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의 배경이 되는 당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때,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물론 자신이 의도한 바는 아닐 것이나, 게으름의 결과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를 벗어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위안부를 낳은 당시 사회에 관심을 가지면 그만이다.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위안부를 연구하는 한국이나 일본 학자들이 그동안 식민지기 조선의 “미우리(身賣り)”라는 계약 형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랄만한 일이다. 조선 여성이 위안부가 되는 경로로 그간 이야기해 온 것은 “강제연행”, “취업사기”, 그리고 “인신매매”다. 단, 취업사기와 인신매매 모두 식민지기 당시에도 불법이었으며, 양자는 대부분 결합되어 하나의 범죄를 이루었다. 즉 법적으로 “유괴”로 규정되는 취업사기를 벌여 여자를 확보하고 그녀를 본인이나 부모의 의사와 무관하게 유곽이나 매춘숙, 또는 위안소에 팔아넘기는 행위다.

만약 가난한 부모가 자신의 딸이 매춘부나 위안부가 된다는 것을 알고도 당시 계약관행인 미우리에 따라 판매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합법이었다. 통계가 없으니 수량으로 입증할 수 없지만, 미우리는 당시 성매매산업에서 여성을 조달하는 기본적인 방법이 되었을 것이다.이 계약에서 대부분의 부모는 딸이 장차 무엇을 하게 될지 잘 알면서도 유곽과 같은 매춘숙이나 위안소를 위해 일하는 알선업자나 그 업주에게 딸을 양도했다. 부모는 그 대신 전차금이라는 돈을 받았고, 딸은 정해진 계약기간동안 성노동을 하고 그 급료의 일부로 전차금을 상환했다. 상환을 마친 후에는 그들은 자유를 회복했다. 그들의 명예는 회복되지 못했지만 말이다. 미우리라는 합법적 계약은 “유괴-인신매매”보다 빈번했을 것이다. 후자에 비해 이윤이 적지만, 징역 등 처벌의 위험이라는 비용이 컸기 때문이다.

미우리가 불법화된 것은 1946년 5월 17일, 재(在)조선 미 육군사령부 군정청이 법령 제70조로 발령한 〈부녀자의 매매 또는 그 매매계약의 금지〉에 의해서다. 이 법에 의해 일체의 부녀자 매매가 금지되고 그에 수반하여 발생한 전차금도 모두 불법으로 무효화되었다. 한국사에서 이유와 형태를 불문하고 부녀자에 대한 인신매매가 전면적ㆍ최종적으로 불법화된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의 도입은 인신매매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며, 그만큼 한국의 사정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 지금도 (준)성매매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영업 개시 계약과 함께 최소 수천만 원의 “선금”을 받고, 그를 반제하지 못하면 업소를 떠나지 못한다. 또 그 선금을 매개로 “전매(轉賣)”가 이루어지는 경우까지 있다.

인간에 대한 거래와 관련하여, 미우리를 노예나 조선의 노비 거래와 동일시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계약은 인간을 완전하고 영구적으로 양도하는 것이다. 미우리는 도쿠가와 시대부터 존재하여 제2차대전 종전까지 존속한 일본 특유의 관행이었다. 조선에는 그러한 거래관행도, 상응하는 용어도 발견할 수 없다. 이 새로운 계약형태는 1900년경에 조선에 도입되었고, 식민지기를 통해 정착되었다. 가정에서 여성의 권리가 약하다는 점, 호주제가 가부장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 그리고 공창제가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에서, 조선과 일본은 사회적·법적으로 유사한 배경을 가졌기 때문이다.

조선에서는 일반 평민 가장(家長)이 자신의 딸, 아들, 가족, 심지어 자신을 노비로 파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조선 경제가 위기를 맞이하는 18~19세기에 그러했는데, 나는 1910년의 사례를 마지막 거래로 확인하였다. 이러한 인신매매 관행을 “자매(自賣)”라고 한다. 다른 노예나 노비처럼 “자매노비”는 사회적 지위가 법적으로 세습되었다. 자매 거래에서 작성하는 “자매문기(自賣文記)”에는 일반 노비매매 문서와 마찬가지로, “죽을 때까지 주인에게 봉사한다”거나 “자신을 영원히 판다”는 문구가 판에 박힌 듯이 등장한다. 이렇게 자신(혹은 가족)을 완전하고 영구히 판다는 점도 일반 노비 거래와 자매가 같은 점이다. 이들과 달리 미우리는 수년의 기간과 성노동으로 한정되는 거래였다. 이것도 노예나 노비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식민지기 신문을 보면, 불법적 인신매매와 합법적 미우리가 심각한 사회문제의 하나가 될 정도로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예를 들어 1926년 ‘2·26 구테타’의 원인 중 하나는 농촌 출신의 병사들이 비참하게 빈곤하여 매춘업자에게 여동생을 미우리로 넘기는 일까지 종종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전 위안부 중 한 명도 ‘위안소 주인보다 자신을 팔아넘긴 아버지가 더 밉다’고 말한 바가 있다.

