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사진=연합뉴스]
14일 오후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사진=연합뉴스]

대출 총량 관리로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로 귀결된 지 오래다.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른 채 계속 오르고,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은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공급 확대보다 투기 수요 억제에 방점이 찍힌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내년에도 가계 대출 관리를 지속할 뜻을 밝히고 있다.

금융당국은 10월 중 ‘고강도 가계대출 규제 정책’ 예고

더욱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14일 ‘9월 중 가계대출 동향’을 발표하면서 10월 중 추가적인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고강도 가계대출 규제’ 정책을 추가적으로 실행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과 금융권에서는 ‘대출 규제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오히려 부채 문제를 악화시키게 될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집값 상승의 근본 원인은 공급 부족에서 비롯된 정책 실패에 있는데, 정부는 ‘대출만 조이면 집값이 안정될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게 그 골자이다.

지난해 주택매매 건수는 역대 최대치, 올해 수도권 집값 상승세는 전년보다 가팔라

고강도 대책에도 좀처럼 집값이 잡히지 않자, 정부는 금융당국에게 올해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을 5~6%로 관리하도록 일률적으로 주문했다. 이 증가율을 맞추기 위해 은행마다 특정 대출을 팔지 않는 식으로 과도한 대응책을 내놓으면서 실수요자의 피해는 커지고, 시장의 피로감은 가중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주택문제 전문가와 경제학자들은 가계 대출을 조였다고 해서 집값이 안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 13일 KB금융그룹 KB경영연구소가 한국주택학회와 함께 개최한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한 지속가능한 주택 정책 모색' 세미나에선 고강도 부동산 정책과 가계대출 대책에도 주택시장이 여전히 불안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날 세미나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주택매매가격은 10.6% 상승한 데 이어, 올 들어서도 1~8월까지 13.1%의 상승률을 보였다. 정부의 대출규제에도 불구하고 집값 상승세가 더욱 가팔라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주택매매건수는 약 127만9000건으로 2006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대치였다. 강민석 KB경영연구소 박사는 "대출 규제만으로 주택시장 안정화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경제학회, “집값 폭등으로 급증한 가계대출이 금융위기 원인될 수도” 경고

같은 날 국내 대표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한국경제학회’는 “주택 공급 실패로 가계 부채가 위험한 수위”라며 경고하고 나섰다. 가계부채 문제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금융 당국이 강력한 대출 규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경제학자들은 “집값 때문에 가계부채가 늘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학회는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8일까지 경제토론 패널 소속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가계부채와 관련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28명 전원이 현재 가계부채 규모가 높은 수준이라고 답변했다고 13일 밝혔다. 특히 응답자의 43%는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답변했다.

가계부채 규모가 높다고 답변한 경제학자들 중에는 “이런 상황에서 매우 부정적인 충격이 발생하면 가계부채가 금융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까지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계부채가 높은 원인의 89%가 ‘주택담보대출 등 주거 서비스 자금 수요’가 꼽혔다. 사실상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집값 상승이 가계부채 급증이라는 위험 요인을 키웠다는 평가인 셈이다.

한국경제학회 소속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주담대 증가가 (가계 부채 증가의) 가장 큰 요인이고, 임대차 3법 이후 전세금 대출도 늘었다”며 “특히 젊은 세대가 증권 투자 등 비생산적이고 투기적인 행위를 하기 위한 대출이 계속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정 서강대 교수, “주택공급 확대하고 대출 규제 제거해야”

‘안정적인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요인’에 대한 질문에는 ‘부동산 시장 안정’이라고 답변한 비율이 61%로 가장 높았다. ‘금리 정책과 유동성 관리’가 18%,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11% 등으로 뒤를 이었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주택 공급 정책을 실시하고,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 규제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며 “부동산 공급 정책에 실패한 정부가 대출 규제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부채 문제를 악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집값을 잡으려고 돈줄을 막았는데,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대출은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평가인 셈이다.

대출 막힌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은 발만 동동 굴러

대출이 막히면서,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은 아무런 대책이 없이 발만 동동 구르는 실정이다. 은행 대출을 끼지 않고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집값이 폭등한 반면, 은행들의 대출 문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시중 은행 앞에 전세자금대출 상품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1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시중 은행 앞에 전세자금대출 상품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집단대출 은행이 정해지지 않은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은 상황은 더 심각한 것으로 알려진다. 1금융권이 집단대출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입주 예정자들은 중도금·잔금을 치르기 위해 2금융권뿐만 아니라 불법 사금융에까지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시중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도 쉽지 않다. KB국민·우리은행이 지점별 한도 관리로 전환한 데 이어, 국민은행은 잔금대출 시 분양가·KB시세·감정가액 중 가장 낮은 것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대출 가능액이 대폭 줄었다.

신생 ‘토스뱅크’에 수요 몰려, 영업개시 나흘 만에 대출 한도 대부분 소진돼

특히 이달 5일 문을 연 ‘토스뱅크’도 영업 개시 나흘 만에 올해 대출 한도 약 5,000억 원 중 3,000억 원 이상을 소진해 금융 당국에 한도 증액을 요청한 상황이다. 당초 토스뱅크는 출범 초기인 만큼 가계대출 증가율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것으로 전망되면서, 대출 난민들의 새로운 피난처가 될지에 금융권의 관심이 쏠렸다.

예상대로 출범 직후 대출 수요가 몰리면서 토스뱅크는 영업 중단 위기를 맞았다. 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와 금융회사들의 대출 제한으로 토스뱅크에 예상보다 많은 대출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토스뱅크는 인터넷은행 설립 취지 중 하나인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비중 확대를 위해서라도, 대출 한도 추가 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금융당국에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토스뱅크는 한도 소진으로 인한 대출 영업 중단 사태를 막기 위해 지난 9~12일 나흘 간 사전 신청자 대상 신규 가입을 한시적으로 제한했다. 이후 고객 불편을 막기 위해 지난 13일부터 10만명의 사전 신청자를 대상으로 추가 신규 가입을 재개했다. 하지만 남은 대출 여력이 많지 않아 조만간 한도를 모두 소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은행권 관계자는 "집값 상승의 원인은 공급 부족 등 정부의 정책 실패에 있는데 애먼 대출을 잡으려다보니 결국 실수요자, 서민의 피해만 커지는 중"이라며 "집단대출이 막히면서 전국 곳곳에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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