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희 교사
조윤희 교사

한 자리에서 늘 한결 같은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란 어쩜 쉬운 일일수도 있고 간혹은 어려운 일일수도 있다.

교사가 되는 것은 세상의 흐름을 붙잡아 작은 교실 안에 풀어놓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비온뒤 죽순처럼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 때로 외풍을 막아주는 일이기도 하고 험한 세상을 향해 나갈 아이들에게 백신을 맞춰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다만 그것을 의무적으로 할 것인가 즐기면서 할 것인가의 차이가 있을 뿐.

‘삐리링’ 문자가 도착했다.

‘선생님. 저 성민이에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만난 지 한 4년은 된 것 같은 제자의 문자가 오랜만에 도착해 있었다.
‘오랫 만이구나. 그 동안 어찌 지냈니?’

‘선생님, 저 그새 취직도 했고 벌써 3년차 직장인입니다. 선생님, 연말에 집(부산)에 가려고 하는데 제가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그래도 밥은 선생님이 사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극구 본인이 대접하겠노라는 고집을 꺽지 않아 마지못해 근사한 밥을 얻어먹었다. 첫 숟갈부터 배가 부른 식사는 밀린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근 한 시간 가량이나 이어졌고,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게 찻집으로까지 이어져 서너시간이 지나서야 자리를 파했다.

고등학교 1학년.
성민이는 반에서 공부를 잘하는 편인 무던히도 평범한 아이였다. 대부분의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그렇듯 머지않아 있을 문이과 계열 선택을 앞두고 있었다. 보통 국어, 영어, 사회과 등의 점수가 높고 흥미를 보이는 아이들은 자신의 계열선택이 인문 쪽이라는 데 별 고민을 하지 않는다. 수학, 과학 등에 흥미를 보이거나 잘하는 아이들 역시 본인이 자연계열 쪽이라는 의심 없이 계열 선택을 하고 별다른 후회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성민이 같은 아이들이었다. 전 과목을 두루 잘하는 편인 아이. 특출 나게 잘 하는 것도 또 못하는 것도 없어서 뭘 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딱히 자신의 적성이 어느 쪽인지 쉽게 판단이 되지 않는 아이들이 고민이었다. 그러니 필자가 고1 학생들의 담임을 맡을 때면 늘 눈과 귀가 바빠지곤 했다. 아이들에게 너무 중요한 진로 선택의 첫 단추를 끼워야 하는 학년이니 만큼 1학년 담임은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해야하는 것이다. 정작 당사자들이 파악하기는 어려워도 제 3자가 관찰하다 보면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정도의 단서를 발견 할 수 있는 탓이다. 대체로 6월이 오기 전에 교과서 주문을 해야 하므로 4~5월부터 아이들의 계열 선택에 대해 어느 정도 윤곽을 잡고 있어야 했다. 교사들이 부지런히 상담을 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성민이는 반에서 3~4등 정도였고 전 교과의 점수가 85 점 내외로 특별히 어느 쪽 성향이 두드러지지 않는 점수 분포를 보이고 있었다. 두 차례 면담을 해도 본인은 모르겠다고 했다. 결국 아이에게 ‘숙제’를 냈다.

“성민아, 너는 지금부터 학교 오갈 때, TV볼 때, 뉴스 볼 때, 신문 볼 때 관심 가는 직업이 있는지 유심히 봐야 한다. 너랑 맞을 것 같은 직업, 눈길을 끌고 흥미로운 직업 뭐든. 다시 상담 할 때 말해 주여야 한다. 1주일이다! 알겠지?”

1주일의 시간을 줘도 답은 ‘모르겠다’ 였고, 두 번을 더 내준 숙제에도 답을 내놓지 못했다.

4주차 되는 날 정색을 하고 물었더니 마지 못해 답을 했다.

“공대 갈래요. 이과 가겠습니다.”
“네 생각이냐? 부모님 생각이냐?”

“아무래도 취직을 잘 하려면 공대가 좋으니 이과 가라고 부모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러나 필자가 관찰한 바로는 아니었다. 물론 교과목은 고르게 전 교과에서 비슷한 성취도를 보였지만 수업시간에 보이는 흥미도나 질문에 대한 답변이나 무엇을 더 잘하나 등 관찰한 결과로는 인문계열 적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이는 아이였다.
“네가 이과를 가고 싶은 진짜 이유를 말해봐!”

내심 ‘친구 따라 강남’ 부류일수도 있겠다 싶어 질문을 했으나 뜻밖의 답변을 들었다.
“선생님,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나요?”

“그럼. 당연하지.”

“저기...문과가면 한문 해야 하고 이과가면 한문 안 외워도 된다 길래 이과 가려고 그랬어요.”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갔고, 결국 꿀밤 한 대를 선물로 받은 후 계열선택은 문과로 결정했다. 쾅!쾅!쾅!

문과로 계열을 결정하고 자신의 선택이 적절했다는 확신을 갖게 되자 반에서도 3~4등을 하던 아이는 계열 전체 성적이 2~3등으로 뛰어올랐다.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부터는 계열 1등을 차지했고 대학수능시험을 칠 때까지도 거의 그 성적을 유지해 나갔다.

수시에서 서강대 경영학과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지원한 결과 서강대 경영학과에 합격하였다.

