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직선제 개헌 이후 최초로 레임덕 없는 대통령...대체 왜?
여러 정책에 대한 불만이지 정권에 대한 전면적 거부로 이어지진 않아
87년 체제의 필연적인 귀결...5년 단임제 대통령의 구조적 문제
군부 엘리트가 정점에 있었던 거버넌스 시스템의 부재 또는 약화
민주화 세력이 각계각층 잠식해들어가...그 최종 귀결이자 완성이 朴 탄핵과 文 집권
87체제에서 거버넌스 기능했던 유일 세력이 법률가 집단...바로 검찰이 핵심
野 지지, 文정권 실정에 반사효과일 뿐...고유의 메시지나 정치적 가치에 따른 것 아냐
우파는 냉정하게 주제 파악해야...야권의 정권 탈환 가능성 별로 높지 않아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내년 대통령 선거는 1987년 체제 이후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보여주는 풍향계가 될 것이다.

내년 대선에서 우파 후보의 승리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정권의 실정에 대한 유권자들의 분노가 커졌고, 우파 후보로 거론되는 윤석열의 지지율도 고공행진을 계속해왔다. 국민의힘 지지율도 민주당과 경쟁하는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어 드디어 탄핵의 후유증을 벗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의 압승도 이런 분위기에 일조했다.

하지만, 우파의 승리를 점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도 많다.

우선 문재인의 지지율을 들 수 있다. 문재인 지지율은 한때 30% 중반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 머지 않아 40%대를 회복했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에게 표를 던졌던 지지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5~6% 정도 떨어져나갔던 지지층은 지지를 유보했다기보다 지지 표명을 유보했다가 원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은 직선제 개헌 이후 최초로 레임덕 없는 대통령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리고, 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정권 연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분노의 성격도 문제다. 현 정권의 실정에 대한 분노가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과연 현재 집권세력 자체에 대한 거부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2019년 가을 광화문을 뜨겁게 달구었던 조국 퇴진 시위 현장에서 필자는 가두서명을 받았다. 이때 어떤 60대 여성과 대화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평생 자영업에 종사하다가 장사가 너무 안되어 가게를 접고 쉬고 있다는 이 여성이 “나라가 왜 이 지경인지 설명 좀 해달라”고 말을 걸어와 대화를 하게 됐다.

이 여성은 최저임금 대폭상승에 대해 “그것 때문에 죽겠다”고 말했고, 탈원전에 대해서는 “원전이 불안한 것은 사실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이 여성과 여러 현안에 대해 대화해보고 느낀 것은 이 여성이 문재인 정권의 여러 정책에 불만을 느끼고 있지만 그게 이 정권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 그 여성은 문재인 정권의 통치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거의 전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경악했던 것은 대화의 말미에 이 여성이 한 발언이었다. “저는 지난번 대선에서 홍준표를 찍었어요.” 즉 이 여성은 흔히 말하는 강경 보수 성향의 유권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을 찍었다는 50대 전문직 남성과 대화해본 적도 있었다. 문재인의 최저임금 대폭인상이나 탈원전, 친북종중 반미반일 스탠스에 대해 이 남성은 “문제가 있다”고 선선히 인정했다. 하지만, 이 남성의 결론은 “그래도 문재인 정권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최근 여론조사회사 글로벌리서치의 발표를 살펴보자. 20대 여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1%라는 결과로 충격을 주었던 조사다. 이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자들 가운데 '정권 교체가 되어야 한다'는 응답율이 52%에 불과한 반면, ‘정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답변은 68%에 이른다.

