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대학원 진학·연구목적" '통일사' 소속 강모씨 주장에 손들어줘
"자유민주질서에 '실질적 해악 끼칠 위험성' 없다"며 또 면죄부

김일성 북한 주석의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
김일성 북한 주석의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

북한 관련 기사를 인터넷에 올리고 '주체사상총서', 김일성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 등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이유로 기소된 병무청 직원에게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군(軍) 관계자 신분으로 친북성향 통일 추구 단체에 몸담으면서 이적표현물을 소지하고 북한 외무성의 성명을 홈페이지에 게시하기도 했지만 '이적 행위'인지는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1부(재판장 이기택)는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 혐의로 기소된 부산지방병무청 직원 강모씨(44)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지난 12일 확정했다.

현역 병사가 '김정일 장군 만세'를 외치고도 항소심에서 국보법 무죄를 받은 상식 밖의 전례(2016년)와 마찬가지로, "국가보안법상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재판부 판단이 다시 등장했다.

이번엔 대법원이 이적행위에 관대한 무죄 판단을 내리면서, '사법부가 국보법 형해화에 앞장선 격이 됐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 
 
부산지방병무청 8급 공무원이던 강씨는 2009년 12월~2010년 11월 회원으로 활동하던 '통일을 여는 사람들(통일사)' 홈페이지에 북한 외무성 성명 등 15건을 올린 혐의로 지난 2012년 3월 기소됐다.

통일사는 소속 인사들이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철폐 등을 주장하고 화염병 시위 등으로 검거된 전력이 있다. 4대강 반대·한미FTA 반대·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선동에 빠지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정당 해산 심판을 받은 구(舊) 통합진보당과 연계 활동한 흔적도 남아 있다.

강씨가 무비판적으로 이 단체 홈페이지에 게재한 외무성 성명은 북한의 핵무장이 핵 억제력 차원에서 정당하며, 핵무장의 근본 원인이 미국 때문이라는 내용이 골자였다.
  
강씨는 또 자택과 병무청 사무실 등에서 주체사상총서, 김일성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 등 북한에서 만든 서적, 음악, 영화 등 678건을 책자와 컴퓨터 파일 형태로 소지한 혐의를 받았다.

강씨의 휴대용 저장기기에선 주체사상을 찬양하는 내용의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의 주요 노작집' 등 파일과 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간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북한 영화 '당의 참된 딸' 등 영화 파일 등이 발견됐다.

강씨는 2012년 3월 부산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에 구속된 뒤 같은해 5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검찰은 강씨에 대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북한에 동조할 목적으로 이적표현물을 소지하고 게시했다"며 처벌을 요구해 왔다.

반면 강씨는 법정에서 "통일사는 순수한 사회단체이고 북한 관련 서적도 북한대학원 진학 준비를 위한 자료일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강씨는 1999년 경남대 북한대학원에 진학하려다 면접에서 불합격한 뒤 위탁교육 형태로 북한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12월 6일 1심 재판부(부산지법)는 해당 자료들이 이적표현물이라는 점은 인정했지만, 이를 게시하거나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는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강씨가 속한 통일사는 회원이 1000명인 민간단체로 이적성향을 지닌 단체로 볼 수 없다"며 "강씨가 이제껏 북한에 동조하는 개인 의견 등을 외부에 표한 적이 없는 데다가 북한에 동조할 목적으로 이적표현물을 소지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무죄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2014년 10월 2일 무죄를 선고하며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선전 또는 동조 행위는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데 강씨의 경우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강씨가 기소된 지 6년 만에 대법원이 무죄를 최종 확정하기까지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의 범주는 여전히 불분명한 채로 사법부가 면죄부를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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