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칼럼] 슬기로운 미디어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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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1.07.30 17:22:31
  • 최종수정 2021.07.3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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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의 시장에서의 생활 지침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신문과 TV를 통해서가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서 뉴스를 접하는 환경이 되면서 가짜뉴스 논란으로 대표되는 유해 정보의 문제가 제기되고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는 근거 없는 음모론이 비난 받으면서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규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전통 매체에서 디지털 매체로 전환되는 변화의 시기에 유통되는 정보 양이 폭증한 정보 과잉의 상황과 전통 미디어의 편파적인 운영 및 이로 인한 신뢰 상실이 문제가 제기된 원인이다. 문제의 본질은 디지털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의 내용 문제가 아니라 위와 같은 상황으로 인하여 정보 선택에서 혼란이 야기되는 정보 무질서(information disoder)상황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정보 무질서의 상황에 대해서 정보를 어떻게 취사 선택할 것인가라는 이용자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아야겠다. 정보의 내용에 대한 분별력이 필요하겠지만 그 전에 정보를 전달하는 미디어의 성격과 이에 따른 미디어의 효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미디어는 정보를 전달하는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전달되는 정보의 성격을 규정하고 미디어 자체의 성격에 따라 이용자에게 다른 영향을 미친다. 책을 통해서 정보를 얻는 것과 TV를 통해서 얻는 경우가 전혀 다른 것처럼 정보 전달과 그로 인한 효과는 미디어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 유튜브등 대중적인 정보 유통 수단인 동영상 매체의 성격과 그로 인해서 전달되는 정보가 어떻게 규정되고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뉴미디어로 분류되는 유튜브의 뜻이 당신의 TV(tube)라는 사실은 전통 미디어인 TV의 영향력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우리가 접하는 정보의 대다수는 TV 형태의 미디어를 통해서 전달된다. 사각형의 창으로 된 화면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TV는 그 창으로 볼 수 있는 세계를 보여준다. 사진 촬영을 처음 배울 때에 뷰파인더 안에 촬영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담으려고 하지 말고 화면에 담지 않을 것을 제외하면서 대상을 선택하라고 가르친다. 창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창에 맞추어서 보여줄 세상을 선택하는 것이다. 창에 담긴 세상은 넓은 세계의 극히 적은 부분이지만 마치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보여진다. 보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미디어가 선택한다. 사진, 영화 또는 TV의 화면, 모바일 전화의 모든 창은 세계를 창 안의 세상으로 구성하여 재현한다.

사진이나 영상에서 우리가 감동을 얻고 세상을 다시 발견하는 것은 창이라는 형식이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을 단순화하고 쉽게 재구성하여 재현하기 때문이다. 창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통해서 정보를 취득하면서도 그 창 안에서 실제의 세계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그런 방식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그 방식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상의 세상이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욕구하는 것이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을 만든다. 가짜뉴스 논란은 사람들이 그러한 내용을 찾기 때문에 비롯된다. 창을 통해서 세상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그 안에서 리얼리티를 추구하기에 더욱더 리얼리티를 구현하는 다양한 수단이 고안되고 더욱 현실감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된다. 잊지 말하야 할 것은 창을 통해서 보는 세상은 실제 살아가는 세계의 극히 일부분이고 현실 자체를 그대로 재현하지 못하므로, 창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필요가 있는 만큼 그 필요에 따라서 만들어진 세상이 제공된다는 사실이다. 미국 전 대통령 닉슨은 미국인은 TV에 나오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는데, 오늘날로 치면 사람들은 구글에서 검색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는 뜻으로서 미디어가 현실을 대체하는 현상을 말해주고 있다. 창 안에서 현실 세계를 추구하지만 진실은 창을 통해서 항상 확인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미디어 생활에서 유념해야 할 첫 번째 태도다.

드라마의 경우만이 아니라 뉴스의 경우에도 정보는 대개 이야기의 형식으로 전달된다. 요즘은 뉴스 제작에도 스토리 작가가 관여한다. 단지 사물의 제시나 사건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알기 어렵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무엇을 하였다라는 서술형 이야기로 사태를 설명하게 되는 것은 정보 전달을 위한 방법이다. 이미지와 영상만에 의한 표현의 전달 기법이 아무리 발전하여도 오랫동안 익숙한 정보 전달의 방법은 이야기의 형식이다. 자막이나 내레이션이 없이 연결되는 영상만으로 표현하는 영화의 경우라도 전체 이야기의 맥락이 의미 전달의 수단으로서 작용하기에 이해가 가능하다. 전혀 다른 내용의 영상을 연결하여 편집하고 같은 흐름의 이야기에 의해서 구성하는 경우에 동일하지 아니한 것이 동일한 것처럼 보여지거나 관련이 없는 것이 관련이 있는 것처럼 인식되어서 사실이 왜곡될 수가 있다. 제공되는 이야기 구조가 내용을 구성하고 관련이 없는 것을 관련이 있는 것처럼 사실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은 이야기라는 정보 전달의 형식으로 인하여 발생한다.

