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캠프는 14일, 최장집 명예교수와 지난 12일 오찬 자리를 가졌다고 밝혔다.2021.07.14(사진=윤석열 캠프 제공_
윤석열 캠프는 14일, 최장집 명예교수와 지난 12일 오찬 자리를 가졌다고 밝혔다.2021.07.14(사진=윤석열 캠프 제공_

윤석열 예비후보가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를 지난 12일 서울 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고 14일 밝혔다.

윤석열 캠프에 따르면 '한국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해법'에 관해 진보 성향의 최장집 교수과 오찬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서의 관건은, 그들이 나눈 이야기의 주제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강조하며 정치선언을 한 윤석열 예비후보는 왜 하필 '진보 성향 학자'로 분류되는 최장집 교수를 만나 '자유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던 것일까.

앞서 최장집 교수는 지난 5월7일 제주연구원에서 열린 '제24주년 특강'에서 "한국 민주주의 앞날은 비관적이란 생각이 든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는 "적폐청산·역사청산을 개혁 정책을 위한 슬로건으로 밀고 나가는 새 정부(문재인)의 급진주의적 엘리트들은 은연중에 자유주의적 대의제 민주주의를 부정적으로 보면서 민중주의적(populist)이고 대중참여적인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한다"라고 진단했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민주주의 원리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고 법을 초월 혹은 우회 한다"라고 질타했었던 인물이다.

그런 그와 윤 예비후보가 이날 나눈 이야기 중 주요 소재는 ▲자유주의 ▲대통령 권력의 초집중화와 확장적 국가주의 ▲개혁열풍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개헌 ▲정치지도자의 자세 등이다.

윤 예비후보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답변했을까. 펜앤드마이크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야권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그가 진보 성향 학자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윤석열 캠프가 밝힌 최장집 교수와의 대담을 모두 공개한다.

채진원 연구원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비롯한 586 운동권 그룹의 행태는 조선시대 위정척사 운동으로 대표되는 유교적 습속을 빼다 박았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그들의 사고체계는 21세기를 살면서도 위정척사, 소중화로 똘똘 뭉친 주자성리학자들과 동일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1980년대 시위를 벌이는 대학생들. 바로 이들 학생운동의 지도부가 오늘날 문재인 정부의 핵심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채진원 연구원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비롯한 586 운동권 그룹의 행태는 조선시대 위정척사 운동으로 대표되는 유교적 습속을 빼다 박았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그들의 사고체계는 21세기를 살면서도 위정척사, 소중화로 똘똘 뭉친 주자성리학자들과 동일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1980년대 시위를 벌이는 대학생들. 바로 이들 학생운동의 지도부가 오늘날 문재인 정부의 핵심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출처=김용삼 대기자)

#1. 자유주의

▶윤석열= (6월29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는 우리 헌법의 근간이다.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이며 전제(專制)다. 현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에 '자유'를 빼내려 하는데 어떤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인지 의문이다. 자유주의에 대한 교수님의 인터뷰·논문을 장기간 접했으며 공감해왔다.

▶최장집= 자유주의가 없으면 민주주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의 건강한 작동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지금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위기는 자유주의적 기반이 허약한데서 비롯된다. 민주주의 과정에서 다원(多元)주의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 점이 민주주의를 구조적으로 취약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과거 냉전(冷戰)시대 권위주의 환경을 통해 자유주의를 경험했다. 그 때문에 자유주의를 '냉전 자유주의'로 부정적으로 인식, 이해하는 경향이 많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유주의를 '냉전 자유주의'와 구분 시키면서 현실에 뿌리 내려야 한다. 또한 서구에서 자유주의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보면 부르조아지 이념이었다는 점이다. 자유시장경제에서는 상층(上層)부르조아지가 발전시킨 이념이었다는 것을 약점으로 염두에 두면서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반드시 다원주의를 동반해야 하며 노동·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뒤따라야 한다.

▶윤석열 = 크게 공감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승자와 사회적 상층(上層)집단을 위한 것이라는 오해가 있다. 자유민주국가에서는 나의 자유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와 존엄한 삶도 마찬가지로 소중하다. 존엄한 삶에 필요한 경제적 기초와 교육의 기회가 없다면 자유는 공허하다. 승자 독식은 절대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자유시장경제가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선 기업이 공정한 경제 질서를 헝클어뜨리는 행위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대기업이 시장의 자유경쟁을 저해하는 것을 막고 서민과 취약계층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19세기말 이후  미국에서 반(反)독점법 (the Sherman Anti-Trust Act)을 만든 배경과 과정은 중요한 역사적 사례다.

▶최장집= 역사적으로 본다면 한국의 '냉전자유주의'는 접두사 없는 자유주의로 발전하는데 실패했다. 권위주의적 구(舊)질서와 연결된 자유주의는 그 후 민주화과정에서 민주화운동 세력에 의해서도 배척됐다. 한국의 자유주의는 그렇게 보수에 의해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고, 진보에 의해 버림받은 미아(迷兒)같은 존재로 버려졌다. 이런 연유로 현재 한국정치에서 자유주의의 넓은 이념적 공간은 비어있다. 촛불시위 이후 보수는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적 영향력을 상실했다. 지금의 보수는 이 비어있는 공간에서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국가와 사회관계의 구조를 대변하는 세력으로 재건될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를 도약시킬 역사적 기회가 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를 보수가 잡는 것으로 재도약의 기회가 온 것이다. 그것은 자유주의적 다원주의의 공백을 채우는 작업으로 출발해야 한다.  

