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해방되고서도 오랫동안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어깨를 펴지 못하였다. 경제가 좋아지고도 또 상당 기간 그러했다. 권위주의 군사정권이었고, 국민도 국제관행에 서툴고, 비열한 한국인도 많았기 때문이다. 정치 민주화 이후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치렀고 K-문화가 역동적으로 발전하자 외국인들이 꽤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자신감 있는 MZ세대의 해외 진출은 눈부시다.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넘어섰고,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대한민국을 개발도상국 지위에서 선진국으로 격상시켰다. UNCTAD 57년 역사상 처음 일이다.

그런 나라가 요즈음 품격이 곤두박질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재명을 둘러싼 대장동 협잡 사건을 언론이 연일 크게 보도하고 있다. 법치주의가 크게 흔들린다. 법 집행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사건이 터져도 검찰이나 경찰은 늑장을 부려 증거인멸이나 해외 도피의 문을 열어준다. 자격이 의심스러운 대법원장은 정권의 시녀 노릇에 안주해왔다. 권순일 같은 인물은 대법관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재판거래로 대가를 챙긴다. 박근혜 특검으로 무자비한 칼을 휘두르던 박영수도 대장동 이권에 개입하였단다.

법을 만드는 국회는 어떠한가? 다수결 원칙이 중요하지만, 소수 의견도 배려하는 타협의 정신은 아예 실종되어 버렸다. 숫자로 우격다짐하는 입법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법치주의’가 아니라 형식적인 ‘법에 의한 지배’다. 사회정의와 공정을 무시한 채 자기 이익만 우겨댄다. 국내외에서 언론자유를 침해한다고 경고하는데도 불구하고 언론에 족쇄를 채우는 언론징벌법을 추진한다. 북한 주민의 알 권리를 돕기 위한 대북전단금지법을 채택한다.

이렇게 혼탁한 현실은 일반 국민을 짜증 나게 하는 게 아니라 무력감과 허탈감에 빠지게 한다. 깨어난 국민이 언젠가는 정상으로 회복시키리라고 기대한다.

그런데도, 악성 협잡꾼, 범죄자들이 분탕질을 친 후유증은 오랫동안 남게 된다. 국가적 평판과 품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망가지게 될 것이다. 계량조차 할 수 없는 국익의 손실이다. 이러한 악성 풍조는 문재인 정권 4년 반 동안 극심하게 되었다.

국격을 망치는 데 정권이 앞장서고 있다. 상식을 벗어나는 언행과 정책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공짜 돈으로 국민을 중독시켜 근로의욕을 꺾어버린다. 엄청난 재정적 뒷감당은 MZ세대의 몫으로 넘겨버린다.

국제사회가 흉악한 범죄자로 낙인찍은 김정은 일당을 변호하려 한다. 김정은 일당과 한국을 일체화시키는 효과를 일으킨다. 애당초 김정은은 핵 포기 의사가 없는데도 핵 포기 의사가 있다고 거짓 전달하여 김정은의 값을 올려주는 역할을 했다. 전 세계가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를 강화하자는데, 반대로 제재를 완화하려고 설득하려다 유럽 정상들에게 무안을 당했다. 그래서 수석대변인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삶은 소대가리 욕설을 퍼부어도 쩔쩔매기만 한다. 그것은 개인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우리 국민에 대한 모욕이고 국가의 품격에 대한 오점으로 남는다.

문재인이 외치는 민주주의는 자신들의 이익에 관련될 때만 그렇다. 선전 선동 기법으로 주장을 정당화한다.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균형 잃은 법 집행을 추구한다. 공정성과 균형이 유지되어야 법치주의 국가다. 정적이라는 이유로 더 가혹하게 처벌한다면 진정한 법치주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 통치자에게 국가 의식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국가이익이라는 의식이 없으므로 국가의 품격이 무너지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현 정권에 국가 의식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혐오하기에 그들은 대신 북한 정권을 흠모하는 것이 아닌가? 80년대 반정부운동이 한창일 때 충성을 맹세했다고 알려진 종북주사파 운동권이 청와대를 장악했다는 사실이 그런 심증을 굳게 한다. 김영남과 김여정 일행이 2018년 2월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공산주의자로 오랜 수감생활을 했던 신영복의 글을 크게 걸어놓고 환영하였다. 정권이 바뀌고 또 북한 정권이 붕괴하면 이적죄나 여적죄의 여부는 가려질 것이다.

지금 한미동맹에 무리가 가고 상호신뢰에 금이 가는 것을 국민은 걱정하고 있다. 9.19. 군사 분야 합의서에 서명하여 DMZ의 방어시설을 일방적으로 해체하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나 새로운 도발 의지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위험한 것이 아닌가?

미국이나 일본이라는 자유 우방들과의 관계를 비트는 시도는 북한의 “우리민족끼리”의 구호에 호응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본과의 관계를 최악으로 몰고 간 이유는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국제정치의 전개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한다면 아무리 원한이 깊더라도 공생의 가능성을 남겨두어야 한다. 수천 년 이웃 관계에서 한반도를 괴롭혔던 중국에 대해서, 특히 6.25 당시 중국의 참전에는 침묵하면서 근대 일본의 죄악상만 유독 강조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5천 년 한국 역사는 고난이기도 했지만 자랑스럽기도 하다. 중국이라는 제국 옆에 붙어서 독자성을 유지해온 것이야말로 대단한 긍지다. 현대의 두 세대 동안은 중국보다 앞서나가기까지 하였다. 중국과의 협력도 필요하지만, 조공체제를 복원시키려는 시진핑 중국의 중화 복속주의 압박에는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중국과의 초격차를 확보하는 동시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품격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기대를 벗어나는 정권의 일그러진 역사의식, 국가의식, 자존의식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김석우 객원칼럼니스트(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전 통일원 차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