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정무수석과 김외숙 인사수석이 지난달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철희 정무수석과 김외숙 인사수석이 지난달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7일 김기표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을 경질했지만, 청와대의 부실 검증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김기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청와대의 인사 검증 시스템 자체가 붕괴되었다는 지적과 함께. 김외숙 인사수석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지고 있다. 김 수석 경질론은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송영길 대표, “54억 대출해 60억 땅 산 사람을 반부패비서관에 임명한 인사시스템 문제”

김 전 비서관의 투기 의혹은 지난 25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고위 공직자 재산등록 현황에서 드러났다. 해당 현황에 따르면 김 전 비서관의 부동산 재산은 91억2000만원, 금융채무는 56억2000만원 규모였다. 그가 소유한 부동산 자산 중엔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 일대 등 개발 호재가 있는 곳도 적지 않았다. 시세 차익을 위해 무리한 금융권 대출을 통해 부동산을 매입한 정황이 뚜렷하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조차도 지난 28일 “서민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제한 때문에 집을 사고 싶어도 금융권 대출이 안 돼서 쩔쩔매고 있는데, 54억 원을 대출해서 60억 원대 땅을 사는 사람을 반부패비서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너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것”이라면서 “청와대 인사 시스템을 돌이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지난 28일 대구에서 열린 당 행사에서 김기표 전 비서관 경질에 “만시지탄이지만 신속하게 처리했다”면서도 “왜 이런 사안이 잘 검증되지 않고 임명됐는지 청와대 인사 시스템을 돌이켜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지난 28일 대구에서 열린 당 행사에서 김기표 전 비서관 경질에 “만시지탄이지만 신속하게 처리했다”면서도 “왜 이런 사안이 잘 검증되지 않고 임명됐는지 청와대 인사 시스템을 돌이켜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사진=연합뉴스]

김기표 비서관 임명 당시 ’투기 사실‘ 알았지만 청와대는 “문제 없다” 판단

지난 3월 김 비서관을 임명할 때부터 이런 사실을 알았지만, 청와대는 “문제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관측된다.

김 전 비서관의 재산 현황이 공개되고 여론이 악회된 뒤에야 경질이 불가피하다고 결론을 냈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내로남불’ 논란이 다시 불거지면 국정운영과 내년 대선에 부담이 된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결격사유를 파악하고도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청와대의 태도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게다가 결격사유를 발견하지 못한 데 대해서도 “검증의 한계”라고 발뺌하는 태도에서 ‘인사 검증 시스템’이 붕괴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청와대는 김 전 비서관이 송정동 필지 일부를 재산신고에서 누락한 데 대해서도 “청와대가 확인할 수 있는 수준에 있지 않았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김 수석 책임론에 대해서도 “개인의 책임보다 검증 시스템의 문제가 크다”며 선을 그었다.

이런 청와대의 태도에 대해 야당에서는 “청와대가 부실 검증에 대한 반성이나 개선보다 당장의 여론 악화를 모면하려는 꼬리 자르기로 끝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김 수석은 버티고 있다. 집권 말기 힘의 균형추가 여당 쪽으로 기울고 있는 상황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청와대의 의지로도 풀이되지만, 기본적으로 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인사검증 실패로 민정수석은 4번 갈렸지만 문 대통령의 ‘부산 동지’인 김 수석은 건재

문 대통령은 자신이 점찍은 사람은 어떤 논란이 있어도 끝까지 끌고가는 식의 인사를 선호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수석은 문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법무법인 ‘부산’에서 함께 근무하며 오랜 선후배 관계로 지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법제처장에 임명됐던 김 수석이 인사수석으로 임명된 것은 2019년 5월이다.

인사수석과 함께 임사검증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은 그 이후 네 번이나 교체됐다. 조국·김조원·김종호·신현수·김진국 수석이 김 수석과 함께 청와대 인사검증을 담당했다. 부실 검증과 검찰 문제 등으로 민정수석이 네 번이나 교체된 2년 동안 김 수석의 입지는 더 탄탄해졌다.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소유한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 토지 모습. 김 비서관은 지난 27일 부동산 투기 논란에 휩싸여 사퇴했다. [사진=연합뉴스]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소유한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 토지 모습. 김 비서관은 지난 27일 부동산 투기 논란에 휩싸여 사퇴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김 수석 재임 기간에 인사 문제는 최악의 상태에 놓였다. 조국·추미애·박범계 법무부 장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용구 법무부 차관 등은 자녀 관련 의혹이나 폭행·막말, 논문 표절 의혹 등으로 논란이 됐다. 2년간 야당 동의 없이 임명한 장관급 인사만 최근의 김오수 검찰총장까지 33명에 달한다. 여권 내에서도 책임론이 제기됐지만 청와대 주변에선 “김 수석이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할 것이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애초 인사 분야 경험도 없이 인사수석이 됐고, 각종 인사 검증 논란에도 이렇게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것 자체가 대통령의 신뢰와 애정이 각별하다는 의미”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자신을 롤 모델 삼아 자신과 함께 부산에서 인권변호사 활동을 했던 김 수석에게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김 수석은 인사 교류 폭이 좁지만, 문 대통령 의중은 잘 헤아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김 수석은 청와대 회의 시간에도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조용한 스타일”이라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참모를 아끼는 문 대통령과 잘 맞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과 가장 오랜 기간 보필한 참모인 만큼, 누구보다 대통령의 성향과 의중을 잘 파악한다는 평가가 있다”고 덧붙였다.

바로 그 점이 청와대 인사가 계속 꼬이게 된 근본 이유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입이 무거운 김 수석이 ‘인사 보안’은 잘 유지하는 편”이라고 평가했다. 연이어 “그러나 교류의 폭이 좁고, 대통령 의중을 고려해 제한된 범위에서 인선을 하다 보니, 인사를 그르치게 된 것이다”고 비판했다.

김 수석은 작년 8월 ‘청와대 참모 다주택’ 논란 당시 노영민 비서실장 등 고위 참모 5명과 함께 사의를 표한 적이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노 전 실장과 김 수석은 유임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임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무엇보다도 민주당 내에서 여러 차례의 인사 논란과 달리 이번에는 ‘김외숙 인사수석’을 콕 집어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부동산 관련 내로남불 논란에 그만큼 예민한 상황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검증 시스템의 문제’라고 답하며, 인사수석 책임론에는 선을 긋고 있어, 인사수석 거취를 두고 당정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김기표 전 비서관의 경질에 그쳐서는 안 되고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과 정부 장‧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에 대한 감사원의 부동산 전수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수석부대변인은 “청와대가 인사 검증과정에서 투기 의혹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무능이고, 알고도 임명을 강행한 것이라면 국민 기만”이라면서 ’부동산 전수조사‘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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