▶윤석열= 새로운 기술 혁명 시대의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학 기술과 경제 사회 제도의 혁신과 자유주의 정신이 필수다. 혁신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 자율적인 분위기, 공정한 기회와 보상, 예측 가능한 법치에서 나온다. 창의와 혁신은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공정과 상식, 법치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2. 대통령 권력의 초집중화와 '확장적 국가주의'

▶최장집= 한국의 정치 상황은 대통령 권력이 초(超)집중화되면서, 국가가 굉장히 확대 강화되고 국가가 일방적으로 독주하는 체제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확장적 국가주의(maximal state)'다. 그 속에서 시민사회는 양극화되고  세력균형이 파괴됐다. 이로 인한 자유주의 다원주의가 가능하지 않게 돼버렸다. 토론이나 대안을 낼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하지 않게 됐다.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다원(多元)주의적, 대의제 민주주의를 지칭한다. 오늘의 진보세력은 강력하고 확장적인 국가주의의 자리를 선점했다. 그런 국가주의가 관철되는 것과 자유주의-다원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체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당 체제가 변화가  시급하다. 촛불시위 후 한때 궤멸에 가까운 상황에 직면했던 보수정당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비전·이념·가치를 만들어 재건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협치(協治)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협치의 조건을 만드는 노력을 우선 집중해야 된다. 말만을 앞세운 협치는 공허하다.

▶윤석열= 대통령 권력의 집중화는 헌법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과 법의 지배를 심각하게 저해한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성탄을 하루 앞둔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9차 촛불집회에서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6.12.24 (사진 = 문재인 전 대표 제공,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성탄을 하루 앞둔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9차 촛불집회에서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6.12.24 (사진 = 문재인 전 대표 제공, 연합뉴스)

#3. 개혁열풍과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 최장집= 촛불시위 이후 정부와 민주당이 추구해온 개혁 방식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방식이라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적폐청산을 모토로 하는 과거 청산 방식은 한국 정치와 사회에 극단적 양극화를 불러들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 분열을 초래함으로써 개혁의 프로젝트가 무엇을 지향하든 성과를 낼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다시 말해 '적폐청산'을 내건 개혁의 열풍은 민주화이후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화이전의 민주주의관이 복원됐음을 말해준다. 이는 '국정교과서 만들기'와 다름없는 역사관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진보 정치가들을 거의 입만 열면 개혁을 주창하게 만드는 '개혁꾼(reform monger)'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 윤석열=그런 상황이 정권 교체의 역사적 소명과 신념을 강화시킨다. 정권교체를 하지 않으면 개악(改惡)을 '개혁'이라 말하는 '개혁꾼'들, 독재·전제를 민주주의라 말하는 선동가들, 부패한 이권(利權) 카르텔이 지금보다 더욱 판치는 나라가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정해구 정책기획위원장으로부터 국민헌법자문안을 전달받고 있다. 2018.3.13(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정해구 정책기획위원장으로부터 국민헌법자문안을 전달받고 있다. 2018.3.13(사진=연합뉴스)

#4. 지금은 개헌 논쟁은 타이밍에 맞지 않아 

▶최장집= 일각에서 개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지금은 개헌 타이밍이 아니다. 지금의 개헌 논쟁 속에 대통령 권력이 너무 비대해 총리와 내각, 의회의 역할이 부실, 취약해졌고 청와대에 종속된 상황을 개선하자는 점이 있다. 대통령의 권력을 하향·분산시켜야 하는 점은 맞다. 하지만 정부형태를 바꾸는 개헌을 논한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부적절, 타이밍이 맞지 않다. 개헌 방향의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컨센서스를 만드는 것도 어려우며 그 결과도 불확실하다. 지금은 집중화된 대통령 권력을 하향·분산하는 개선책을 현행 헌법의 틀 속에서 찾아야 한다. 헌법 조항(86·87·88조)에 있는 총리의 위상·역할만 제대로 구현·활용해도 대통령 권한을 줄일 수 있다.

▶윤석열= 국정의 의사 결정에서 청와대의 우월적 독점으로 인한 국정 난맥상이 심각하다. 비서실장, 수석 비서관 심지어 행정관들이 내각을 지휘하고 있다는 것이 공직사회의 불만이다. 헌법 틀 안에 있는 총리의 역할이 보장되면 내각의 결정권이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집중화된 청와대 권한을 줄일 수 있다는 교수님의 지적에 공감한다.

#5. 이 시대 정치 지도자의 자세

▶최장집= 한국의 정치지도자가 되기 위해선 촛불시위이후 민주주의를 위협할 정도로 강도가 높아진 사회적 갈등을 완화 것이 중요하다. 시계추를 짧게 해서 진폭을 줄이듯 갈등의 강도가 완화되게끔 해야 한다. 현재 나타나는 전 사회적인 갈등을 세부적으로 부분별로 나눠 접근·해결해야 한다.

▶윤석열= 적극 동감한다. 지금의 심각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완화· 해결하는 이 시대 리더십의 필수 조건이라고 믿는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마련된 개표상황실을 찾아 두 손을 번쩍 들어 인사하고 있다. 2017.5.9(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마련된 개표상황실을 찾아 두 손을 번쩍 들어 인사하고 있다. 2017.5.9(사진=연합뉴스)

 

조주형 기자 chamsae9988@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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