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 칼럼] 삼성 현대차 LG가 한국을 떠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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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8.04.22 17:46:51
  • 최종수정 2018.04.2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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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내쫓는 나라’로는 암담한 미래만 기다린다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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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니의 공동 창업자로 1999년 타계한 모리타 아키오는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인 중 한 명이다. 지금도 일본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소이치로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의 경제부흥을 상징하는 영향력 있는 기업인이었다. 소니의 국제화에 앞장섰고 1980년대 글로벌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워크맨 신화(神話)’의 주역이기도 했다.

그런 모리타가 생전에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놓은 돌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미래의 기업은 조국의 열망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이윤이 가장 크고 규제는 가장 적은 곳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경고였다. 전후(戰後) 일본의 급속한 경제 부흥 과정에서 일부 매스컴과 좌파 성향 지식인을 중심으로 기업 때리기가 기승을 부리는데 대한 일침(一針)의 성격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제요인만으론 본사 해외이전 충분히 가능

얼마 전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공간에서는 삼성이 본사를 해외로 옮기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루머가 심심찮게 나돌면서 화제가 됐다. 삼성이 본사용으로 사용할 대형 건물을 이미 사들였다는 말도 나왔다. 물론 아직은 삼성이 구체적 계획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인터넷 포털에도 삼성 해외이전’ ‘삼성 본사 해외이전같은 검색어가 뜨기 시작한 것은 종전에 찾기 힘든 변화다.

다른 변수를 생각하지 않고 경제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삼성 본사의 해외 이전은 충분히 생각할 만한 상황이다. 2013년 기준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 전체 매출 중 해외매출 비중은 90%나 된다. 삼성중공업은 96%로 더 높고 삼성SDI90%, 삼성디스플레이는 83%.(자료 출처: 국가의 자격-“이래야 나라다”, 정규재 저) 현대자동차나 LG전자 LG화학 매출의 압도적 비율도 외국이 차지한다. 매출과 이익을 대부분 해외에서 올리면서 한국의 국부(國富)와 한국인의 소득에 큰 기여를 하고 있지만 돌아오는 건 눈부신 성취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대기업을 못 죽여서 안달인 나라가 한국이다.

세금 측면에서도 본사 해외이전은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게 많을 수 있다. 삼성 현대차 LG 포스코 한화 등 국내 주요 제조업체는 대부분의 매출을 글로벌 시장에서 올리고 있지만 본사가 한국에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법인세를 한국에서 낸다. 냉정히 말하면 이건 한국에 대한 특혜. 외국의 입장에서 보면 왜 당신들은 우리나라에서 돈을 벌면서 세금은 대부분 한국에서 내느냐고 항의할 수도 있다. 게다가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요즘 법인세를 낮추는 반면 한국은 대기업에 대한 세금을 징벌적으로 높여가고 있다. 만약 삼성 같은 대기업이 본사를 해외로 옮기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나라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자국 대기업 못 죽여서 안달인 이상한 나라

몇 년 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어느 대기업 총수 A회장으로부터 베트남 출장 중에 경험한 국빈급 환대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베트남 정부는 A회장 일행의 공항 입국심사를 사실상 면제했다. 차량이 숙소까지 가는 동안 현지 경찰이 안내했고 신호등 통제로 교통 체증도 일절 없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사회주의의 깃발을 내리지 않은 베트남조차 한국인 기업가를 극진히 챙긴 것은 해당 기업의 투자 확대가 베트남의 일자리와 소득을 늘리고 국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그는 필자에게 베트남의 달라진 모습에 놀랐고 한국의 전혀 다른 현실이 떠올라 마음이 착잡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대화를 나누던 때보다 지금 정권 차원의 대기업 옥죄기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심해졌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대기업, 특히 한국의 간판 기업인 삼성에 대한 전방위 압박은 과거 어떤 정권과 비교해도 노골적이고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국민권익위원회에 이어 법원까지 나서면서 일단 제동이 걸리긴 했지만 고용노동부가 핵심 기업비밀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전자의 작업환경보고서를 공개하고 덜컥 발표한 것은 정상적인 나라라면 상상도 하기 힘든 폭거였다. 검찰은 노조 문제를 빌미로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해 잇달아 압수수색을 실시했고 정부당국이 직접 나서 지배구조의 인위적 변경 압력도 가하고 있다.

