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 외관. [사진=연합뉴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외관. [사진=연합뉴스]

모더나 백신 101만회분이 23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지난 22일 정부 방역당국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모더나사가 9월 첫째 주(8월 마지막 주)까지 백신 701만회 분을 공급할 예정이라고 21일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모더나 공급 재개됐지만 당초 약속했던 물량엔 못미쳐

이날 도착분을 제외한 나머지 600만회분은 다음 주까지 2주 동안 차례로 공급될 예정이다. 앞서 지난 7일 도입된 130만회분에다 이번에 확정된 물량을 더하면 9월 초까지 총 831만회분의 모더나 백신이 들어오는 셈이다. 당초 모더나 측이 ‘8월 물량의 절반 이하만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던 것에 비하면 늘어난 분량이지만, 당초 계획된 물량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정부는 앞서 지난달 30일만 해도 "공급이 지연된 7월분 물량과 8월 공급분을 합친 1천46만회분을 8월 중으로 도입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9월 초까지 831만회분을 도입해도 기존의 계획된 물량보다 215만회분이 적다.

이와 관련해 강도태 보건복지부 2차관은 "고위급 실무 협의 등을 통해 7∼8월에 미공급된 물량이 남아 있는 부분은 9월 공급 계획에 반영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화물터미널에서 관계자들이 미국 모더나사의 백신 101만회분을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화물터미널에서 관계자들이 미국 모더나사의 백신 101만회분을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이재용 역할론 다시 고개들어...문 대통령은 “백신 분야 역할 기대한다” 강조

바로 이 대목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역할이 다시금 재조명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훨씬 앞서는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공급 차질 문제는 재발할 우려가 크다. 모더나 백신의 공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위탁생산하는 모더나 백신이 국내에 우선 공급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특히 반도체와 백신 분야에서 역할을 기대하며 가석방을 요구하는 국민들도 많다”면서, 이 부회장의 역할 2가지를 명시적으로 요청했다. 미·중 간 반도체 패권전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적극적인 투자와 연구개발을 통해 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하라는 것과 모더나 공급지연 사태 등 백신수급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하라는 것이다.

정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위탁생산하는 모더나 백신을 국내에 우선 공급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더나 측과의 협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삼바와 모더나와의 계약내용상 쉽지 않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모더나와의 협상은 이재용의 의무?...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위탁생산하는 모더나 물량을 국내로 돌려야

따라서 이 부회장은 다시 한번 코로나 백신 해결사가 돼야 한다. 이 부회장은 이미 화이자 백신 수급 과정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정부 관계자들이 화이자사와의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이 부회장이 화이자 고위 인사와의 논의를 통해 물꼬를 텄다.

최근 법무부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행정법원 판결 사례를 들며 이 부회장의 경우 비등기 임원이므로 경영에 참여하더라도 '취업'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법무부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행정법원 판결 사례를 들며 이 부회장의 경우 비등기 임원이므로 경영에 참여하더라도 '취업'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이 부회장이 삼바와 모더나 간의 기존계약을 조정해 위탁생산물량 중 상당수를 국내에 우선공급하는 방향으로 변경하는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셈이다. 그럴 경우 삼성그룹의 총수 자격으로 나서야 한다. 개인자격으로 모더나와 협상을 벌일 수는 없다. 실질적인 경영복귀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취업제한’ 논란에 대해 박범계 법무장관은 “위반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연거푸 강조했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백신 특사’ 역할을 맡겼는데, 법무장관이 ‘취업제한’에 해당된다고 우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박범계 장관은 지난 19일 법무부 정부과천청사에 출근하면서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활동이 ‘취업제한’ 위반에 해당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취업이라 보긴 어렵지 않느냐”고 답했다.

박 장관은 이 부회장이 몇 년째 무보수이고 비상임, 미등기 임원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주식회사는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통해서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데, 이 부회장은 미등기 임원이기 때문에 이사회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무보수이므로 취업이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등기 임원이라 기업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이 부회장의 경영활동을 합법적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박범계와 법무부, “이재용의 경영활동 합법적” 연일 강조...문 대통령의 약속 지키려면 이재용의 협조가 필수적?

법무부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사례를 들어 박 장관의 유권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박 회장은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배임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판결을 확정받았다. 특경법상 5억원 이상 횡령·배임 등의 범행을 저지르면, 징역형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날부터 5년간 취업이 제한된다.

그런데 박 회장은 2019년 3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집행유예 기간이므로, 취업이 제한되는 상황이었다. 법무부는 박 회장이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듬해 '금호석유화학이 취업제한 기업체이므로, 승인신청을 하지 않으면 형사조치가 진행된다'고 통지했다. 이에 박 회장 측이 취업승인을 요청했지만, 법무부는 이를 기각했다.

이에 박 회장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취업을 불승인한 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월 법원은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취업제한은 특정경제범죄 행위자에게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기업체에서 일정 기간 회사법령 등에 따른 영향력·집행력을 행사·향유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건전한 경제질서를 확립하고자 한다”고 판시했다.

법무부는 박 회장 판결에서 강조된 ‘영향력·집행력’을 상법 및 회사 정관에 의해 권한과 의무가 부여되는 ‘대표이사·등기이사’의 영향력·집행력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미등기임원인 이 부회장은 회사 경영에 영향력·집행력을 행사하는 데 제한이 있어, 경영에 참여하더라도 '취업'으로 볼 수 없다는 게 법무부의 판단인 것이다.

법무부는 박 회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낸 취업제한 관련 소송 1심 판결을 분석한 내용을 이례적으로 공개하면서까지, 이 부회장이 모더나사와의 협상에 나설 자격이 된다는 점을 뒷받침했다. 추석 전까지 전 국민의 70% 접종을 달성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면, 모더나사와의 중재에서 이 부회장의 역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분식회계 혐의를 받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게 법무부가 매달려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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