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칼럼]소록도의 천사들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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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8.04.16 09:18:33
  • 최종수정 2018.04.1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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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넘도록 한센인에 헌신한 마리안느·마가렛 수녀
"할머니 천사들"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 이후 재조명
결렬된 평화협상들·文 해프닝에 빛바랜 노벨상 의미 살려야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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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는 “소록도의 천사들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자”는 현수막을 걸고 시민들의 서명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초봄의 쌀쌀한 날씨도 잊고 기차역, 버스 터미널 등에서 빛바랜 흑백사진들을 전시해놓고 오스트리아 출신의 두 수녀들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사진에는 파란 눈을 가진 마리안느 스퇴거(Marianne Stoeger·83) 수녀와 마가렛 피사렉(Margareth Pissarek·82) 수녀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 앳된 처녀 시절의 사진도 있고 할머니가 된 모습도 있다. 이들이 바로 소록도에서 문둥병 또는 나병이라고 불렸던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평생을 봉사한 소록도의 천사들이다.

소록도, 한 맺힌 땅

소록도는 대한민국 전라남도 고흥군에 위치한 4.5km²의 조그마한 섬이다. ‘작은 노루’라는 의미를 가진 ‘소록도’라는 이름만큼이나 평화로운 섬이었지만, 이런 저런 사유로 현대사의 가장 아픈 역사를 간직하게 된 곳이다. 대한제국 시절인 1909년 정부는 소록도에 나환자 전문 요양소인 소록도 자혜의원을 세웠고,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본이 한국을 통치하게 되면서 조선총독부는 나환자들을 격리 수용하는 정책을 채택하여 소록도를 수용 장소로 지정했다. 그때부터 소록도는 버림받은 사람들의 신음과 고통이 메아리치는 한 많은 땅이 되었고, 많은 환자들이 소록도에서 비운의 생을 마감했다.

소록도는 이런 한(恨)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일제시대 일본인 원장이 한센인들을 토목공사에 강제 동원했던 역사와 6.25 전쟁때 북한군이 들어와 병원 직원들과 개신교 목사를 총살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지금도 자혜의원 개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 일제 강점기에 건립되었던 요양소와 부속건물들, 관련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소록도 자료관, 일본인들이 한센병 환자들에게 강제노역을 시켜 1936년에 준공한 소록도중앙공원 등이 보존되어 있다. 수탄장(愁嘆場)이라는 곳도 있다. 이곳은 한센병 환자들과 환자가 아닌 사람들이 지내는 공간을 나눈 경계선으로 50~60년대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한센인들은 자녀를 낳아도 감염 우려 때문에 키울 수 없어 경계 밖으로 보내야 했고, 환자들은 한 달에 한번 이 곳에 와서 자녀들을 볼 수 있었다. 이 기막힌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이 "근심(愁)과 탄식(嘆)의 장소(場)"라고 하여 붙인 이름이 수탄장이었다.

소록도의 천사들, 마리안느 수녀와 마가렛 수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병원 간호학과를 졸업한 마리안느 수녀와 마가렛 수녀는 소록도에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각각 1962과 1966년 꽃다운 나이에 소록도에 들어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병마와 편견에 시달리던 나환자들을 치료해주면서 무보수로 헌신했다. 문둥병자라고 부르면서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는 그들을 만지고 주무르며 사랑으로 치료했다. 맨손으로 피고름을 짜내고 상처를 소독해주며 6,000여 명을 헌신적으로 보살핀 그들이야말로 한센인들의 진정한 어머니였다. 그랬던 두 수녀는 2005년 11월 21일 아무도 몰래 조국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두 수녀는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소록도에 불편을 주는 것이 부담스러워졌고, 그래서 편지 한 통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버렸다. 환자들은 “할머니 천사들이 어디로 갔느냐”며 울부짖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16년 4월 14일 저녁 소록도성당에서 미사가 시작된 직후 은발의 한 외국인 할머니가 살며시 들어와 뒷자리에 앉았다. 82세의 마리안느 수녀였다. 미사가 끝나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이내 성당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소록도병원과 고흥군이 병원개원 100주년 행사에 두 수녀를 초청한 것이었다. 마가렛 수녀는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머무르고 있어 오지 못했다. 11년 만에 소록도를 찾은 마리안느 수녀는 예전과 같은 일주일을 보냈다. 성당 옆 낡은 숙소에서 지내면서 아침저녁으로 묵상을 하고 낮에는 한센인 환자와 의료진을 만났으며, 병동에 누워있는 환자들의 손을 잡았다. 한센인들은 "할매 보고 싶었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영화 포스터
마리안느와 마가렛 영화 포스터

