전같으면 한국의 어떤 이념성향의 정치세력이 어떤 주장을 하든 한반도 안보와 한미동맹에 해로운 것이라면 아예 무시했지만, 지금 바이든 행정부는 외교성과를 위해서 좌파들의 로비도 수용하고 한국 국민의 운명도 내몰라라 하는 모습이다.

종전선언은 난데없고 뜬금없으며 위험하다

이 시기에 한국 정부가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적절치 않은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신냉전이라는 국제 안보환경이나 북한의 핵강국 행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기존의 대남 전략을 그대로 유지한 채 핵보유 기정사실화를 넘어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규격화, 다종화 등을 추구하고 강대국형 전략무기까지 욕심내고 있는 북한과 종전선언을 한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다. 현 대통령의 임기가 반 년밖에 남지 않았고 5개월 후에 대통령 선거가 있다는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흑심(黑心)을 버리지 않은 상대와의 섣부른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들이 나라의 패망과 대학살로 이어진 역사적 사례들을 떠올리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태평성대로 착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불순한 동기들을 감추고 있는 것인지 가늠할 길이 없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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