오늘도 내내 그 이야기였다. 그때 선생님이 저 안 말려 주셨으면? 지금쯤 공대 갔다가 다시 수능 친다고 학교를 기웃거렸을지도 모르고, 꾸역꾸역 그냥 공대를 다닌 후 졸업을 해서도 한숨만 푹푹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4년쯤 전 졸업을 앞둘 무렵에 찾아왔을 때는 학부 성적이 좋아 학점이 좋은 학생에게 준다는 미국 어디 기업의 장학금을 받고 있노라는 이야기를 해서 날 기쁘게 하더니 이번엔 취업도 그렇게 무난히 잘 해서 벌써 직정 생활 3년차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금융 전문 기관.

필자는 사실 잘 들어본 적 없는 기관이었지만 본인은 만족하고 있었고, 제법 직장인의 티가 나고 있었다. 직장생활의 에피소드들이 쏟아져 나왔고 연애담도 나왔고 이어서 지금 고민 중인 이야기에 이르렀다. 직장생할을 하며 피아노도 배워보고 테니스도 배워보고 수영도 배워보고 중국어도 배웠는데 놀이처럼 하던 취미활동은 다 접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중국어더라는. 자신이 가만히 보니 멈추지 않고 하고 있는 것은 ‘공부’더라는 이야기였다.
안정되게 직장생활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막연히 승진만을 목표로 삼기엔 좀 허전한 것도 같고 공허한 것도 같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제법 자신의 생활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직장인의 고뇌가 느껴졌다. 이런 저런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며 공부를 좀 더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조언이 이어졌다. 유학을 간다면 미국이나 영국 혹은 독일 쪽이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현재 중국어 HSK 4급을 따놓은 상태라 6급까지 도전할 생각이며 유학은 중국 쪽 대학으로 갈까도 생각한다기에, 외국어는 도구일 뿐이니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서 어느 나라를 갈 것인지는 좀 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금융결제원이면 핀테크, 블록체인도 다루느냐고 묻자 선생님께서 그런 것도 아시냐며 놀라는 눈치였다. 명색이 고등학교 사회선생인데!

세상 바삐 돌아가는 이야기를 전문가만큼이야 알 수 없다 해도 뭐가 뭔지 정도는 알아야 하고 아이들이 질문하지 않아도 교사는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나이가 많아져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지금도 공부하는 교사의 제자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화제는 가상화폐에 이어 자연스레 유학으로 이어져 해외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가 결혼을 하고 유학을 가는 것이 나으냐, 유학 다녀와 결혼을 하는 것이 나으냐 배우자는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겠느냐 등등. 도무지 끝도 없이 이어지던 대화는 적당히 마무리해야 했다.

아이의 어머니와 상담을 한 기억도 떠올랐다. 대개 아이들과 상담을 하면서 부모님과의 상담을 겸하기도 하는데 성민이의 경우는 당시 아이가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었기 때문에 어머니와의 상담이 필요했었다. 어머니도 만나 상담했었느냐고 새삼 놀라고!

고1, 2. 이태동안 담임을 할 때 있었던 일들도 이야기했는데, 3년 동안 말 안하고 자습 도망을 딱 한번 갔는데 도망을 밥 먹듯 하던 친구들보다 더 엄하게 야단을 맞아 그 당시에 야속하고 억울했었노라는 이야기. 그리고 공부할 때 장기 계획, 중기 계획, 단기 계획을 나누어 적고 날마다 그날치의 계획을 세우고 점검하라고 일러준 덕에 지금도 그런 것들이 습관이 되어 체계적으로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입학해 ‘스터디플래너’를 쓰도록 시키고 꼭 점검해 주었던 것을 말하는듯 했다) 등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이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야기 중간에도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했다. 벌써 사회생활이 몸에 익은 것이냐며 큰 소리로 웃기도 했지만, 이미 필자의 머릿속에는 주변에 그리고 또 다른 제자들 중 이 아이에게 소개해 주고 만나보면 선택에 도움이 될 인물들이 누가 있을지 부지런히 스캔이 진행 중 이었다. 조만간 서울을 가면 함께 만나 자문과 도움을 구해보라는 이야기와 함께 대화를 종결지었다.
2009년에 졸업했으니 근 10년이 되어 가지만 엊그제 헤어진 듯 궁금한 것, 상의할 이야기가 오갔고 또 서울부산 가릴 것 없이 연락처를 건네주었다.

또 이야기 할 것 있으면 언제고 또 이야기 하자는 말과 함께.

아이는 헤어지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 진짜 A/S 확실하시네요. 선생님께서 졸업할 때 내 A/S는 유효기간 없이 평생이다! 그러셨거든요.”
오늘은 교직경력 약 20년경 때의 A/S를 하고 돌아왔지만 이 A/S는 아마 교단을 내려와서도 계속되지 싶다. 평생 A/S가 이루지는 곳, 유효기간 없는 A/S의 장(場) 이야기는 아마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5년 차, 10년차, 며칠 전에 헤어진 28년차 아이의 A/S 까지!
성민이, 준형이, 성현이, 원중이...그리고 도띵이.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도 없는 A/S의 기록들이 빼곡하다. 학교가 삭막하고 교단이 무너져 내린다는 세간의 비명 사이로 따뜻한 ‘A/S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놓아볼까 싶다. 이제 시작이다.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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