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연구원…”대학생 10명 중 6~7명(65.3%) ‘사실상 구직 단념’”
-“일해서 돈 모아봐야 집 못산다”…빚내서 투자하는 대학생들
-“혼자 살거면 밥은 안 굶겠죠”…연애도 결혼도 포기하고 ‘자급자족’ 추구도

구직자가 알림판을 보고있다. (사진=연합뉴스)
구직자가 채용정보판을 보고있다. (사진=연합뉴스)

“일해서 돈 모아봐야 집 못산다”…’빚투’의 늪에 빠지는 젊은이들

작년 2월 서울 소재 대학의 경영학과를 졸업한 A양은 구직을 포기하고 가상화폐 투자와 과외를 병행하고 있다. 연이은 공인회계사 시험 낙방으로 더 이상 시험을 준비할 금전적, 정신적 여력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A양은 “시험 준비를 오래해서 직무역량은 커녕 나이와 인턴 경력도 많이 밀린다”며 “과외를 해서 번 돈으로 가상화폐에 올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렇게 번 돈은 혼자서 호캉스(고급 호텔로 휴양을 가는 것)를 가거나 명품의류 등을 사는데 쓴다”며 “어차피 취직해서 돈 모아봐야 집도 못 살텐데”라고 설명했다. 또 “그래서 연애도 결혼도 다 포기했다”며 “혼자 먹고 살거면 밥은 굶지 않을 수 있을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지난 2월 서울 소재 대학의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B군도 비슷한 처지다. B군은 졸업 이전부터 수차례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연이은 실패로 결국 취직을 단념하고 지방에 위치한 본가로 돌아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전화 통화에서 “최근 주식을 하려고 조금 대출 받았다”며 “목표한 선까지 수익이 나는 순간 그만둘 것”이라 강조했다. 이어 “이렇게라도 시험 준비하는 중에도 조금씩 돈을 벌어 놓지 않는다면 지방에도 집을 못 사고 결혼도 못할 것 같다”고 말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대학생 10명 중 6~7명은 사실상 구직 단념...10명 중 7명 "노력형 부자될 수 없다"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이 최근 전국 4년제 대학 3~4학년 재학생 및 졸업생 2,7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1년 대학생 취업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6~7명(65.3%)은 사실상 구직에 대해 단념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재학생 및 졸업생들이 적극적인 구직을 포기한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역량, 기술, 지식 등이 부족해 더 준비하기 위해’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중 64.9%의 학생이 자신의 역량 부족을 이유로 구직을 포기한 셈이다.

이는 지난 9월 한경연 ‘청년 일자리 인식 설문조사’에서 청년 10명 중 7명이 일자리 상황이 악화 될 것(62.9%)으로 보고, 원하는 직장에 취업할 가능성이 낮다고(69.5%) 생각한다고 조사된 바와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본인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판단과, 일자리 시장 자체가 부정적이라는 판단이 합쳐져 구직 자체에 나서지 않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경연은 “청년들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취업경쟁 속에서 스스로의 취업 가능성을 낮게 진단하고 구직 자신감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는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늦추고 미래의 성장 동력이 저하되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 우려를 표했다.

또 이러한 청년층의 구직 단념이, 부동산 폭등 등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과 합쳐져 청년들이 ‘한탕주의’로 내몰리고 있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대두되기도 했다. 

지난 9월 한경연 ‘청년 일자리 인식 설문조사’에서 청년들은 부동산 폭등 뉴스에 가장 근로 의욕이 저하된다고 답했으며, 10명 중 7명이 노력형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취업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부동산 폭등 등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청년층 내에서 확산되면서, 청년 세대의 집단적인 ‘빚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 올해 2분기 청년층 가계부채액은 26.9%, 신용대출 비중은 20.1% ...2년 새 크게 늘어 

한국은행의 ‘9월 금융안정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청년층 가계부채액은 485조 7900억원으로 전체 1805조 9000억원 중 26.9%를 차지했다. 이는 2분기 기준 역대 최고액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청년 채무 증가 배경에는 신용대출 비중 증가가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2분기 신용대출 비중은 20.1%로 2019년 4분기 5%에 비해 지난 2년 사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주요 증권사 신규계좌 723만개 중 청년층이 54%(392만개)를 개설했다는 점과 연계하여 생각해보면, 신용대출액 중 많은 부분이 주식이나 증권, 가상화폐 등의 투자자산으로 향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위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10~30대의 신용거래융자 신규대출은 38조 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또 전체 신용거래융자 185조 9000억원 중 20%가 2030세대의 ‘빚투’에 투입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대해 장 의원은 “자산 가격 상승으로 불안과 체념에 빠진 청년들이 높은 금리의 제2금융권과 불법 사금융에 손을 뻗고 있다”며 “빚을 더 지게 하는 정책보다 청년을 상대로 취업 지원 서비스를 늘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결국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이웅희 교수는 “현 정부의 일시적인 현금지원 등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또 공무원을 많이 뽑는 것도 민간부분 고용, 즉 사적인 고용이 위축(crowd out) 되게 만들어 국가 핵심인재들이 바이오·AI·반도체 등 미래 국가 성장 동력 산업에 진입할 동기를 약화한다”고 지적하며 “결국 규제개혁을 통한 기존 기업들의 투자증대와, 창업교육 및 창업 활성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처방약이 될 것”이라 조언했다.

정재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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