이런 두 수녀들에게 대한민국 정부는 명예국민증을 수여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든 히딩크 감독 이후 두 번째로 외국인에게 준 명예국민증이었다. 한국에 오지 못한 마가렛 수녀의 국민증은 김연준 소록도성당 주임신부가 대신 받았다. 김연준 신부가 대표로 있는 '사단법인 마리안느마가렛'은 두 수녀의 삶을 재조명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2017년에는 「마리안느와 마가렛」 이라는 책도 출판되었다. 영화를 만든 윤세영 감독과 책의 쓴 성기영 작가는 이토록 순수하고 겸손하며 선한 영혼들을 목격한 것은 일생일대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들과 함께 천주교의 관계자들 그리고 고흥군은 두 수녀의 봉사정신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자의 의미에서 ‘마리안느 마가렛 봉사학교’의 건설과 노벨평화상 수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서울의 거리에서 서명운동이 벌어지게 된 연유이다.

빛바랜 노벨 평화상들

소록도가 버려지고 잊혀진 사람들의 섬으로 자리매김되면서 이곳을 찾은 특별 손님도 많았다. 가수 조용필은 2010년 소록도에 와서 무료공연을 펼쳤고, 1984년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에서 가장 소외된 곳’을 찾아 소록도를 방문했으며, 정치인들도 이 섬을 찾아 환자들을 위로했다. 하지만, 잠깐 동안 소록도를 찾아 환자들을 위로했다는 이유로 또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해서 그들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자고 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정치인들에게 수여되는 노벨평화상은 격변하는 안보정세 속에 번번이 빛을 바래곤 했다.

최근 북한의 평화공세로 남북 간에 훈풍이 불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도록 추진하자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청와대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내놓음에 따라 이 움직임은 일부 열성 지지자들이 벌인 해프닝으로 마감되었지만, 앞으로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이 성과를 내게 되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갈 길이 멀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보장이 없는데다가, 설령 핵폐기를 합의하고 합의서에 서명한다고 하더라도 또 한 번의 ‘시간벌기용 기만극’으로 결말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본다면, 지금 불고 있는 평화의 바람을 이유로 노벨평화상을 추진하자는 사람들이 머무르고 있는 정신세계가 어떤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1973년 베트남전쟁을 미감한 파리평화협정을 주도한 공로로 미 대통령 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2년 후 전쟁이 재발하여 베트남은 공산화되었다. 1994년에는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을 주도한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 수상에게 노벨평화상이 주어졌지만, 중동의 평화는 오지 않았다. 2000년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에게 주어진 노벨평화상도 이후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도발로 빛을 바랬다.

소록도의 천사들이 노벨상을 받는다면

하지만, 오로지 봉사의 삶을 살기 위해 20대 젊은 나이에 들어본 적도 가본 적도 없는 나라의 조그마한 섬으로 와서 70대 할머니가 될 때까지 맨손으로 나환자들의 곪은 상처를 어루만졌던 소록도의 천사들에게 노벨평화상이 주어진다면 그 의미는 매우 다를 것이다. 유창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된장찌개를 즐겨 먹었던 두 수녀는 2005년 귀국한 후 한 동안 오스트리아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들은 진정한 한국인들이었고 봉사에 몸을 던진 천사들이었다. 한국 나환자들의 피고름을 짜면서 4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소록도의 마더 테레사였다. 마리안느 수녀와 마가렛 수녀에게 노벨평화상이 주어진다면 그 상이 빛을 바랠 일은 없을 것이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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