동영상은 문자보다 주목을 받기에 유리한데, 소리와 이미지는 해석을 거치지 않고 바로 관찰되면서 인식된다. 자주 보아서 누구에게나 익숙한 친근한 이미지의 뉴스 앵커가 우리를 정면으로 마주 대하고 바라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할 때에 그 현실적인 느낌은 그 이야기를 신뢰하게 만든다. 이미지와 영상같은 매체는 시각 또는 청각이라는 지각기관에 의해서 즉각적으로 인식이 되고 설명이 덧붙여질 필요가 없다. 동영상이라는 형식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기에 선전의 도구로써 각광을 받았다. 라디오와 TV는 그 등장과 함께 세계 제1, 2차 대전 시기의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사용예에서 미디어와 권력의 관계가 자주 거론된다. 리얼리티를 제공하는 동영상은 잘못된 목적을 위해서 악용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제한된 크기의 창을 통해서 현실을 재현하는 미디어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을 제공하여 주지만 가공된 현실을 사실인 것처럼 보여줌으로써 관심을 요청한다. 미디어가 시청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들의 시간이며, 시청자의 시간을 얻기 위해서 제한된 창 안에서 최대한의 리얼리티를 구현하는 경쟁을 벌인다. 늘상 있는 평범한 주제만으로는 시선을 끌 수 없기에 시간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과열되기 마련이다. 충격적인 주제를 다루거나 파격적인 형식을 취하여서 주목을 받고자 함으로써 물의를 빚기도 한다. 비난을 많이 받는 막장드라마는 시청자의 관심을 유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내용적인 면에서 주목을 받으려면 시청자가 원하는 것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내용이 제시되어야 한다. 해피엔딩같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서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단 하나의 원인으로 명쾌하게 설명하면서 결말까지 소개하는 음모론의 제시. 단 한가지 처방으로 모든 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되는 만병통치약의 발견, 도저히 풀리지 않는 분쟁을 해결할 위대한 지도자가 갑자기 등장해서 한 번의 전쟁이나 한 번의 선거에서 승리하여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된다는 기적의 실현이야 말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법이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실제적인 해결이 아니고 기대 충족으로 인한 만족감이나 그러한 기대를 요구함으로써 좋은 것을 의도하고 있거나 좋은 결과에 참여한다는 자존감이 제공하는 자기 위안이다. 창 안의 세상은 세계의 일부이고 전부가 아니며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제공할 수 없기에, 관심을 끄는 모양새를 꾸미거나 완전 무결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내용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영상이 제공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만족감을 가져오는 시간일 것이다. 이렇게 만족감을 주는 영상은 유난히 거듭하여 반복된다, 계속 반복되는 동일한 메시지는 우리의 노출 시간을 늘이게 함으로써 우리에게서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미디어의 입장에서는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시청자의 노출 시간을 늘이고 시청자로 하여금 그가 가진 시간을 시청에 몰두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정보를 얻으려면 시간을 지출해야 한다. 미디어가 만들어 가는 미디어 세계는 시청자의 시간이 관심이라는 형태로 거래되는 관심의 시장(Marketplace of Attention)이다. 관심의 시장에서 시간이라는 시청자의 자산은 관심이라는 형태로써 광고주에게 제공되고, 광고주는 시청자가 제공한 시간에 대한 댓가를 미디어에게 지불한다. 유튜브 시청은 우리의 시간을 댓가로 치르고 광고주는 우리의 시간을 사는 거래 행위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우리의 시간으로 우리를 광고주에게 판매한다. 광고주에게 팔리는 우리의 시간은 그만큼 값지게 팔리고 있는가?

미디어가 제공하는 세상은 현실 세계의 작은 일부분이며 실제가 아니고 우리가 원하는 만큼만의, 우리를 만족하게 할 정도의 세상이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리얼리티를 추구하고 그곳에서 현실을 본다. 우리는 미디어가 규정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정치, 문화, 오락, 교육등 어떤 내용이건 미디어가 제공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시간을 전부 투자하기에는 미디어가 보여주는 세상은 너무 좁고 제한적이다. 그것이 보여주는 관심이 가는 내용이나, 완전무결한 해결책이 주는 만족감은 우릐의 주목을 끄는 방법이다, 우리가 원래 그것을 요구하였기에 그것을 보여주게 된다, 미디어는 현실이 아닌 현실이다. 코로나 시대에 들어서 대면 접촉이 힘들어지고 미디어 접속 시간이 증가되면서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모든 문제가 미디어에서 찾을 수 있는 완벽한 세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것은 현실의 일부분이거나 현실을 잘못 보여줄 수도 있고, 자칫 우리를 중독으로까지 이끌어서 현실과 담을 쌓게될 우려가 있기도 하다. 슬기로운 미디어 생활은 미디어 세계에 살면서도 그것이 단지 창 안의 세상이라는 것을 알면서, 더 넓고 이해할 수 없지만 더 많은 가능성이 있는, 열려있는 현실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되새기는데서 출발한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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