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여당은 대선 주자끼리 싸운다. 소재의 질은 낮지만 어쨌든 정상이다. 야당은 당대표와 대선후보가 싸운다. 많이 이상하다. 굳이 비유하자면 링에 올라온 선수가 상대방이 아니라 심판과 싸우는 격이다. 심판이 선수와 싸우는 게 아니라 선수가 심판과 싸운다고 순서를 특정한 것은 선수가 먼저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다. “나, 경기 뛰려고 링에 올라온 건 맞는데 네가 심판인 건 알 바 아니야” 선방을 날렸다. 윤석열의 기습 입당이 그렇다. 상식 한참 미달이다. 결심한 지 몇 시간 안됐다고 했다. 결심하는 거랑 입당 절차 밟는 것은 별개다. 내일 지구가 망하는 것도 아니고 결심한 지 몇 분 안됐어도 입당은 다음 날 천천히 할 수 있다. 역시 비유하자면 남의 집에 놀러가면서 일부러 집주인은 없고 애들만 있을 때 간 거랑 별반 다르지 않다. 국힘당 대외협력위원장이라는 사람도 이상하기로는 수준급이다. 보통 그런 상황이면 부모님 안 계신다고 문 안 열어주는 게 정상이다. 미리 연락하고 다시 오시라 돌려보내야 정상이다. 그런데 문 열어주고 차 대접하고 같이 사진까지 찍었다. 내가 그 아이 부모라면 그 아이, 짐 싸서 집 나가야 한다. 최근 국힘당 막장 사태의 시작이다. 이 상황에서 심판의 선택은 많지 않다. 웃고 넘어가면 권위 실종 바보가 된다. 안 웃고 정색하자니 싸워야 한다. 심판이 고른 건 후자다. 명분 있는 트집을 잡아야 한다. 상대방 일정도 제대로 안 알아보고 행사를 연달아 두 개나 잡았다. 윤석열이 두 번 다 불참한 건 고의인지 사정의 불가피함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두 번 모두라는 건 역시 정상이 아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한 번은 얼굴을 비춰야 했다. 세 번 무례했으니 제대로 싸움이 안 나면 그게 더 이상하다. 이럴 때 꼭 뺨 때려주는 사람이 등장한다. 탄핵 어쩌고 하면서 윤석열 캠프 인사가 입을 놀렸고(더구나 탄핵은 국힘당에서는 약간 금기어 아닌가) 심판은 난리를 쳤고 결국 윤석열이 사과 비슷한 걸 하면서 말미에 ‘실수’라고 했다. 그 통화를 심판은 언론에 흘렸다. 직원들의 ‘실수’라고 했다. 실수를 실수로 받는 순발력이 놀랍다(졸렬한 수준에서). 슬슬 싸움이 유치해 지기 시작한다. 원래 어른하고 애하고 싸우면 싸움의 질은 애들 수준으로 그레이드가 내려가기 마련이다.

머리 나쁜 X과 인성 나쁜 X의 대결

국힘당의 엽기성은 본격적으로 발휘된다. 2라운드 공이 울렸는데 선수와 선수가 싸우는 게 아니라 역시 심판과 선수가 싸운다. 그것도 선수 교체로. 경악을 넘어 경이적인 수준이다. 이준석과 원희룡의 공방은 수준이 하도 바닥이어서 아무리 들여다봐도 깊이를 재지 못하겠다. 문제가 된 ‘정리’라는 단어가 그렇다. ‘상황의 정리’를 ‘사람의 정리’로 이해했다면 원희룡의 지적 수준은 심각한 불량이다. 물론 머리가 나쁜 것은 죄가 아니다.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라고. 그런데 머리 나쁜 인간이 정치를 하겠다고,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인 일을 하겠다고 나서면 안 된다. 그냥 개인 사업이나 하면서 살아야 한다. 피해를 죄다 자기가 감수하면서 왜 나를 낳으셨나요, 노래나 부르면서 살아야 한다. 이준석도 마찬가지다. 원희룡 주장대로 ‘사람의 정리’를 말했다면 인성이 총체적으로 나쁜 거다. 짧은 기간 쉬지 않고 친 말語 사고가, 어쩌다 보니 터진 사고가 아니라 ‘의도’였다는 사실의 증명이다. 안다. 이준석이 그리고 있는 야심찬 로드맵. 자신의 지휘와 통제 아래 자신이 염두에 두고 있는 대선후보를 뽑고, 정권을 창출하고, 다음 대선에 나와 케네디 흉내를 내고 싶어 한다는 거. 다 이해한다. 누구나 꿈을 꿀 수 있으니까, 꿈이 없다면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으면 자기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당 내부에서 할 일은 아니다. 믿거나 말거나 소생은 지금도 이준석을 지지한다. 이준석이 없다면 국민의 힘은 죽었다 깨나도 2030과의 접점을 만들어 낼 수 없으니까. 그럼 일단 그 일을 잘 해야 한다. 남성들의 마음은 좀 끌어왔지만 여성들의 마음은 여전히 냉소적이라고 들었다. 그러면 여성들에게 전략적으로 접근해야지. 여성 할당제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여성 할당제라는 말 자체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설득해야지. 그 다음 대외적으로 할 일은 여당과 정권을 날카롭게 공격하는 일이다. 아, 표현이 정확치 못했다. ‘날카롭게’는 말의 경도硬度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2030의 목소리로 여당과 정권이 얼마나 한심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현재 대한민국에서 2030이 얼마나 고단하게 버티고 있는지를 말해야 한다. 신나고 좋아서 코인 도박장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세게 말하는 게 아니라 아프게 말해야 한다. 그게 30대 야당 대표가 50대 여당 대표, (나이를 알고 싶지도 않은) 대통령을 상대로 할 일이다. 하고 계신가. 할 계획은 있으신가.

혁신이라는 말을 제 멋대로 쓰지 마시라

이 와중에 국힘당 초선 7명이 성명을 냈다. 지금까지의 서로 불편하게 하고, 의심하고, 상처를 주고받은 말과 행동들의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며 서로에게 주었던 실망과 상처를 다독여 묻고 미래로 가자고 했다. 혁신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너네는 또 뭐니. 여러분 눈에는 이게 묻고 갈 일로 보이니. 국힘당의 국어 실력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매번 참 신선하다. 살 안에 고름이 생겼는데 그걸 묻고 간다고? 종기 위에 죽어라 연고 발라 봐라 없어지는지. 비유를 하자면 범죄가 일상인 인간이 혁신을 하겠다며 자기가 어제까지 저지른 일은 묻고 가자는 꼴이다. 정치는 책임을 지는 일이다. 묻고 가는 게 아니라 끝까지 파헤쳐 짜내고 책임을 지거나 지우는 게 그게 혁신이다. 한 일에 책임을 지고, 재발하지 않도록 사방에 널리 알리고 경고하는 게 혁신이다. 녹음 파일이 나오면 한 사람은 퇴장해야 한다. 정치에서 나가고 어디 산골에라도 들어가 차분하게 인생을 복기해야 한다. 국민들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으니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말씀드린다. 심판 안 한다. 그런 거 절대 안할 테니까 끝까지 가라. 당장 내일 대통령 선거 치르는 것도 아니고 아직 시간 많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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