현 정부 고위인사 중 그나마 합리적 인사로 꼽히던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여당 강경파와 좌파 단체의 주장에 밀려 금융회사가 소유한 계열사 주식을 매각하라고 엄포를 놓은 것도 사실상 삼성을 겨냥한 성격이 짙다. 심지어 집권세력 내 일부 극좌 인사를 중심으로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진 대주주 일가(一家)의 입김을 아예 배제하는 쪽으로 삼성의 경영권 구조를 송두리째 바꾸려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을 동원해 대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무력화하려는 움직임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한국 旅券의 값끌어올린 핵심 주역은 대기업

한국 좌파 일각에서는 우리 대기업과 기업인을 탐욕과 악의 화신쯤으로 몰아붙이는 경향이 적지 않다. 물론 한국사회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기업 분야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점이 없진 않았다자매가 잇달아 '갑질' 물의를 빚은 한진그룹 오너 일가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런 일들을 한번씩 겪을 때마다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잘못이 있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 전반을 적대시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최근 집권세력 주변 사람들의 추악한 민낯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입만 열면 정의(正義) 민주 진보 개혁 등 좋은 말을 떠들면서 실상을 파헤쳐보면 시중의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썩은 집단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우리 기업들은 대한민국과 한국인에 기여한 바가 크다.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주요 기업인의 애국심은 연구대상이 될 만하다. 1세대 기업인의 평전을 읽다보면 종종 눈에 띄는 이병철의 사업보국(報國)이나 박태준의 제철보국 정신 등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비슷한 사례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의 주요 기업인 정도에서나 발견된다. 최진덕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한국의 개발연대 기업인들 사이에 애국심이 이기심을 압도하는 현상은 유럽 시민사회 형성 과정에서는 찾기 어렵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금은 어떨까. 몇몇 신흥 IT 부자들보다는 그래도 삼성의 이재용이나 현대차의 정몽구-정의선, LG의 구본무-구광모 같은 유서 깊은 기업인 가문의 경영자들이 그래도 선대(先代)의 정신을 생각하는 경향이 더 강하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 같은 환경이라면 기업인들에게 애국심을 요구하는 건 염치 없는 일이다 .

누가 뭐래도 삼성 현대차 SK LG 포스코 같은 한국의 대기업들은 세계무대에서 한국인의 자신감과 한국 여권(旅券)의 값을 끌어올린 핵심 주역들이다. 명백한 잘못이 있다면 적정 수준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 대기업들을 지나치게 위축시키는 것은 한국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삼성 현대차 LG 같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이 더 나오게 하는 것과, 그나마 경쟁력을 지닌 몇몇 기업을 쪼그라들게 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대한민국에 도움이 될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소니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의 경고 기억하라

이미 상당수 한국 기업은 공장을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짓는다. 얼마 전 만난 어느 기업인은 "한국에서 공장 신설이나 증설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경제외적인 요인까지 감안하면 주요 대기업이 본사를 해외를 옮기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요즘 한국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고 장담하기도 힘들다. 온라인 공간에서 삼성의 본사 해외이전설이 나돌자 일부 국민 사이에서 이런 나라나 정권이라면 차라리 본사를 과감하게 옮겨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라는 동조론이 적지않게 나온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이토 모토시게 도쿄대 교수는 막강한 실력의 기업을 얼마나 보유했는지가 국력을 좌우하는 시대라고 강조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위대한 기업가들은 유럽과 미국을 강대국으로 만들었고 현재 중국을 강대국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기업을 하나라도 더 키워도 시원찮을 판에 한국이 기업을 내쫓는 나라로 질주하면 우리 앞에는 암담한 미래만 기다릴 뿐이다. 모리타 아키오의 경고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미래의 기업은 조국의 열망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이윤이 가장 크고 규제는 가장 적은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ks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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