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은 지난 7월 2일 UNCTAD(유엔무역개발회의) 이사회에서 A그룹(개발도상국 그룹)에서 B그룹(선진국 그룹)으로 격상되었다. UNCTAD가 창설된 지 57년 만에 처음 일어난 지위 격상이다. 한강의 기적에 대한 공식 인증이다. 한국이 1996년 선진국 클럽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29번째로 가입한 지 25년 만이다.

당초 한국은 UNCTAD의 개도국 지위를 활용하여 빈약한 국내 산업을 보호해가면서도 대외교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박정희의 꿈은 ‘자력갱생’이나 ‘수입대체산업육성’에 매몰되지 않았다. 천연자원이 없는 최빈국의 활로는 해외시장에 있다고 읽었다. 험난할 길이지만 자유무역을 기조로 하는 국제화를 택한 것이다. 국민의 피와 땀이 함께하였다.

1960년대 한국의 총수출 중 제조업 비중이 3할대에 머물던 상황에서 해외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제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하였다. 현재 한국 수출 중 제조업 비중은 96퍼센트를 넘어섰다. 그것도 80년대의 중화학공업 중심에서 IT, 자동차, 바이오 등 최첨단 제품으로 발전하였다.

철광석과 코크스도 없는 가난한 개도국이 포항 모래벌판에 103만 톤 일관제철공장을 추진한 것은 남들에게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미국을 포함한 IECOCK(대한국원조지원단회의)가 타당성이 없다고 계속 비토했던 프로젝트였다. 거기서 만들어낸 산업의 쌀이 지금 대한민국을 6대 제조업 강국, 7대 무역 강국으로 만든 기초가 되었다. 보호주의에 안주하던 대부분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과 달랐던 점이다. 한국만이 성공하였다.

1996년 OECD가입을 두고서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았다.

후진국적 현상 중의 하나는 각종 규제를 빌미로 인가 권한을 지켜 내려는 관료들의 욕심이다. 기업에는 비용을 증가시키고 국민에게도 불필요한 부담을 준다. 정치인들이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선거공약으로 내걸지만, 막상 관료들의 반발로 좌절되었다. 국내적 논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그래서 외부적 압력을 이용한 것이다. OECD가 결의한 자유화 강령을 따르게 되면 관료들이 고수하려는 규제를 자연스럽게 풀 수 있다는 것이 김기환 박사와 같은 개방론자들의 속셈이었다.

무역은 국제화와 같은 길이다. 국제화를 하면서 자유무역의 기본원칙을 외면하기 어렵다. 내 물건만 팔고, 남의 물건은 사지 않겠다는 중상주의도 통용되지 않는다. 1980년대 중반 3저 현상(저유가, 저달러, 저금리)을 맞아 우리는 단군 이래 최대호황을 맞았다. 무역흑자가 일어나고 달러 유입이 늘어나자, 남의 물건도 사주는 상생의 정책을 취할 수 있었다. 해외여행을 자유화하고 야간통행금지까지 폐지하였다. 1988년에는 서울 올림픽으로 국민적 자신감이 절정에 달했다. 이런 자신감이 보호주의를 졸업하는 변화를 이끌었다. 나아가 1990년 전후 동유럽의 민주화와 한국의 북방정책으로 소련, 중국, 베트남과도 관계정상화를 이루었다. 교역환경의 제약들이 모두 없어진 것이다. 한국의 개방적 자유무역정책은 더욱 안정되었다.

OECD 가입 1년 후인 1997년 11월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본래 한국의 경제 기반(펀더멘털)은 튼튼했었다. 만기가 되면 자동 연장(revolve)해주던 단기외채들에 대한 상환요구가 일시에 몰려오면서 지불수단인 외환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아서 터진 참사다. 외환 유동성의 일시적 부족이 문제였다. 유능하던 한국 경제관료들의 나사가 빠졌던 때문이다.

11월 중순 사태 발생 1주 전 재경부의 엄낙용 차관보가 도쿄를 방문하여 일본 대장성의 사까키바라 재무관과 40억 달러를 스와핑하기로 의견을 모았으나, 미국의 루빈 재무장관이 일본 미츠즈카 대장상에게 한국에 아무리 지원해주어도 소용없는 일이라고 틀어버렸다.

