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5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발언이 문제 돼
고소인 대표 김병헌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대표, "反인륜적 인종차별 발언"

좌익 진영 인사들이 상대편 진영 인사들을 향해 즐겨 사용해 온 용어 ‘토착왜구’(土着倭寇)가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문재인 정권 들어 여권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 있는 ‘토착왜구’ 표현의 위법성 판단이 조만간 이뤄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병헌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대표(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등은 최근 여당·더불어민주당의 김태년 의원을 ‘모욕’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1
2019년 8월1일 오후 울산광역시 동구의 한 도로변에 〈NO 아베! 토착왜구 OUT〉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19. 8. 1. / 사진=연합뉴스

문제가 된 사건은 지난 2월15일 발생했다. 하버드대학 로스쿨의 존 마크 램자이어(램지어) 교수의 논문 〈태평양전쟁 당시 성(性)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을 비난하고 나선 국내 인사들에게 문제를 제기한 학자·법률가·언론인 성명을 두고 당시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해당 성명에 참여한 인사들을 지칭해 ‘토착왜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당시 김태년 대표는 “국내 극우 인사들이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로 규정한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에 대한 지지 서한을 해당 학술지에 보냈다”며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일제(日帝)의 전쟁범죄를 정당화하고 지지한다니, 참담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얼빠진 사람들 때문에 일본의 극우세력이 전쟁 범죄를 미화하고 적반하장(賊反荷杖) 식으로 한일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며 “이런 사람들은 ‘극우 인사’가 아니라 ‘매국노’라고 해도 부족하다” “‘토착왜구’인 것을 다시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번 고소에 앞장선 김병헌 대표는 “(김태년 의원이) ‘토착왜구’를 운운(云云)한 것은 우리 헌법과 일본 헌법, 그리고 유엔 헌장 등에서 금하는 ‘반(反)인륜적 인종차별 발언’”이라며 “대한민국의 국격을 고려할 때, 더 이상 이같은 저질 발언이 횡행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 차원에서 김 의원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의 공적 매체에서 ‘토착왜구’ 표현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지난 2019년경으로 추정된다. 2019년 2월15일부터 같은 해 4월20일까지 서울방송(SBS)에서 방영된 연속 드라마 〈열혈사제〉(熱血司祭)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구대영(서울구담경찰서 강력2팀 형사·김성균 분)이 “남석구 서장님은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이며, 일제시대부터…….”라고 말하자 주인공 김해일(신부·김남길 분)이 “토착왜구 아니냐”며 “(더 이상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다”고 대꾸하는 장면에서 바로 ‘토착왜구’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온라인상에서 네티즌들 사이에서 사용되던 이 용어가 공중파 방송으로 흘러들어가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정치인 등이 ‘토착왜구’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정선 당시 민주평화당 대변인(現 민생당 대변인)은 2019년 3월15일 “‘토착왜구’ 나경원은 반민특위에 회부하라”고 말했고 방송인 김어준 씨는 2019년 7월30일 “(뉴라이트들이) 참여한 정권이 이명박 정권이며, 이들은 이승만·전두환·박정희를 찬양했다”며 “토착왜구는 있다”고 했다.

민주당 김정호 의원은 2019년 8월6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진짜 친일파 ‘토착왜구’는 일본 육사를 삼수 끝에 졸업하고 만주군에서 독립군을 토벌한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 아니냐”고 말했고, 같은 당의 정청래 의원은 지난해 광복절 “민족 반역의 역사는 100년 전에도 50년 전에도 지금의 옷 색깔을 바꿔 입으며 면면히 암약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통칭해 ‘토착왜구’라고 부른다”고 했다.

‘토착왜구’ 표현이 처음으로 법의 심판대에 올려지게 되는 만큼, 국내 지일파(知日派) 인사들과 일본인들에 대한 멸칭(蔑稱)으로 쓰이고 있는 해당 표현에 대해 우리 사법부가 어떤 판단을 하게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