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큰 목소리가 아닌 능력과 무게감
기업인들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점에서 더 큰 책임감을 느껴야
특권의식으로 '갑질' 이어진다면 소비자로부터 결국 외면받아

홍준표 PenN 기자

이번 '갑질' 논란의 주인공인 조현민 대한항공 광고담당 전무(35)의 행동은 누가 봐도 몰상식하다. 정확한 실체는 파악해봐야겠지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인 음성파일의 주인공이 조현민이라면, 그 몰상식적인 언행으로 될 사업도 안되게 만들었던 조 전무의 소문들이 사실이라면 독설로 유명한 고든 램지나 사이먼 코웰이 아닌 이상 사회로부터 쏟아지는 비난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회사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 자들의 갑질은 누군가 지적해주지 않으면 그 횡포가 심해진다. 대기업 오너의 자녀로 살아온 조 전무는 35살이란 나이에 전무로 오르면서 나름대로의 '방어기제'가 작동했을지 모른다. 소리지르고 막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관계자들의 증언들은 어린 나이에 낙하산으로 내려와 임·직원들을 한 번 휘어잡아 보겠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것이 단순히 방어기제를 넘어 습관화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아니면 정말 특권의식에 찌들어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착각에 빠져 살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업인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중 하나는 분명 엄청난 압박감을 짊어지고 기업을 이끌어가는 능력일 것이다. 능력없는 상사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시 직급이 낮은 사람들에게 분을 푸는 모습은 대다수 직장인들이 흔히 겪는 고충이기도 하다. 나름 사회 생활을 '빡세게'했던 사람들이라면 "사회는 원래 그런거야 임마"라며 으레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을 비호한다면 사회에 진정한 변화 또한 없다. 자기 아버지 뻘인 임원에게 반말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증언과 5분여간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러대는 음성파일을 들어본 바로선 좀처럼 '으레 겪는 상사'의 모습이 연상되지 않는다. 마치 주인과 노비 관계와 같은 전근대적 사고관이 조 전무를 지배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자가 회사의 경영진이라면 회사는 몰락하고 결국 시장에서 퇴출된다. 특히나 오너 경영을 하는 기업이라면 그 하향 곡선은 3대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엔 2대이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애사심을 넘어 도를 넘은 비판에도 겸허하고 담담한 모습을 보였던 이재용 부회장은 실력으로 사내에서 인정받아 부회장직까지 올라갔다. 일 중독이 심하다 못해 수감 생활 기간 내내 경영서적에 탐독했던 이 부회장의 모습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총수가 짊어진 무게감을 엿보게 한다. 매일 밤 12시에 잠들어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생을 기업의 미래에 대해서 바치는 그의 기계적인 모습은 우리가 흔히 드라마에서 보는 백마 탄 왕자의 모습이나 갑질로 우월감을 느끼는 부류가 아닌, 거대한 압박감이 만들어 낸 기업인들의 모습이다.

필자는 운이 좋게도 아는 지인들을 통해 대기업 임원들의 생활을 엿들을 수 있는 기회들이 꽤나 자주 있었다. 소위 '잘나가는 기업'의 임원일수록 사생활은 없었고 가족의 희생은 필수적이었다. 매주 주말 바이어들을 상대로 마음에도 없는 표정 지어가며 친분을 쌓으려는 노력과 스트레스로 위경련을 달고 살아도 오직 회사의 미래만을 고민한다. 이를 자본주의가 낳은 폐해라고 뒷짐지며 이야기하는 현실과 담 쌓은 자들에 대해 그들은 딱히 불평도 하지 않는다. 불평도 않고 재미도 없으니 대중들은 대기업 총수들에 대해 보고 들은 것이 TV 속 드라마의 주인공을 연상케 하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점에서 조 전무는 자신의 언행에 대한 도덕적 심판만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기업인들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점에서 더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기업의 상류층에서 이런 이미지를 양산할수록 오너 경영을 하는 기업 뿐만 아니라 밤잠을 못 이뤄가며 고심하는 기업가들까지 도매금으로 매도당해 '재벌 타파'를 외치고 있는 추세이기에 더욱 그렇다.

물론 우린 그동안 너무나 많은 '소문'을 통한 '마녀사냥'에 의해 많은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죽여왔기에 조심스러워야 한다. 인간성이란 구석은 찾아볼 수 없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런웨이 편집장인 미란다, 직원들에게 물이 아닌 음식을 던지며 온갖 비속어를 남발하는 세계적인 쉐프 고든 램지의 경우 등을 생각해본다면 동전의 양면을 모두 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한항공이나 광고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말들이 사실이라면, 조 전무가 기업가로써 그리 대단치 않은 사람이라면 이런 도덕적 면죄부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단지 부모의 도움을 받아 낙하산타고 내려온 자리로 비롯된 자격지심의 발로(發露)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자신이 갑이라고 착각하며 살진 모르지만 시장의 최종적은 갑은 결국 소비자다. 친언니인 조현아씨의 '땅콩 회항' 사건에 이어 재벌 2세의 모습이 이렇다면 소비자들로부터 언젠가는 응징 당한다. 단순히 제품과 서비스가 좋다고 시장에서 우월적인 지위를 점하는 것은 아니다. 광고를 담당하는 전무가 색다른 방식으로 부정적인 홍보들은 다해놨으니 소비자들에겐 이미 갑질하는 기업으로 충분한 광고는 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오너 경영의 장점은 일가(一家)의 소속원들 만이 만들어 낼 수 있기에 그 자체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이번 사건으로 한 일가에 대한 비판까지 감수해야 될 지경까지 이른 상황이다. 이 땅에서 피땀 흘리며 일하는 기업가들을 위해서라도, 선진국 대열에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가 단순히 조현민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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