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파동을 지켜보면서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언론에 재갈을 물린다는 비판에 직면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서 여당은 반대를 무릅쓰고 입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언론으로 하여금 자기 검열을 야기하는 위축효과를 낳아서 언론의 권력에 대한 견제를 무력화하여 공론장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법안의 입법 시도 현장을 돌아보면서 우리의 정치 현실을 생각해 본다.

21대 국회에서 제안된 여당 발의의 언론중재법등 각종 언론 법안의 취지는 가짜뉴스 규제에 관한 것이므로 언론 제도와 관련한 소위 언론개혁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올해 2월에 정부 여당은 기존에 발의된 가짜뉴스 관련 법안들을 6대 미디어 피해구제 민생법안이라고 명명하면서 입법추진을 확언했다. 그 중에 기사 열람차단과 징벌적 배상을 내용으로 하는 논란의 언론중재법안이 있다. 가짜뉴스에 대한 피해자 구제등의 대응 조치는 기존의 제도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은 20대 국회(2016년 5월부터 2020년 5월)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가짜뉴스 규제 법안에 대한 기나긴 논의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가짜뉴스는 규제로써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며 미디어 변천의 시기에 뉴스의 범람이라는 과잉 정보의 상황이 낳는 정보무질서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대 국회에서 여당은 종래의 가짜뉴스 규제 법안과 동일한 법안을 거듭 제안하였고 정권 말기에 이르러 민생법안으로 표현을 바꾸어서 입법이 강행되고 있다.

가짜뉴스 논란은 기존 방송매체의 신뢰 상실로 인한 시청자의 외면과 개인방송의 출현이라는 매체 변동기라는 상황에서 뉴스 형태의 개인방송이 가짜뉴스 논란의 주된 대상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기존 언론이 논란의 대상인 것처럼 되면서 가짜뉴스 피해자 구제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민생 문제로 주장되었다. 대선을 6개월 앞둔 정권 말기에 민생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여당이 이달안에 반드시 입법해야 할, 다수의 힘으로 당장 처리해야 할 과제로 삼고있는 상황은 정권말 언론을 견제하기 위한 여당의 입법 폭거라는 비판이 마땅하다.

현행 언론중재법은 제5공화국 출범시의 언론입법인 1980년 언론기본법의 정정보도청구권과 언론중재위원회 설치 규정에서 유래한다. 그후 정기간행물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을 거쳐서 현행법에 이르고 있다. 정정보도, 반론보도등의 청구나 손해배상청구는 민법으로 인정되고 있으므로 언론중재법이 없어도 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 기존의 재판 제도가 있음에도 언론중재위원회를 두어서 중복된 절차를 밟을 수 있게 한 것으로서 옥상옥의 제도다. 현행법에 있는 절차에 대해서 중복된 제도를 만들어서 언론에 대한 부담을 만들고 법의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언론중재위원회의 권한이 강화되어서 언론에 대한 견제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것에서 언론중재법 폐지론이 있어왔다, 민사 소송외에 언론보도에 대한 구제절차로서 형법은 허위사실만이 아니라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고 있어서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언론 피해에 대해서는 우리 법제도는 충분히 폭넓은 구제 수단을 갖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이 민생문제로 포장되고 있지만, 문제의 설정과 해결 과제가 잘못 설정 되었다. 가짜뉴스는 뉴스이고 뉴스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언론이므로 언론에 대하여 징벌적 배상을 부과함으로써 가짜뉴스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문제는 언론이 아니라 가짜뉴스이고, 정보무질서의 상황이 근본 원인이다. 교통사고는 차량운전자가 내고 교통사고를 낸 차량운전자에게 징벌적 배상을 부과하면 교통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것과 같다. 문제의 원인인 정보무질서의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아니라 뉴스의 출처인 언론에 대한 규제를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권리와 의무의 체제로 된 법률은 누군가에게 권리를 부여하면 반대당사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게 된다. 상반되는 이해당사자간의 권리와 의무를 조정하는 입법에 있어서는 이해당사자들에게 배분되는 권리와 의무의 내용만을 살피기 보다는, 입법이 지향하는 가치에서 비추어서 그러한 배분이 적절한가를 검토하고 권리 배분의 결과가 다른 가치와 제도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모든 사안에서 편가르기를 통한 분쟁의 소지를 만들어 지지를 획득하는 포퓰리즘 정치에 함몰된 상황에서 이러한 신중함과 신중함을 구현하기 위한 절차가 사라졌다. 권리를 부여받을 자와 의무를 부담할 자 중에서 어느 편을 들어야 대중에게 호감을 얻어서 인기를 얻을 수 있고 어느 편을 들어야 자기 정파가 명분을 획득할 수 있는가라는 정치적 판단이 입법의 계기가 된다.

