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최재형 前감사원장의 조부 故최병규 관련 '친일' 의혹 제기
대통령 표창 받은 사실은 있지만 '항일·독립운동'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여
"독립운동에 관여했다가 高校 퇴학"...당시 보도 내용 보면 사실 아닌 듯
퇴학 후 낙향, '거주제한' 조치 당했다...당시 형법 검토해 보면 '형벌' 차원 아냐
1935년 지역 유지 단체 이름 올리고 1937년 道會 의원 출마...아버지는 面長
崔 측 "그런 논리면 문재인 아버지도 친일파"

좌파 성향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가 2022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국민의힘에 입당한 최재형 전(前) 감사원장의 조부(祖父) 고(故) 최병규(崔秉圭, 1909~2008) 옹이 ‘독립유공자’가 아니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최재형 전 원장 측은 최 전 원장이 자신의 조부가 독립유공자라고 한 사실이 없다면서도 해당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로 반론을 펼쳤다.

오마이뉴스의 2021년 8월6일자 기사 〈[단독 검증] 최재형의 할아버지 ‘최병규’는 진짜 독립유공자알까?〉에서 제기된 고 최병규 옹 관련 오마이뉴스의 의혹 제기 내용과 그에 대한 최 전 원장 측 반론 내용을 각각 소개하고 그 타당성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故 최병규는 ‘독립유공자’가 아니며, 이와 관련한 대통령 표창 사실도 없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조부 고(故) 최병규 옹의 사진.(사진=인터넷 검색)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조부 고(故) 최병규 옹의 사진.(사진=인터넷 검색)

해당 기사에서 오마이뉴스는 “얼마 전 작고한 최재형 대선 예비후보의 아버지 최영섭(1928~2021) 해군 대령은 자신의 회고록 《바다를 품은 백두산》(ISBN 9791186337530)을 남겼다. 이 회고록에서 최영섭은 자신의 아버지 최병규에 대해 ‘2002년 10월13일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지만 감옥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훈장은 받지 못했다’고 썼다”면서 최 전 원장의 조부 고 최병규 옹(이하 ‘최병규’)이 강원·춘천 지역 및 만주 등지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있다고 한 최 전 원장의 부친 고 최영섭 옹(이하 ‘최영섭’)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국가보훈처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2년 10월13일 당시 독립유공자 서훈 내지 대통령 표창은 이뤄진 사실이 없고, 그보다 앞서 그해 광복절을 앞두고 표창한 208명의 독립유공자 가운데에서도 강원·평강 출신의 최병규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 전 원장 측은 2002년 10월 당시 대통령 표창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반박했다. 최 전 원장 측이 제시한 표창수여증명서에 따르면 당시 대통령 표창은 최병규가 “투철한 국가관과 통일애향의 사명감으로 군민회 조직 활성화 강화에 앞장서 왔으며 향토 문화 발굴사업에 참여, 군민지를 발간, 군민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돼 이뤄졌다.

이와 관련해 최 전 원장 측은 1984년 미수복 영토인 강원·평강의 군민회 군지(郡誌)를 만들어 평강 지역의 독립운동사를 알리는 데에 기여한 사실이 인정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그러면서 최 전 원장 측은 “오마이뉴스는 ‘보훈처의 공훈록에 독립유공자 최병규가 없다’는 점만을 문제삼고 있지만, 고인의 유족들은 최병규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언급했을 뿐 ‘독립유공자가 됐다’고 주장한 사실이 없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표창의 이유로 거론된 ‘향토 문화 발굴사업’이 최 전 원장 측이 말한 ‘강원·평강 지역 독립운동사 홍보’를 말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최병규에 대한 대통령 표창은 이뤄졌으되, 그 이유가 최병규가 항일·독립운동에 직접 관여한 사실이 인정됐기 때문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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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최병규에 대한 대통령 표창 수여 증명서의 내용.(사진=최재형 전 감사원장 측)

▲“춘천고보 1회 입학생인 최병규의 퇴학 사유는 독립운동과 관계없다”

그러면서 오마이뉴스는 “강원도민일보의 기사에도 ‘이같은 공로로 국가는 표창 수여를 추진했으나 이를 사양하는 등 일제 당시 독립운동을 국민의 당연한 도리로 생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 대목이 있다”며 “위에서 제기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이제 최병규가 어떤 독립운동을 했는지 하나하나 직접 살펴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오마이뉴스는 먼저 최병규가 춘천고등보통학교(춘천고보)에서 퇴학당한 사유가 독립운동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마이뉴스는 1926년 4월 순종 황제가 승하하자 자신의 아버지인 최병규가 춘천고보 갑조 조장 이영길과 함께 ‘순종 서거 애도 상장(喪章) 달기 운동’을 주도했다가 일본 경찰과 동(同) 학교 교무주임 삼광미(森廣美·모리 히로미, 여성)의 추궁 끝에 퇴학을 당했다는, 최 전 원장의 부친 최영섭이 쓴 회고록의 내용을 지적하고, 해당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오마이뉴스는 당시 언론 보도를 종합해 ‘최병규·이영길 등이 주도했다고 하는 춘천고보 동맹휴학(맹휴)은 일본인 교사 배척 운동이라고 하기보다는 교사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교사 모리 개인에 대한 배척 운동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해 최 전 원장 측은 오마이뉴스의 해당 결론이 ‘과도한 추론과 논리적 비약’에 근거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그 시대를 살지 않은 기자가 무슨 근거로 당시의 상황을 마음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 특정 목적을 위해 고 최병규를 폄훼하고 그 가족들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의심한다”고 했다.

