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 간 하나 마나한 신경전을 보면, 한국의 에너지 안보가 심히 걱정된다.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원자력을 버리고 풍력과 태양광을 한다면서 전 국토를 유린한 마당에 에너지 수급의 사활이 걸린 자유항해 수호에 참여해 달라는 우방의 제의에도 눈을 감고 있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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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전 세계가 에너지 대란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 공포에 빠져 있다. 화력발전용 석탄부족에 따른 전력난, 천연가스 폭등과 유가 앙등으로 인한 유럽의 아수라장, 셰일가스 생산중단에 따른 미국내 유가상승 등 전세계가 쇼크에 빠져 있다. 에너지 대란은 각종 공산품은 물론이고 식품 가격까지 거대한 나비효과를 일으키면서 미증유의 혼란을 가져다 주고 있다. 이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모두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화석연료에서 그린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현실을 도외시하고 가장 효율적인 원자력을 도외시하고 풍력, 태양광을 무리하게 도입한 결과다. 태양광 패널이 산과 들을 망가뜨리고 발전원가가 터무니 없이 높은 풍력발전 시설이 애물단지가 된 것은 유럽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글로벌 에너지 대란에서 급속히 부상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러시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0년에 유럽의 에너지 위기를 정확히 예언했다. 그는 독일이 왜 천연가스를 싫어하고 탈원전을 하는지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다. 집에 난방은 해야 할 것 아니냐, 둘다 싫으면 장작을 땔래, 그러면 시베리아 장작을 가져가라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푸틴의 이 유머는 1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정확히 적중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0월16일 〈러시아 에너지 윅〉에서 지리멸렬한 유럽의 에너지 위기에 대해 냉엄한 훈계를 했다. 천연가스 가격폭등은 공급자인 러시아를 탓할 필요가 없다, 수요예측을 하지 못하고 과거 10년동안 풍력같은 소위 재생에너지에 의존한 당연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풍력발전의 경우 생산이 들쭉닐쭉하다는 점에서 악명이 높았고 저장을 하기에도 버거웠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에는 기상 조건이 열악해 풍력발전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바람에 전력부족현상이 발생했는데 바로 이점이 천연가스 가격 앙등을 불러 일으켰다고 진단했다. 수요는 계절적이어서 여름에 겨울을 대비해야 했는데 유럽이 바로 이 점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유럽은 단기 공급과 소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존했지만 전력수요 폭등이 천연가스 가격을 더욱 끌어올렸다고 진단했다. 푸틴은 유럽이 원전과 천연가스로 발전했을 때는 에너지 위기가 없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또 러시아의 전력가격은 시간·메가와트당 20유로인데 반해 리투아니아는 256유로, 독일과 프랑스는 300유로. 영국이 320유로라고 가격을 적시하면서 다른 나라의 전력공급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푸틴은 〈러시아 에너지 윅〉에서 러시아는 올 연말까지 기록적인 양의 천연가스 공급이 있을 것이라면서 유럽대륙전체의 에너지 안보를 더욱 강화하는데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르크스트림, 발칸스트림, 노르트스트림1과 2가 유럽국가들과 공동으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유럽의 수요에 따라 향후 공급안정과 예측가능성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유럽전체가 연간 540억 입방미터의 가스를 생산하는데 러시아는 가스프롬 한 회사에서 그 10배를 생산한다면서 생산을 더욱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가스프롬의 비축량만 35조 입방미터로 거의 제한이 없다면서 유럽에 대한 공급을 계속 늘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은 온실가스 감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노르트스트림1으로 공급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는 탄소함유량이 미국산 천연가스보다 3배나 낮다고 과시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정치적 편견이나 상투적인 소리를 집어치우고 에너지 공급자와 수요자간 의미있고 실질적이며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글로벌 메커니즘을 논의해야 하 한다고도 했다. 푸틴은 정치적 요소를 고려하지 말고 우크라이나 천연가스 파이프를 그대로 이용하라고 가스프롬에 지시했습니다. 다른 파이프라인을 이용하면 우크라이나에 통과료를 줄 필요가 없어 연간 30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를 그런식으로 곤경에 몰아넣을 필요가 없다면서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있어 가스파이프라인은 더 이상 러시아 견제수단도 되지 않으니 이용하고 통과료를 주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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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터)

서방이 러시아를 흔드는 카드로 활용해 온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푸틴은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NATO의 동진전략에 편승해 유럽편에 서려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적 압박을 가하고는 있지만 무력을 동원할 가능성은 적은 편이다. 서구미디어에 세뇌된 이들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로 병탄했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이는 원래 러시아 영역으로 압도적 다수인 러시아계인구의 국민투표로 결정된 사안이다. 같은 슬라브 문화권으로 다른 언어를 쓴다지만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는 서로 의사소통이 될 정도로 이질감이 없다. 지리적으로도 인접해 우크라이나인들이 경제사정이 훨씬 윤택한 러시아로 이주해 취업도 하고 거주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우크라이나는 자연스레 러시아에 동화되거나 그 영향권안으로 들어올것으로 푸틴은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러시아 에너지 윅〉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미 CNBC의 해들리 갬블(Hadley Gamble) 기자와 가진 솔직 담백한 대담에서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뼈 있는 질문에 대해 “무기를 사용한다고 하면 무슨 분쟁이 일어났다는 소리인데 보면 알지 않느냐 러시아는 에너지를 무기화하지 않는다,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응답했다. 그야말로 우문현답이었다. 에너지는 푸틴의 답변과 상관없이 현실적으로 보면 세계를 쥐고 흔드는 러시아의 무기가 됐다. 그리고 그 무기를 러시아의 손에 쥐어준 것은 다름 아닌 독일의 메르켈을 비롯한 유럽의 위정자들이었다.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에너지를 무기로 확보한 러시아의 푸틴은 세계를 아주 여유롭게 가지고 놀고 있다. 국제지정학이라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마음 먹은대로 말을 두는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로 변신했다. 에너지와 경제력이 가장 강력한 무기인데 굳이 무력을 동원해 전쟁을 벌일 필요가 있느냐는 식이다. 이는 타이완을 통일하기 위해 무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는 그의 발언에서 나타난다. “중공이 구매력에서 미국을 앞서고 있으니 경제력으로 국가목표를 이루면 될 일”이라는 푸틴의 립서비스가 아주 절묘하다. “시진핑이 신해혁명 110주년 연설에서 평화통일을 언급했다고 인용하면서 군사위협은 없다”고도 했다. 물론 현실과는 다른 엉뚱한 발언이지만 굳이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지 말라는 복선이 깔린 노련한 한 수였다. 남지나해와 관련해서는 해당지역과 관계없는 강대국의 방해 없이 모든 나라에 국제법에 따른 대화의 기회가 부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법에 따라야 한다는 말은 자유로운 항해를 지지하는 것 같지만 해당지역에 관계없는 강대국이 어느 나라 인지에 대해서는 적시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KGB출신다운 노련함이 묻어나는 발언으로 남지나해보다는 러시아의 국익과 직결되는 북극해항로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푸틴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후변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거리가 짧은 북극해 항로가 열리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항구와 기반시설을 착착 완비해 가고 있다면서 러시아가 이를 주도하겠다고 과시하고 있다.

에너지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 간 하나 마나한 신경전을 보면, 한국의 에너지 안보가 심히 걱정된다.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원자력을 버리고 풍력과 태양광을 한다면서 전 국토를 유린한 마당에 에너지 수급의 사활이 걸린 자유항해 수호에 참여해 달라는 우방의 제의에도 눈을 감고 있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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