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단결권'은 노동조합 결성할 권리가 아닌 단결할 일반적 권리
-근로자가 노조와 관계없이 교섭하는 것이 국제적 추세
-비노조 고용관계는 규범(norm)을 통해 쌍방의 이익을 극대화

남성일 객원 칼럼니스트
남성일 객원 칼럼니스트

최근 몇몇 언론에서 ‘노조파괴’ 또는 ‘노조와해’ 등과 같은 자극적 표현을 사용하며 삼성에 대한 검찰 조사를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국회의원들은 삼성이 노동조합을 부정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단결권을 침해하는 반 헌법적 행위로서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에서 말하는 단결권이란 단결할 일반적 권리를 말하는 것이지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조합은 근로자 단결의 한 형태에 불과할 뿐이다. 즉 노동조합은 선택과목이지 필수과목이 아니라는 말이다. 노동조합 아니라도 근로자가 단결할 형태는 많다. 선진국에서 보편화되어 있는 직원협의회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 삼성에도 노사협의회가 있으며 직원대표는 회사의 간여 없이 직원들의 직접, 비밀선거에 의해서 선출된다. 심지어 근로자는 단결하지 않고 스스로를 대표할 수도 있다. 최근 프랑스의 마크롱개혁은 근로자가 노동조합과 관계없이 개별적으로 회사와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국제적 추세이기도 하다.

앞에서 노조는 선택과목이라 했다. 그러면 왜 어떤 경우에는 노조를 선택하는 반면 어떤 경우에는 노조를 선택하지 않을까? 고용관계는 노동조합을 통한 고용관계와 노동조합을 통하지 않는 비노조 고용관계의 두 가지로 나뉘는데 두 가지 중 어느 것을 택하느냐는 각자가 가지는 편익과 비용에 달려있다.

우선 노조 고용관계의 특징은 고용주와 근로자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교섭력의 차이를 노동조합을 통해 대등하게 하고, 근로조건을 교섭으로 결정해서 단체협약이라는 계약(contract)을 만든다는 점이다. 노조 고용관계는 기본적으로 힘을 고용주와 나누어 갖는 것이다. 따라서 고용주의 일방적 이익을 위한 행동을 견제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노조 고용관계는 비용 또한 크다. 노사간 대립적인 관계가 되면서 임금, 근로시간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미미한 이슈까지도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컨대 구내식당에 조달하는 식량을 어떤 것으로 할 지까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슈들은 끝도 없기 때문에 그만큼 협상비용이 높아진다.

둘째, 노조는 생산성 이상의 임금과 부가급여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업은 이에따라 생산성 제고 또는 비용 절감 방안을 강구한다. 그러면 노조는 이에 대해 또 협상을 요구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작업방식, 하도급, 직무재배치 등으로 협상 주제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된다.

셋째, 기업 경영은 마치 어항처럼 평온한 환경 속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는 것들이라 일일이 계약할 수 없는 사항들이 많다. 그런데도 노동조합은 포괄적으로 경영을 규제하는 조항을 협약에 넣으려 한다. 예컨대 생산모델의 변경 등에 대해 노조의 동의 또는 협의를 얻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의사결정이 지연되어 기업경영이 경직화되고 자연히 비용만 올라가게 된다.

노조 고용관계의 이런 비용은 협상력의 대등화가 가져오는 이익과 비교되어야 한다. 만일 노사간에 회사 형편에 대한 정보의 차이가 별로 없어서 근로조건이 근로자에게 불리할 일이 별로 없다면, 또 근로자의 퇴사 및 전직이 원활하다면, 그리고 경쟁임금과 근로조건이 잘 통용되는 시장조건이라면 협상력의 대등화가 가져올 이익은 별로 없는 반면 불필요한 협상에 따른 비용만 커서 노조 고용관계는 합리성을 잃게 된다.

그렇다면 비노조 고용관계는 어떤 면에서 합리적인가? 비노조 고용관계는 기업내부의 일정한 틀(인적자원관리제도)에 의해서 유지된다. 그럼으로써 노조 고용관계가 빚어내는낭비적 교섭비용이 최소화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노사간 교섭력의 불평등에서 나오는 문제점은 어떻게 할 것인가? 교섭력의 불평등 문제는 다음 두 가지 방식으로 해결된다.

첫째, 자기실현적 구조(self-enforcing mechanism)를 통해서 해결된다. 자기실현적 구조란 어느 일방이 기회주의적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쌍방에게 이득이 되도록 만들어진 구조를 말한다. 예컨대 상용직의 장기고용 보장을 들 수 있다. 이는 직원의 이직을 낮추고 기업특수 인적자본(firm-specific human capital)을 키우게 한다. 기업특수 인적자본이 커질수록 회사의 생산성은 높아지고 근로자의 기업 내 가치는 시장가치보다 높아져 시장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받게 된다. 따라서 기업과 근로자 모두 상호이득을 보게 되며 이 상황을 서로 깨뜨리려고 하지 않는다.

둘째, 평판효과(reputation effect)를 통해서 해결한다. 고용관계는 고용주와 직원 간에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일종의 반복게임과 같은 관계다. 반복게임에서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취하는 행동을 했다가는 나쁜 평판을 얻게 되고 다음에 복수 당하게 된다. 예컨대 고용주가 경영상황이 나쁜 것처럼 알리고 보너스를 주지 않는다면 한 번은 성공할지 모르나 이같은 행태가 반복되면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애착이 떨어지고 근무도 열심히 하지 않게 되어 생산성이 떨어진다. 또한 평판이 나빠져서 좋은 직원을 뽑을 수도 없게 된다. 따라서 노사간 상호작용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고용관계에서는 일방의 기회주의적 행위가 지속될 수 없다.

결국 비노조 고용관계는 계약(contract)같은 강한 구속력은 아니지만 규범(norm)이라는 또 다른 규제로서 쌍방의 이익을 극대화하게 된다. 그리고 규범은 이를 유지하는 거래비용이 매우 작아서 충분히 선택의 합리성을 갖는다.

삼성을 비롯한 글로벌 대기업들은 이같은 자기실현적 구조가 발달되어 있고 평판효과에 민감하다. 한편 다양한 환경에 일일이 계약으로 경영한다는 것은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따라서 경제환경이 세계화된 1980년대 이후로는 노조 고용관계를 버리고 비노조 고용관계로 전환한 기업들이 많다. 그리고 이같은 추세는 정보의 흐름이 더 투명하고 원활해지는 4차산업혁명시대에는 가속화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은 반드시 결성되어야 하며, 회사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경영해야 한다는 20세기 초반의 사고가 아직도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면 나라의 장래를 위해 정말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남성일 객원 칼럼니스트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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