부모의 관점에서는 매춘숙이나 위안소로부터 받은 돈, 즉 전차금은 자신이 판 딸의 “몸값”이었다. 그러나 업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되돌려 받아야 할 채권이었다. 여성에 대한 거래는 불법적 인신매매와 합법적 미우리의 경계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거래를 둘러싼 경찰과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도 빈번했다. 그러나 경찰이 입건한 대부분의 용의자는 최종적으로 무죄가 됨이 일반적이었다.

이영훈 저(著)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에 따르면, “유괴”나 “약취”로 경찰에 검거된 용의자의 약 90%가 검찰로 송치되었다. 그러나 그중에서 소수만 검찰에 의해 기소되거나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4년부터 1941년간, 두 범죄로 검찰에 송치된 용의자는 무려 40,553명이었지만, 기소된 것은2,506명에 불과했다. 1924년부터 1943년까지, 경찰에 검거된 자 중에서 87.5%가 기소되지 않은 것이다. 단, 재판에 넘겨진 자 중에서는 85%가 유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것은 유곽, 매춘숙, 위안소 등 매춘산업에 종사했던 알선업자나 업주들이 불법적 유괴와 인신매매보다는 합법적인 미우리를 선택하였음을 뜻한다.

미우리라는 계약을 통해 딸을 거래하는 부모들은 자신의 딸이 결국 무엇을 하게 될지 대부분 잘 알고 있었다. 설령 계약서가 없다고 할지라도 만약 부모가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들이 이룬 합의는 명백한 계약이다. 국내나 해외에서 한국사, 특히 위안부 문제나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에 관한 논문에 대해 관심을 갖고 또 그를 격렬히 비난한 연구자들이 공격의 초점으로 삼은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램지어는 계약서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상과 같은 사실, 당시 조선의 매춘산업과 배경, 그리고 일본의 조선통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그들은 당시 조선 사회의 사회적, 경제적, 법률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고, 그 위에서 위안부 문제를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통해 조선과 일본의 조선통치를 보려고 했다. 이는 손쉬운 방법이라 게으른 자들에게는 적합하지만, 문제를 곡해할 위험이 크다. 그들은 평화롭게 살던 (그것도 20만 명에 달하는) 다수의 조선 여인이 일본 관헌에 의해 “강제연행”되어 위안부 생활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한다.

당시 조선 농촌은 과연 극빈한 농민에게도 그저 평화롭고 아늑한 전원(田園)이었는가? 아니다. 빈곤한 미래 외에는 보장된 것이 없는 우울한 현실이었다. 당시 20대 여성 인구의 10분의 1에 달하는 수가 “노예 사냥”을 당해도, 그 부모형제를 포함한 친지들이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는 비문명의 야만사회였을까? 황당한 무대설정이다. 끝으로 일본의 조선 통치는 그처럼 무법적이었는가? 1912년, 조선형사령으로 일본의 형법이 조선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고, 일본의 법치는 조선 농촌에까지 두루 미쳤다. 하물며 당시 조선 농촌의 면사무소 직원이나 경찰은 대부분 조선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 여인을 강제연행하려 했다면, 조선인은 폭동이라도 마지않았을 것이다. 동시대인들도 그와 같이 증언했다.

위안부 문제의 배경이 되는 당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때,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물론 자신이 의도한 바는 아닐 것이나, 게으름의 결과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를 벗어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위안부를 낳은 당시 사회에 관심을 가지면 그만이다. 그간 한국, 일본, 미국 등지에 있으면서,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대하여 “계약서가 없다”는 수준의 비판에 몰두한 사람들은 그러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개과천선”한다면 위안부에 대한 국제적인 논의가 벌어지고, 그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일층 고양될 것이다.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박사 ·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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