즉,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정권교체 욕구는 미약한 반면, ‘우리 정권을 반드시 연장해야 한다’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욕구는 훨씬 강하다는 얘기다. 이는 대한민국 정치가 여전히 탄핵의 자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다 근원적인 지점에서 분석하자면 이는 87년 체제의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87년 체제의 핵심 모토는 권력의 공유와 분점을 통해 누구도 장기적이고 전면적인 권력을 틀어쥐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여야가 사이좋게 정권을 나눠갖자는 정신이다. 그 단적인 표현이 대통령 5년 단임제이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은 국정 운영 성과나 평가와 상관없이 5년이 지나면 무조건 후임에게 권력을 넘겨줘야 한다. 87체제 대통령의 역할은 재임 기간 동안 얼마나 중요한 업적을 남겼느냐 하는 것보다 얼마나 무난하게 제때 후임자에게 권력을 넘기고 떠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웬만큼 자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집권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권력구조였다. 1987년 당시 개헌 논의를 주도했던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3김씨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또한 이승만과 박정희의 장기집권 그리고 군부독재의 문제를 극복하고, 좀더 개방화되고 유연화된 거버넌스 시스템을 구현하자는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권력구조였다.

이런 권력구조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6공화국 들어 우리 사회가 민주화 추세에 발맞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식경제의 발전과 다양한 분야의 한류, 인권 감수성의 강화도 권력 분산의 효과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87체제는 거버넌스 시스템의 부재 또는 약화라고 표현할 수 있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87체제 이전에는 군부 엘리트들이 대한민국 거버넌스 시스템의 정점에 있었다. 그 시스템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또는 얼마나 도덕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그 시스템 자체는 분명 대한민국의 개발연대를 대표했고 거기 상응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87 체제에서는 그런 권력이 존재할 수 없었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일 때 권력이 가장 막강하고 취임 이후에는 사실상 갖가지 제약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의 권력은 국회의 도움 없이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당연히 총선 결과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지만, 군부정권 시대와 달리 대통령이 소속 정당의 공천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수단도 제한적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이런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무리를 한 결과였다. 대통령이 2016년 20대 총선에서 진박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새누리당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 김무성과 유승민 등 당내 차기 주자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그 결과가 총선 패배로 이어졌다. 당내 중진들의 이탈과 총선 패배는 곧바로 정권의 붕괴를 불러왔다.

2016년 4월 13일 20대 총선이 치러진 지 불과 3달 후인 7월 말에 TV조선의 미르/K스포츠재단 보도가 터져나왔고, 9월 20일에 한겨레가 최순실을 국정농단의 주역으로 지목했다. 10월부터 촛불집회가 본격화됐고 탄핵이 정국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20대 총선부터 이듬해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까지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국의 현재 정치체제를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비판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87년 체제는 권력 공유와 분점을 통해 누구도 거버넌스의 정점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데 핵심이 있다. 그 결과는 다양한 이권집단의 발호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떤 정치적 결단도 불가능한 현상 고착화라고 할 수 있다.

6공화국에서 이익집단들은 각자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자기 영역의 전문성을 강조하면서 집단의 이익을 결사옹위한다. ‘우리도 너희 것을 건드리지 않을 테니, 너희도 우리 것을 건드리지 말라’는 얘기다. 대표적인 이익집단이 공무원, 교사, 민노총 등이지만 자격증과 라이센스를 무기로 진입장벽을 구축하는 집단은 모두 이 범주에 포함된다. 이런 이익집단들은 점차 세분화하고 다양화하는 추세이다.

이런 질서는 민주화라는 대의명분 아래 어떤 구조적 변화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여러 이익집단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키우는 것 외에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 설혹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이런 구조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누군가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아무나 쉽게 막을 수 있다.

이런 구조에서 대한민국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할 수 없는 것도 없는’ 기묘한 아노미 상태에 빠져든다. 법치는 형식적으로 유효하지만, 실제로는 무력화한다. 헌법 위에 떼법과 촌법이 있다는 유행어가 그런 현실을 보여준다. 87체제는 이런 구조적 문제로 인해 내구성이 계속 약화돼왔다. 그리고, 87체제 이후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도 계속 커졌다.