정치적 명분으로서 여론조사 결과가 거론된다. 가짜뉴스의 현상과 원인, 징벌적 배상이 가짜뉴스를 없애는 유효적절한 수단인지 여부와 언론 자유 침해와 더 큰 문제의 발생에 대해서까지 논의하지 아니한채 단순히 가짜뉴스를 없애기 위해서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만을 던지는 여론조사는 적절하지 않다. 법에 의해서 실현되는 정책은 강제적으로 실현된다는 점에서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권력에 의해서 배분하는 것이다. 제도를 만드는 입법 과정에서는 실현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논의하고 강제적으로 실시되는 배분의 결과에 대해서 책임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여론조사가 말한다는 주장은 권한은 행사하지만 책임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짜뉴스 대응이 민생 문제로 되버리고 언론 규제를 과제로 하는 입법이 가장 시급한 현안인 것처럼 되면서, 그러한 법안 만이 최상이고 이에 대한 반대는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의 저항으로 치부되는 것이 문제다. 제도가 구현하고자 하는 가치의 조정과 권리 배분에 대한 숙고가 없이, 찬반 논의가 정파적 대립이라고 오도되고 승부를 겨루는 것이 된다. 입법 논의가 아니라 세(勢) 싸움이다. 앞서 제기되고 진행된 논의이기에 반드시 결론을 맺어야 한다면서 반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반대 목소리를 다수의 힘으로 잠재우려는 분위기는 이를 확인해 준다, 대결 구도는 다수 정파의 힘의 과시로 결말을 맺어서 돌이킬 수 없는 정치적 파국에 이르러 민주정의 기본 질서를 흔들게 된다.

명분 싸움과 세 싸움으로 나아가서 결국은 힘으로 해결되는 대결만이 남은 정치는 정치 자체를 소멸시킨다, 이런 양상이 오래되었기에 이미 정치가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적폐 청산이란 명분으로 상대편을 퇴출시키는 현 정권의 권력 운영 방식은 적폐가 아니라 정치 자체를 청산하고 있다. 절차가 사라지고 힘의 대결에 이르는 정치에 의해서 정치가 소멸되는 과정은 정치라는 이름의 재앙(災殃)이다. 정치라는 재앙은 의도적으로 진행되는 정치의 자기 파괴의 과정이다. 정치를 없애는 정치가 초래할 결과가 우려된다.

입법을 통해서 가치의 권위적인 배분을 할 때에 특정한 주장의 우월 여부나 정파적 고려를 떠나서 국가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이고 그러한 배분이 가져올 효과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며, 합의에 이르는 적정한 절차까지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정의 고안자들은 민주정이 쉽게 독재정이나 중우정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공동체의 구성원의 자유라는 추구할 가치와 합의에 이르는 정치적 절차를 고안하였고, 이에 더하여 균형을 위한 권력에 대한 견제 수단으로써 언론의 자유라는 제도를 추가하였다.

언론의 자유는 공론장을 형성하여서 정치의 기능을 보완하면서 민주정을 이끌어간다. 표현의 자유에 기반하여 의제의 설정과 논의의 장이 전개되는 수단인 언론의 자유는 민주정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이고 그 제도를 통해서 민주정이 지속되어 왔다,

언론이 만드는 공론의 장은 의견 수렴과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혼란스러운 모습이고, 인터넷 기반의 뉴미디어가 대두되는 미디어 변천의 시기에 콘텐츠에 대한 가짜뉴스 논란은 정보 과잉의 시대의 정보 무질서의 현상이다. 현실을 문제삼아서 공론장 자체의 기반이 되는 언론의 자유라는 초석을 흔들어서는 안된다. 정보 무질서의 상황을 언론의 책임으로 몰아가서 언론 제도를 무너뜨리면 민주정은 파국에 이른다.

언론을 포함하여 미디어 분야에서의 진정한 개혁 과제는 뉴미디어 시대에 공영방송을 포함한 레거시 미디어 체제에 대한 검토 및 이에 따른 재구조화 모색과 정보무질서의 현실에 대해서 미디어리터러시의 고양같은 미디어 수용자의 역량 강화등 개선책의 모색 그리고 변화된 미디어 상황에 대응하여 기존 미디어와 뉴미디어를 통합하여 현실에 적합한 새로운 제도 설립을 추진하는 것이다.

힘의 대결로 되어서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 반복되는데서 정치의 장이 붕괴된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무너진 정치가 공화국의 존속을 위한 제도인 언론 영역까지 넘보면서 민주정의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공론장의 기반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언론이 형성하는 미디어 공론장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하고 유효한 수단이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유용한 방법이다. 수단과 방법을 폐기하고자 하는 상황이 문제다. 정치가 무너뜨리고자 하는 공론의 장은 공화정의 지속을 위해서 지켜져야 한다. 자기를 무너뜨리고 언론마저 무너뜨리고자 하는, 펜더믹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 된 정치를 보면서 무너진 정치의 복원이 과제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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