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내년 3월9일의 제20대 대통령선거까지 8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이미 수많은 후보들이 사실상 선거운동을 하고 있고, 아직 공식적으로 출사표를 던지지 않았음에도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도 있다. 그런 가운데 유력 후보들 중심으로 네거티브 공방까지 확산되고 있다.

물론 그런 과정도 필요할 수 있다. 혹독한 검증을 거쳐서 대한민국을 향후 5년 동안 책임져야 할 대통령으로서 자격을 확인해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개인이나 가족의 과거사를 들추고 도덕성을 따지느라 정작 대통령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과 능력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그 결과 도덕적인 결함은 상대적으로 적으나 국정을 이끌어갈 능력이 부족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국민 모두의 불행이 될 수 있다.

도덕성 검증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질과 능력의 검증이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후보는 경제에 대한 전문성을 내세우고, 어떤 후보는 외교와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각기 자신의 장점을 내세우지만, 그것이 과연 대통령의 자격을 평가하는 국민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 분명치 않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여전히 혈연이나 지연, 학연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고, 이념적 성향이나 정책공약에 주목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잘 생겼다, 인상이 좋다는 이유로 지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정말로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한 진지한 고민을 전제로 투표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고 믿으며, 이분들을 위해 대통령의 자격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 대한 비전

시대에 따라 국가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의 유형은 달라진다. 경제대공황이나 전쟁 등 국가 위기상황에서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나 윈스턴 처칠과 같은 지도자가 요청되는가 하면, 안정된 가운데 침체되고 있는 국가를 새롭게 발전시켜야 할 때에는 존 F. 케네디와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에서도 군사독재와의 투쟁 과정에 앞장서는 지도자와 민주화 이후에 대한민국을 새롭게 발전시켜야 할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능력이 같을 수 없다. 과거 민주화 투쟁을 견인하였던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지만, 2021년 현재의 대한민국이 요구하는 대통령은 또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기 대통령의 자격을 말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2021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이를 향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와 관련한 비전의 제시가 가장 중요하다. 막연하게 국민소득을 몇만 달러로 높인다. G7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인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문제를 꿰뚫고 이에 대한 해결을 제시하는 명쾌한 비전이 나와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최강국으로 자리매김되면서 점차 타성에 젖고, 안일함에 빠져들던 미국을 일깨웠던 존 F. 케네디의 ‘뉴 프론티어십’처럼, 민주화의 성공 이후 30년의 성과가 보수와 진보의 소모적 갈등으로 인해 허물어져 내리는 현실을 극복하고 국민들의 공감 속에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견인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 그런 사람이 진정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격이 있다 할 것이다.

균형과 조화의 리더십

역대 모든 대통령이 통합의 리더십을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었다.

그러나 어떤 대통령도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된 적은 없었다. 민주국가에서는 항상 정치적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수밖에 없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의 한 사람으로 꼽히던 에이브러햄 링컨조차도 늘 강력한 지지와 치열한 반대 사이에 있었고, 결국 암살되기까지 했던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편향성을 갖고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은 나라 전체의 불행이며, 파괴적 갈등과 심각한 불공정의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억제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정치적 이념과 소신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이에 기초한 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균형과 조화의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내 편에 대해, 내 사람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상대편에 대해서는 더없이 가혹하게 대하는 국정운영과 법집행은 결국 편가르기이며, 공정성의 침해이고, 내로남불이 된다. 정치적 동지 내지 지지층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며,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면서 공정하게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다.

정치가 제로섬 게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결국 상대편을 약화시키고 몰락시켜야만 내 몫이 커지는 것이기 때문에 진흙탕 싸움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능력과 노력에 의해 평가받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 승자독식의 논리가 아니라 각자의 역할에 따른 몫을 인정하면서 선의의 경쟁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이 시대의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막연하게 모든 국민을 존중하고 통합한다는 말보다는 다양한 정치세력과 사회단체, 이들이 대변하는 다양한 국민 계층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어떻게 가능하며, 이를 갖춘 후보자가 누구인지를 평가해 보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마련된 개표상황실을 찾아 두 손을 번쩍 들어 인사하고 있다. 2017.5.9(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마련된 개표상황실을 찾아 두 손을 번쩍 들어 인사하고 있다. 2017.5.9(사진=연합뉴스)

진영과 코드에 갇히지 않은 인재등용

민주화 이후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발전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최근의 정부 고위직 인사에 대해 군사독재 시절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드물지 않다. 그 시절에는 그래도 각계의 최고 인재들을 등용하려 애썼는데, 최근에는 인재의 등용보다는 코드 인사가 우선되면서 대한민국 정부의 경쟁력이 심각하게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현대의 고도화된 산업사회에서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요구하고, 이러한 전문성을 대통령 개인이 고루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가능하지 않다. 대통령은 모든 국가사무를 스스로 집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를 담당할 유능한 인재들을 등용하는 사람이다. 이미 수천 년 전에 개인의 능력으로 초패왕 항우를 따를 수 없었던 한고조 유방이 결국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소하, 한신, 장량 등의 유능한 인재를 기용했기 때문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세종대왕이 집현전을 만들어 유능한 인재들을 등용하여 조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유독 그 시기에만 특별히 인재들이 많았을까? 그보다는 세종대왕이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재의 등용에 가장 적극적이었으며, 인재를 발탁하는 안목이 탁월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주요 공직을 논공행상의 대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쟁력으로 인식하면서 유능한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대통령이 유능한 대통령이다.

코드가 맞지 않는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불협화음이 생긴다고? 적어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면 내 사람이기에 자리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맡아야 할 유능한 인재를 발탁해서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을 도약시킬 수 있는 인재들을 오히려 배제하면서 말 잘 듣는 측근들을 주위에 포진하는 것은 스스로를 인(人)의 장막에 가두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민은 신뢰할 수 있는 대통령,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을 원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그로 인해 한껏 기대를 키웠던 국민들은 더 큰 실망을 안게 되었다. 당장 눈앞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조건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 그로인해 정규직 시험을 준비하던 사람들을 절망시키는 것이 공정인가? 내 편에게 관대하고, 상대편에게만 엄격한 것이 정의인가? 오죽하면 ‘내로남불’이 문재인 정부를 가장 잘 표현하는 수식어가 되었겠는가?

선거 이전과 선거 이후에 태도가 달라지는 정치인들은 수없이 많았다. 이제 많은 수업료를 지불한 국민들은 선거공약만으로 쉽게 설득되지 않는다. 정말로 실현 가능한 공약인지, 공약을 지킬 의지가 있는 것인지를 면밀하게 분석한다. 대통령이라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뜬 구름 잡는 공약, 선심성 공약, 실현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 공약에 대해서는 오히려 공약의 역효과가 더 커진다.

그럼에도 그동안의 선거는 말 잔치인 경우가 너무 많았다. 정작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청와대에 입성한 이후에는 하나 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이 된다. 그로 인해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분권형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주장도 타당한 측면이 있지만, 그것이 대통령선거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제도의 문제와 사람의 문제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동시에 해결되어야 한다. 제도 개선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이 출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국민과의 약속을 무겁게 여겨 제대로 지키는, 신뢰할 수 있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 모두가 주권자인 국민의 요구이다.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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