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불거져 나온 국가보안법 폐지론의 배경은?

여당에서 다시금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동안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진 경우가 여러 번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 국가보안법 적용과 관련한 구체적 사건이 문제된 바 없는데, 여당에서 급작스럽게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나선 것도 그렇고, 대선을 1년도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서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는 쟁점을 부각시키는 것도 그렇다.

아마도 10년 전의 국가보안법 존폐 논쟁을 기억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북한이 남한 통일혁명론을 버렸다는 말만 믿고 국가보안법 존폐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기이한 현상으로 보일 수 있다. 북핵 문제만 해도, 비핵화를 약속해 놓고 그 대가로 우리 정부가 대북 경수로 지원 등으로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이게 하면서 뒷전에서 몰래 핵개발을 했던 북한이 아니던가?

국가보안법이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의 상징처럼 된 것은 1991년 반공법이 폐지되고, 그 일부 내용이 국가보안법에 흡수되면서부터였다. 당시 동구권의 변화를 계기로 냉전이 종식되고, 동구권 공산국가들과 수교를 맺는 과정에서 반공법의 존재가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에 반공법을 폐지했다.

하지만 북한과의 적대적 갈등이 극복되지 못한 상황에서는 과거 반공법에 있던 조항들의 일부를 존치시켜야 할 필요성이 인정되었다. 그로 인해 반공법의 내용 중에서 반국가단체에 관한 조항들 및 (반국가단체로의) 잠입, 탈출, 찬양, 고무 등에 관한 조항 등이 국가보안법에 추가된 것이다.

이러한 조항들이 주로 북한과 왕래 또는 연락하면서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이었고, 군사독재시절 국가보안법을 악용하여 민주화운동가를 간첩으로 몰았던 점도 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 국가보안법은 많이 달라졌다. 민주화된 국회에서 개정한 것도 있고,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의해 무효화된 부분도 있다.

즉, 국가보안법의 오남용의 가능성은 더 이상 크지 않은 반면에,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되었기 때문에 민주화 이후의 국가보안법 존폐 논쟁에서도 결국 존치시키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이런 점을 모르지 않을 여당에서 왜 이 시점에 국가보안법 존폐논쟁을 다시 들고 나왔을까? 그것도 북한에서 남한 통일혁명론을 포기했다는 말만을 믿고? 북한이 노동당 규약을 변경하여 통일혁명을 뒷전으로 돌린 의도보다도, 그것을 근거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여당의 의도가 더욱 의심스럽지 않은가?

간첩수사 결과를 보도한 대한뉴스 1926호(사진=KTV, 편집=조주형 기자)
간첩수사 결과를 보도한 대한뉴스 1926호(사진=KTV, 편집=조주형 기자)

과거 국가보안법 폐지론이 국민을 설득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10년 동안 국가보안법 존폐가 심각하게 논의된 적은 없었다. 2003~2004년 당시에 한동안 논란이 있었고, 2011년 전후로도 뜨거운 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찬반이 팽팽하던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존치로 결론이 내려진 이유는 무엇이며, 어떠한 설득력이 있었기에 지난 10년 동안 잠잠할 수 있었을까?

과거 군사독재를 지탱했던 가장 중요한 지지기반의 하나가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는 안보논리였으며, 이를 오남용하여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이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오남용된 안보논리가 잘못된 것이었다고 해서, 국가안보의 중요성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국가보안법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보안법이 과거에 오남용된 적이 있었다고 해서 국가보안법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극단적인 주장일 뿐이다. 어떤 선진 민주국가도 국가안보를 소홀히 하지 않으며, 이를 위해 민주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각종 법률들을 두고 있다. 미국에서도 종래 리코법(RICO: Racketeer Influenced and Corrupt Organizations Act)이 있었지만, 9.11 테러 이후에 애국법(Patriot Act)을 제정해 국가안보를 더욱 강화했던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면 대한민국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대체입법 없이 국가안보를 공백상태로 두자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 자체가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이적행위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 대체입법을 만든다면,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던 조항들이 가칭 ‘국가안보법’으로 간판을 바꿔 단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무엇인가? 

과거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받아 옥고를 치른 사람들에게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 자체가 치 떨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엄청난 시간과 비용, 국민적 논란을 거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다른 이름으로 국가안보에 관한 법률을 새로 만들어야 할 설득력 있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래도 북한이 달라졌으니, 이제는 우리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과연 북한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되묻고 싶다. 거짓말하면서 몰래 개발한 핵무기를 내세워 핵보유국 대우를 주장하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도 없는 북한이 뭐가 어떻게 달라졌다는 것인가?

