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회고록'은 되고 '암살자들'은 안되나...김정남 암살 다룬 영화 외면, ‘김정은 눈치보기’ 논란 가열
'김일성회고록'은 되고 '암살자들'은 안되나...김정남 암살 다룬 영화 외면, ‘김정은 눈치보기’ 논란 가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암살자들'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이복형 김정남이 피살당한 사건을 재구성해 암살의 실체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이 영화를 예술영화로 인정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암살자들 포스터/사진=왓챠·더쿱]
'암살자들'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이복형 김정남이 피살당한 사건을 재구성해 암살의 실체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이 영화를 예술영화로 인정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암살자들 포스터/사진=왓챠·더쿱]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암살된 김정남 사건을 다룬 다큐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김정은 눈치보기’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6월 개봉 예정이던 <암살자들>이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 심사에서 인정받지 못해 개봉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예술영화로 인정을 받지 못할 경우 다큐멘터리 영화는 상영관을 잡기 어려운 실정이다.

영진위가 예술영화로 불인정한 사유 밝혀야...다큐멘터리는 예술영화의 대표적 장르

더욱이 독립 다큐멘터리는 예술영화의 대표적 장르로 꼽힌다. 북한 김정은 권위주의 체제의 잔혹한 범죄의혹을 여실히 드러내는 <암살자들>을 예술영화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김정은 눈치보기’ 태도가 영화진흥위원회까지 전염됐다는 지적이 영화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공동배급사인 ㈜더쿱 ㈜왓챠 그리고 제공사 kth는 6월 중순 개봉을 앞두고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예술영화인정 심사에 작품을 제출했다. 그런데 지난달 17일 영진위는 이 작품에 대한 ‘예술영화 불인정’을 통보했다. 이에 배급사와 제공사는 영진위 측에 “명확한 심사기준 및 불인정 사유의 고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아울러 지난 1일 재심사 신청을 완료한 상태이다. 영진위의 판단에 이의가 있을 경우 통지일로부터 30일 이내 1회에 한해 재심사 신청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영진위는 암살자를 예술영화로 볼 수 없다는 기존 판단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재심사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지난해 미국서 소규모 개봉한 <암살자들>, <기생충>보다 관객 평가 높아

<암살자들>은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이복형 김정남이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두 여성에 의해 피살당한 사건을 재구성해 암살의 실체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라이언 화이트 감독의 네번째 영화로 주목받았다. 화이트 감독은 2014년 제30회 선댄스영화제에서 ‘더 케이스 어게인스트 8’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암살자들>은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소규모로 개봉해,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98%, 팝콘지수 92%를 획득했다.

‘로튼토마토’는 1998년 미국의 여러 영화 평론가들의 평가를 모아놓은 사이트로 출발했다. 사이트 이름의 뜻은 '썩은 토마토'이다. 공연을 보던 관객들이 작품성이 나쁜 연극을 향해 토마토를 던졌던 것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로튼토마토 지수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신선도지수와 팝콘지수이다. 신선도지수가 높으면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리뷰한 평론가가 많을수록 더 신뢰할 수 있다. 팝콘지수는 관객들의 평가를 나타내며, 팝콘지수가 높을수록 관객들의 호응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신선도지수는 98이고, 팝콘지수는 90이다. <암살자들>의 신선도지수는 <기생충>과 동일하고, 팝콘지수는 <암살자들>이 오히려 2 정도 높게 나타난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지수 98, 팝콘지수 90을 받았다. [사진=로튼토마토 캡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지수 98, 팝콘지수 90을 받았다. [사진=로튼토마토 캡처]

미 평론가들이 격찬한 <암살자들>을 영진위가 외면한 까닭에 세간의 관심 쏠려

로튼토마토에서 <암살자들>을 평가한 평론가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은의 형을 죽이기 위해 속인 여성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들은 것보다 더 터무니없고, 슬프고, 감동적이다. 할리우드 스릴러물 소재이다” “마치 인스타그램 세대를 위한 스릴러 소설 같다. 단지 진짜라는” 등의 평가를 볼 수 있다.