최 전 원장 측은 오마이뉴스가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오마이뉴스는 당시 신문 보도 내용을 근거로 했다. 1926년 10월8일자 동아일보 기사 〈敎務主任排斥코저 春川高普盟休〉(교무주임 배척하고자 춘천고보 맹휴)를 보면 기사는 “지난 4일 오후 두 시부터 춘천공림고등보통학교 2~3학년 생도(生徒) 120명은 돌연히 탄원서를 학교 당국과 도(道) 학무과(學務課)에 제출하는 동시에 동맹휴학을 단행했다”며 “원인은 동교(同校) 모리(森) 교무주임. 평소부터 학생을 너무 사정없이 때림으로써 그를 배척하기 위한 일곱 가지 조건을 제출한 것이라는데, 학교 측에서는 방금(方今·현재) 대책을 강구하는 중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교무주임 모리가 어떤 연유로 춘천고보 학생들에게 가혹행위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지만, 기사 내용만으로 봤을 때에는 당시 일어난 춘천고보 학생들의 동맹휴학과 순종 황제의 서거 간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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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10월8일자 동아일보 기사 〈敎務主任排斥코저 春川高普盟休〉(교무부장 배척하고자 춘천고보 맹휴)에서 기사는 당시 일어난 춘천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동맹휴학 소식을 전했다. 당시 학생들의 동맹휴학 사유는 교무주임 모리 히로미(영어 담당)가 학생들에게 가혹 행위를 일삼는다는 것이었다.(출처=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최병규는 ‘춘천고보 맹휴 사건’으로 3년의 거주제한형 받은 사실 없다”

이어서 오마이뉴스는 자신의 아버지 최병규에 대해 일본 당국이 퇴학 처분을 내리고 강제로 고향인 강원·평강으로 귀향시켜 3년간의 거주제한(금족령)에 처했다고 주장한 최영섭의 주장을 지적한다. “구속돼 재판을 받은 것도 아닌데, 일본 당국이 어떻게 3년 거주제한을 내렸다는 것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최영섭의 주장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마이뉴스는 최영섭이 말한 ‘거주제한’ 조치는 일본 당국이 내린 것이 아니고 강원·평강에서 고삼면·유진면 면장(面長) 등으로 일한 최병규의 아버지 최승현이 자신의 아들에게 내린 처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사실에 따르면 최승현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每日申報)의 평강분국장과 총독부 관변단체 강원도 유도천명회(儒道闡明會) 평강지회장을 맡기도 한 바 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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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부친 고 최영섭 옹의 회고록 《바다를 품은 백두산》의 표지 디자인.(출처=교보문고)

이에 대해 최 전 원장 측은 “기사는 ‘구속돼 재판을 받은 것도 아닌데, 일본 당국이 어떻게 3년 거주제한을 내렸다는 것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일부 언론에서는 3년간의 거주제한형이라고 표현해, 재판 결과로 그런 판결을 받은 듯이 묘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그런 죄목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라고 전하고 있는데, 일제 시대 퇴학을 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인물을 일본 경찰이 요주 인물로 지정, 사찰·감시하고 행동을 제약하는 일이 없었다는 말이냐?”며 “고문하라는 법이 없으니 고문이 자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반박했다. 사찰·감시당한 사실을 입증할 수는 없지만 시대 상황상 그럴 개연성이 높다는 취지다.

1907년 제정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본 형법을 살펴보면 동(同) 법률은 제9조에서 형(刑)의 종류를 “사형, 징역, 금고, 벌금, 구류 및 과료를 주된 형벌로 하고 몰수를 부가형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형식상 ‘거주제한형’이라는 형벌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 취지의 오마이뉴스 주장은 사실이다.

최영섭이 말한 ‘거주제한’(금족령)을 연금(軟禁)의 한 형태라고 본다고 하더라도, ‘연금’은 일단 구속된 사람이 보석(保釋)으로 풀려날 때 보석의 조건으로 이뤄지는 것이어서, 최병규가 ‘연금’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구속돼 재판을 받은 사실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최병규는 춘천고보에서 퇴학당한 후 바로 고향인 평강으로 돌아왔을 뿐 재판을 받거나 한 사실이 없으므로, 최영섭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언급한 ‘거주제한’을 ‘연금’으로 볼 근거 역시 부족하다는 점에서 오마이뉴스의 지적이 틀렸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기타 최병규의 행적과 관련해

이밖에도 오마이뉴스는 최병규가 1935년 강원·평강 유진면 지역 유지들이 들어가는 유진면 면협의원에 이름을 올리는가 하면 1937년 총독부의 지방 자문 단체인 강원도회(오늘날로 치면 ‘강원도의회’에 상당) 의원으로 출마, 낙선한 후 1939년 만주국 목단강성 해림(海林)에서 조선거류민단 단장을 맡기도 했다는 사실을 들어 최병규가 독립운동가였다고 보기보다는 일제의 식민정책에 적극 협조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마이뉴스는 최병규가 해림가 부(副)가장과 조선거류민단 단장을 맡았다는 사실이 독립운동을 했다고 보기보다는 강원 지역에서 모은 만주 개척민들을 인솔하는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했다.

이에 대해 최 전 원장 측은 “그런 식의 논리를 펴자면 친일파로 몰리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며 “흥남에서 농업계장을 한 문재인 대통령의 부친도 ‘친일파’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취지로 반론하면서 “후보자 개인에 대한 검증과 비판은 달게 받겠지만, 과거의 조상까지 끌여들여 비정상적 논란을 확대하는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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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 조치를 당한 최병규 씨가 73년만에 졸업장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전한 강원일보의 1999년 2월12일자 기사.(사진=최재형 전 감사원장 측)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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