IMF 사태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했음은 확인되었다. 금 모으기와 같은 국민적 각성도 있었지만, 기한 전에 IMF채무 350억달러를 완전히 상환해버린 것이 이를 말한다. IMF 사태 이후 주저앉은 주식시장에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가들이 몰려와서 현대, 삼성, LG와 같은 알짜 기업의 주식을 주워 담으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증언이 있다. 이미 현대증권의 BUY KOREA 펀드 5조 원으로 15개 주요 기업을 방어했기 때문이다. 1995년 멕시코의 IMF외환 위기 시 미국 자본이 초토화된 주식시장에서 주요 기업을 헐값에 인수한 사례와는 달랐다.

우리 경제가 어느 정도 일어서자 정치적 민주주의도 발전하였다. 김영삼이 1995년 극비리에 추진했던 금융실명제는 대규모 검은 거래를 봉쇄하는 장치다. 투명성을 높이는 기본이다. 일본은 아직도 도입하지 못했다. 점차 한국엔 선진사회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는 우리 속담이 가슴에 와닿는다. 후쿠시마 쓰나미 재해 당시 천안독립기념관 건립 헌금의 두 배 정도를 피해구호금으로 보냈다. 중국의 쓰촨 대지진피해, 필리핀, 터키 지진피해 당시에도 앞장서서 피해구호금을 보냈다. 특히 6.25참전국들의 재난 시에는 은혜를 갚는다는 공감대가 크게 일어났다.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변하는 것이다. 민간부문에서도 굿네이버스(Good Navers),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같은 한국의 NGO가 전 세계적으로 취약계층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섬기는 자세의 봉사라고 환영받는다. 이것이 바로 ‘향기’가 아닌가?

게다가 BTS의 버터나 퍼미션투댄스같은 노래나 영화 ‘미나리’, ‘기생충’ 같은 한류문화가 확산된다. 와이파이가 완비된 서울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끊기지 않고 넷플릭스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이런 매력 때문에 각국의 젊은이가 몰려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재임기간(2009년-2017년)중 한국을 자주 칭찬하였다. 한국인의 교육열, 원자력 발전, 지하철, 의료제도 등을 배워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렇게 선진사회로 진입하던 길목에 구멍이 파이고 있다. 심지어 썩는 냄새가 새어 나오기도 한다. 이념에 경도된 붉은 주사파들이 자신의 조국이 북한 정권인 양 혼선을 일으키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한 독재정권을 옹호하고 동포 형제들에 대한 인권유린에 대해서 눈을 감는다. 2016년 제정된 북한인권법 시행을 짓뭉개고 있다. 대북전단금지법을 통과시킨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무시하면서 인권변호사라고 자처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닌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볼셰비키적 사고에 젖어있기에 온갖 속임수를 쓰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김경수의 드루킹을 이용한 여론 조작이 대표적인 예다. 부정한 여론 조작으로 당선된 대통령은 이미 정통성을 잃었다.

그들은 북한독재체제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억지를 쓴다. 7월 27일 휴전기념일에는 북한 정권이 차단했던 남북통신선을 다시 연결했다. 앞으로 무슨 음모를 획책할지 지켜보아야 한다.

잘 나가던 한국사회의 선진화가 막히는 것이다. 은은한 ‘향기’는 날아가 버리고, 허위와 선전 선동으로 온 사회를 장악하려는 악의 세력이 발호하고 있다. ‘악취’가 선량한 국민을 중독시키려 한다. 역사적 위기다.

이제 기대할 것은 자신감에 넘치는 MZ세대의 등장이다. 그들은 열등감을 모른다. 개방적이고 국제화되어 자유와 인권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도 잘 이해한다. 그들은 동족을 학살하는 독재정권과 ‘우리민족끼리’라는 허구적 주술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MZ세대가 중심이 되어 텅 빈 머리의 586세대를 퇴장시킬 것이다. 사회에 스며들던 악성 바이러스를 제거하게 될 것이다. MZ세대가 국제사회에서 활보하는 선진 한국이 정말 기대된다.

김석우 객원칼럼니스트(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전 통일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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