안철수로 대표되는 제3지대의 등장도 87체제 약화에 따른 현상이었다. 좌우 동거와 권력 분점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정치적 요구가 커졌고,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제3지대와 중도세력의 근거가 마련됐던 것이다. 안철수가 잇따른 정치적 좌절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감이 급전직하하지 않고, 완만한 우하향 곡선을 그려온 것도 87체제의 특성에서 연유한 현상이다.

87체제는 직선제 개헌을 내세운 좌파의 정치적 승리를 우파가 6.29선언이라는 정치공학으로 저지해낸 결과물이었다. 우파는 노태우 정권을 통해 제도권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정치적 승리자인 좌파에게 명분을 빼앗겼다.

좌파는 그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무기로 제도 권력을 계속 확대해왔다. 3당 합당과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집권이 그런 좌파의 영향력 없이는 설명하기 힘든 현상들이다. 우파 정당 내에서 좌파 성향을 공유하는 정치인들이 ‘개혁파’로 분류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즉, 87체제는 권력 분점과 공유를 전제로 좌우의 동거와 균형을 핵심으로 하는 체제이지만 내부적으로 그 균형이 계속 무너지는 과정을 밟아왔던 것이다. 좌파의 정치적 정당성이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측면에서 관철되는 과정을 통해 권력의 추는 좌파쪽으로 계속 기울어졌다. 그 최종 귀결이자 완성이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의 집권이었다.

문재인의 집권은 87체제의 완성이자 종결이다. 87체제의 속성인 좌우 동거와 권력의 분점, 평화적인 정권교체는 이제 불가능하다. 좌파가 모든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국정 파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지지율이 유지되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대중들에게 문재인 정권은 이제 대한민국 그 자체로 인식된다. 레짐체인지가 완성된 것이다.

87체제는 헌정적으로는 아직 유효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시효가 종결됐다. 최근의 개헌 논의는 87체제의 정치적 종언이라는 정치권의 문제의식이 반영된 결과이다.

거버넌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87체제에서 최소한의 거버넌스 기능을 했던 것이 법률가 집단이었다. 당근을 주기보다 채찍을 휘두르는 것으로 통치 시스템을 유지했던 군부 세력의 퇴장 이후 정권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강제력은 법률적 장치를 통해서만 작동했기 때문이다. 변호사 출신들의 국회 진출이 늘어나고 대통령도 두 사람이나 배출한 것도 그런 현상의 연장이었다.

특히 검찰은 87체제 거버넌스의 핵심이었다. 6공화국의 모든 대통령은 검찰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사실상 통치가 불가능했다. 87체제 들어 끊임없이 검찰개혁이 정치권의 화두로 등장했던 것도 검찰의 이런 기능과 비중을 역설적으로 반증해준다.

포스트 87체제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어떤 것일까? 일단 거버넌스 기능의 회복에 방점이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경기지사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정치적 기대 역시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87체제의 한계를 극복해달라’는 요구의 일환이다. 강력한 리더십을 연상시키는 두 사람의 이미지도 그런 요구의 결과이다.

다만, 윤석열 전 총장은 87체제의 현상유지 요구를 대변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검찰이 87체제 유지에서 핵심 기능을 했다는 점, 윤석열 총장이 그 검찰 경력을 배경으로 정치적 두각을 나타냈다는 사실이 그 점을 보여준다.

이른바 검수완박은 문재인 정권의 정략적 요구가 반영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이라는 명제는 87체제 극복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맥락을 공유한다. 이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윤석열 전 총장은 그런 요구에 대한 저항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현재 국민의힘 등 야권의 정치적 영향력은 문재인 정권의 실정에 따른 반사효과일뿐, 자신들의 고유한 메시지나 콘텐츠 등 정치적 가치에 힘입은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내년 대선에서 야권의 정권 탈환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

이는 냉정하게 현실을 구조적 관점에서 판단한 결과이다. 87체제의 본질과 그 미래를 분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완전히 새로 출발하는 각오 없이는 우파도, 대한민국의 운명도 암울하다는 전망을 내릴 수밖에 없다.

주동식 국민의힘 광주광역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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