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세계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한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한다. 한국인이 ILO 사무총장직에 도전장을 낸 것은 처음이다. 사진은 지난 9월 10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명예 석좌교수로 임용된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특강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세계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한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한다. 한국인이 ILO 사무총장직에 도전장을 낸 것은 처음이다. 사진은 지난 9월 10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명예 석좌교수로 임용된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특강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지난 1일 국제노동기구(ILO,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사무총장 선거에 입후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외교부 장관으로 기용돼 3년 7개월간 외교를 담당했던 강 전 장관의 경력 어디에서도 ‘노동’과 관련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여정 ‘하명’으로 물러난 강경화, ‘ILO 사무총장 만들기’ 열기 뜨거워

강 전 장관은 외무고시 출신이 아닌 통역관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의 초대 외교부 장관으로 기용될 때도 외교부 내에서 잡음이 많았다. 경력이나 자질에 문제가 많았던 인사로 평가됐다. 지난 1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의 ‘하명’ 때문에 전격 교체되면서 퇴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부부장의 하명이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문 대통령과 임기 5년을 같이 하는 ‘오(五)장관’이 됐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문 대통령과는 코드가 맞았던 인물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노동과는 전혀 무관한 강 전 장관에게 자리를 만들어주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당은 외교부와 고용노동부 등을 중심으로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강 전 장관 지원에 나선 정부를 돕겠다고 선언했다.

김진욱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2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강 전 장관의 ILO 사무총장 출마를 환영한다”며 “사무총장 선출을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강 전 장관이 ILO 사무총장으로 선출된다면 노동자에 대한 차별 해소와 폭력·괴롭힘 근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상생과 포용적 회복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상황이 이어지고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노동권 보호 문제가 인권의 핵심 가치로 대두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 분야 유엔 전문기구인 ILO의 사무총장으로 강 전 장관은 최적임자”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정치권과 노동계에서는 ‘나라망신’이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전혀 없는 강 전장관의 ILO 사무총장 입후보가 개인의 명예와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실정이다.

여론도 나쁘긴 마찬가지이다. “분수를 알고 염치가 있어야지, 엄한 데 나랏돈 고만 써라”는 비판에서부터 “원래 외교 전문가도 아니고 노동 전문가도 아니고, 통역관인데 자신감 충만이네?”라는 비판이 대부분이었다. 외교관이 국제노동기구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었다.

문재인 정부 지지 세력인 민노총도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어야” 비난

심지어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지지 세력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마저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의 ILO 사무총장 입후보에 대해 ‘낙제점’을 매겼다. 민노총은 지난 3일 논평에서 “강 전 장관의 경험과 비전은 ILO 사무총장 직책과 한참 거리가 멀다”며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고 직격했다.

이어 “ILO는 유엔 산하 노동 전문기구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국제 노동기준을 확립하고 이행을 감시·감독하는 것”이라며 “노동 분야에서 경험 결여라는 현실을 반영하듯 강 전 장관은 ILO의 가장 중요한 역할에 관한 견해를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국제 노동계와 공조 등을 통해 강 전 장관의 ILO 사무총장 당선을 막기 위한 활동에 나설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노사정 3자 기구인 ILO는 28개국 정부 대표와 노동자, 사용자 대표 각각 14명 등 56명이 참여하는 이사회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로 사무총장을 뽑는다.

민주노총은 "정부는 강 전 장관이 ILO 사무총장으로 가는 길에 영향력을 끼치는 노동자 그룹의 14표가 주는 무게와 의미가 가볍지 않음을 명심하라"는 경고를 서슴지 않았다.

ILO 사무총장 출마한 4명의 후보 중 강경화만 노동관련 경력 없어

강 전 장관은 외교부에서 ‘국제기구’와 UN 담당으로 일했고, 2007년 UN으로 옮긴 뒤에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인도지원조정관실에서 일했다. 2017년 UN을 떠나기 직전에는 사무총장 정책특별보좌관이었다. 그 이후엔 올해 2월까지 한국 외교부 장관이었다. 어느 구석에서도 노동과 관련된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ILO 사무총장 선거에 입후보했다는 연합뉴스 TV의 보도 장면. [사진=연합뉴스 TV 캡처]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ILO 사무총장 선거에 입후보했다는 연합뉴스 TV의 보도 장면. [사진=연합뉴스 TV 캡처]

국제기구 대표가 되려면 개인 이력에 해당 분야 전문성이 충분히 드러나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강 전 장관과 함께 출마한 4명의 후보자들 중, 그렉 바인스(현 ILO 사무차장, 호주), 음툰지 무아바(현 국제사용자기구 이사, 남아공), 뮤리엘 페니코(전 프랑스 노동부 장관, 프랑스)는 노동 관련 경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성이 충분한데도 국제적인 이해관계 속에서 국제기구의 전문가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에 도전해 결선까지 갔던 유명희 경제통상대사만 해도 30년 동안 ‘통상’분야에서 관록을 쌓은 전문가이다. 그는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를 오가며 관련 업무를 집중적으로 했다. 그런데도 사무총장직에 오르지 못하고 중간에 사퇴를 하고 말았다.

황당한 강경화의 출마선언문, 소득주도성장을 자신의 노동분야 기여로 꼽아

노동 분야에서 아무런 전문 이력을 갖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는 강 전 장관의 출마선언문 요지를 살펴보면 더욱 황당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는 자신의 노동 분야에 대한 기여로 ‘소득주도성장’. ‘ILO 핵심협약 비준’, ‘재외공관 행정직 노조 설립’을 꼽은 것으로 알려진다.

외교부장관이었던 강 전 장관이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 정책 실현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든지 알 수 있는 내용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 역시 이 문제의 주무부처는 ‘고용노동부’이며, 해당 협약들이 비준된 이후 비준서를 ILO에 기탁한 건 당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었다. 이 장관의 공로를 가로채는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재외공관 행정직 노조(한국노총 전국노동평등노조 재외공관행정직지부) 설립’은 어느 정도 긍정적인 내용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교사, 공무원은 물론 소방관, 경찰관의 노조 설립 및 활동의 자유까지 보장해온 선진국의 기준으로 볼 때, 2018년에 외교부 재외공관 행정직 노조를 설립한 것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사무총장 선출을 적극 뒷받침하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지원을 등에 업는다면, 강 전 장관이 아시아 최초, 여성 최초 ILO 사무총장 타이틀을 가질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강 전 장관이 ILO 사무총장이 된다고 해서 한국이 저절로 '노동선진국'의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강 전 장관의 이력서에서도 ILO의 정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가 잘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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