아직도 북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레닌의 말을 인용하겠다. “신뢰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통제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북한의 말을 신뢰하기보다는 북한을 제대로 통제하는 것이 우선이다. 북한을 믿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게 될 경우, 주된 피해자는 바로 국민들이 될 것인데,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 10만 국회 국민청원 돌입 선포 기자회견에서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2021.5.10(사진=연합뉴스)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 10만 국회 국민청원 돌입 선포 기자회견에서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2021.5.10(사진=연합뉴스)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10년 전의 국가보안법 존폐 논쟁 당시와 비교할 때, 2021년 현재의 상황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신뢰성이 크게 떨어지는 북한의 일방적인 제스쳐는 접어두고, 대한민국의 안보상황이나 정치상황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점검해 보자. 가장 먼저 검토해야 할 것은 국민들의 안보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과연 국민들은 과거와 달리 이제는 더 이상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가?

지난 4년 동안의 정부와 여당의 태도를 보면, 여권 핵심부에서는 정말로 북한의 위협이 이제는 사라졌고, 북한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논거가 참으로 빈약하다. 김정은을 믿을만한 사람, 선한 사람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북한 정부 및 노동당의 발표를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북한에게 당했던 과거 역사를 모두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다수 국민들은 정부와 여당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초기 남북한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면서 남북한 관계의 획기적 변화, 심지어 통일에 대한 기대까지도 부풀었다. 하지만 그 후의 결과는 무엇인가? 북한의 태도를 객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북한이 남한과의 교류⋅협력, 나아가 통일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할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오히려 기회만 주어진다면 또 다른 형태의 공격이나 도발이 자행될 수 있다고 본다.

북핵위기 등이 극복되지 않았고, 북한의 서울 불바다 위협이 기억에 생생한데,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보다도 비현실적이다.

결국 국민의식보다는 정치적 여건의 변화, 특히 여당이 국회 내에서 압도적인 다수의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하기만 하면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 폐지는 언제라도 단독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가장 중요한 배경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자. 과연 과반을 넘는 절대다수의석을 차지한 정당은 어떤 입법이던, 어떤 정책이던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양당제 국가인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 어느 한쪽은 과반을 차지하는 절대다수일 수밖에 없는데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미국에서는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이 다수당인 경우도 적지 않았고, 더욱이 의원내각제 국가인 영국에서는 다수당이 의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내각까지 지배하는 구조인데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여당이 다수 의석의 힘을 앞세워 야당을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입법을 강행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본질, 즉 대화와 타협의 정치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를 무시하고 다수의 횡포를 계속할 때에는 차기 선거에서 필패한다는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국내 학계에서 다수제 민주주의를 합의제 민주주의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 제10차 개헌은 분권과 협치를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진정한 민주정치는 오만과 독선이 아니라, 관용과 타협을 통해 성장한다. 보수 궤멸을 주장하고 20년 집권을 자신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해 낮은 자세로 임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기본인 것이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의 국가보안법 폐지 카드.2021.06.16(출처=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사진편집=조주형 기자)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의 국가보안법 폐지 카드.2021.06.16(출처=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국가보안법 폐지를 거대 여당의 힘으로 밀어붙일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까?

여당의 의석수만 생각하면,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행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180석이면 -헌법개정을 비롯한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든 의안을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북전단금지법, 5.18비판금지법, 공수처법개정 등에 이어서 야당 패싱이 발생할 가능성도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존폐 논쟁에서 충분히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심지어 국민들의 다수가 반대하는 상태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경우에는 후폭풍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미 거대 여당의 입법폭주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은데, 합리적인 설득 없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행하면,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이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국민들이 거리로 나올 것인지, 아니면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거리에 나오는 것을 자제하고 내년 대선을 기다릴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여당에게 좋은 상황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야당에게 딱히 유리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수십 년 독재를 경험했던 우리 국민은 하나의 정당이 장기집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진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가리켜 각기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재 국민들은 보수와 진보를 모두 불신하고 있다. 그 결과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많아진 상황이다.

앞으로 정치권은 긴장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요구는 과거 안철수 신드롬으로 나타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의 선출을 통해서도 재확인되었다. 이러한 국민들의 요구를 경시할 경우에는 과거 태극기 세력의 시위에 시야를 가려 다수 국민들의 요구를 간과했던 자유한국당의 전철을 이번에는 강성 친문들의 요구에 휘둘리는 더불어민주당이 밟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선을 앞두고 여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꺼내든 이유에 대해 한 가지 우려를 이야기한다. 북한을 핑계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하는 것이 사실은 대선을 앞두고 다시금 보수와 진보의 남남갈등을 조장하려는 것은 아닐까? 최근 각종 정책실패 등으로 인해 나타나고 있는 진보계층의 이탈을 막고, 결집을 강화하려는 의도는 아닐까? 나아가 국가보안법 논쟁 속에서 부동산정책 등 정부-여당의 경제정책 실패를 물타기 하려는 의도는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그런 의도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국민들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1960년 4.19혁명을 성공시켰고, 1987년 6월 혁명을 통해 독재의 종식을 가져온 뛰어난 국민들이다. 2016년 촛불시위는 평화와 질서의 시민의식을 전세계에 과시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당신들의 작품이라 생각하는가?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현명하다. 개인으로서의 국민은 약하고 어리석을 수 있지만, 집단지성으로서의 국민은 정치권 전체보다도 강하고 현명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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