라이언 화이트 감독의 ‘암살자들’은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지수 98, 팝콘지수 92를 받았다. [사진=로튼토마토 캡처]
라이언 화이트 감독의 ‘암살자들’은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지수 98, 팝콘지수 92를 받았다. [사진=로튼토마토 캡처]

이처럼 작품성과 상업성을 인정받은 다큐영화에 대해서 영진위가 내린 ‘예술영화 불인정’을 두고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예술영화로 인정받을 경우 예술영화쿼터가 적용되고, 지원 혜택 등을 받을 수도 있는 데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료가 할인되는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영진위의 예술영화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에서 해당 영화를 상영하기 어렵다. 그럴 경우 일반 극장에서 상영해야 한다. 상영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대중적인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극장에서는 해외 블록버스터나 국내 기대작을 우선시한다. 따라서 우선 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어 상영관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암살자들> 배급 및 제공 맡은 3사, “영진위의 예술영화 심사기준 4가지에 모두 부합” 주장

영진위 예술영화 규정에 따른 심사기준의 핵심은 4가지다. ▲작품의 영화 미학적 가치가 뛰어난 국내외 작가영화 ▲소재, 주제, 표현방법 등에 있어 기존 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특색을 보이는 창의적, 실험적인 작품 ▲국내에서 거의 상영된 바 없는 개인, 집단, 사회, 국가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문화간 지속적 교류, 생각의 자유로운 유통, 문화 다양성의 확대에 기여하는 작품 ▲예술적 관점,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가치가 있는 재개봉 작품 등이다. 다만, 스크린수를 규정 이상으로 확보한 영화나 특정 멀티플렉스에서 독점 개봉한 영화 등은 제외된다.

‘암살자들’ 배급-제작사 측이 공개한 영진위 예술영화 불인정 통지서 ⓒ kth
‘암살자들’ 배급-제작사 측이 공개한 영진위 예술영화 불인정 통지서 ⓒ kth

배급과 제공을 맡은 3사는 <암살자들>이 위 기준에 부합하는 영화라는 입장이다. “독립예술영화 대표장르인 다큐멘터리 세계 유수 영화제 초청 등 위 심사기준의 4가지 사항에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또한 수입/배급을 결정하면서부터 예술영화관 개봉을 기획했고, 그에 부합하는 P&A비를 투입해 소규모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자타공인 예술영화”라고 설명했다.

배급과 제공을 맡은 3사의 주장은 ‘김정은 암살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암살에 연루된 두 여성의 관점에서 제작된 영화라는 것이다. 이들 3사의 입장은 “단순한 유튜브 몰래카메라 촬영으로 착각하고 살인을 저지른 두 여성들의 실제 증언 과정과 살인의 결과가 불러온 국제적인 문제를 비추며, 결국 인권이라는 본연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들 3사는 “국내에서 거의 상영된 바 없는 ‘북한’을 소재로 다루는 개인, 집단, 사회, 국가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문화간 지속적 교류, 생각의 자유로운 유통, 문화 다양성의 확대에 기여하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영화계 관계자들, “북한 최고 존엄인 김정은 관련된 영화라 예술영화 인정 못 받은 듯”

영화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북한 최고 존엄인 김정은이 관련되어 있는 영화라는 점이 영진위의 구미에 맞지 않았을 것이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마디로 영진위와 정부 당국이 ‘김정은 눈치를 보느라 예술영화로 인정을 해 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정은이 가장 싫어하는 소재를 다룬 <암살자들>을 예술영화로 지원해 줄 리가 없다는 것이 영화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영화사 관계자인 A씨는 “김정은이 소재일 뿐만 아니라, 주요 등장인물로 나온다. 그러니 이 영화를 인정해 줄 리가 없다”면서 “2014년에 김정은의 암살을 다룬 영화 ‘인터뷰’가 소니픽처스에 의해 제작됐는데, 북한 해커들이 해킹을 해는 바람에 아예 개봉이 안 된 적도 있다”고 밝혔다. 그만큼 김정은을 다룬 영화에 예민하다는 반증이다.

남한에 갇힌 북한 주부 다룬 ‘그림자꽃’은 예술영화 지원받아...기준은 단 하나 ‘김정은 눈치보기’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지난 8일 “국민들은 ‘김일성 회고록’ 출간은 허용되고, 영화 <암살자들>은 왜 안 되는지 알고 싶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태 의원은 영진위의 심사 기준과 김일성 회고록을 허용하는 출판물윤리위원회의 심사 과정을 보면서 두 과정을 비교해보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태 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김일성 회고록’ 인쇄물은 통일부로부터 반입 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출판물 진흥법과 대통령령에 따라서 명백히 유해물 심사 대상인데, 출판물윤리위원회는 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위법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영진위가 예술영화로 지원한 영화 중에서 ‘그림자꽃’이라는 영화가 있다. 탈북 브로커에 속아서 억지로 남한에 갇혀 있는 북한 주부의 얘기가 주 내용이다. 북한에서 탈북을 막기 위해 상영될 법한 영화가 한국 영진위의 지원을 받는 게 현실이다.

유해물 심사 대상인 ‘김일성 회고록’은 출간되는 반면, 선댄스 영화제에 초청받은 예술 작품인 <암살자들>은 예술영화로 불허하는 기준은 ‘김정은 눈치보기’라는 지적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