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의원
여명 객원 칼럼니스트

요즘 들어 특히, 정치라는 영역에서의 ‘예측’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시장직 사퇴 이후 지난 10여 년간의 모든 선거에서 고배를 마시며 작년 총선에서는 고민정 의원에게마저 패한 오세훈 시장이었다. 그러나 ‘단 3명으로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치렀다’ 한탄이 나올 정도의 열악한 캠프로 서울시장 본선에 뛰어든 오세훈 시장은 서울의 ‘단 3개 동’에서만 근소하게 졌을 뿐 모든 구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압승하며 국민의힘에게 2016년 탄핵 이후 첫 승리의 기쁨을 안겨줬다. 출구조사 발표 당시의 오세훈 시장의 표정은 그를 좋아하지 않던 사람에게조차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본 것 같다’ 는 먹먹한 감동을 안겨줬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시민들의 집권여당에 대한 집적된 분노가 ‘고위공무원 LH 투기’ 논란을 매개로 분출한 사건이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수치는 영원히 보수정당을 찍지 않을 것 같던 20대 여성이 44%나 오세훈 시장에게 투표했다는 사실이다. (박영선 득표율 40%) 그렇기에 선거 직후 최근 2년간 하태경 의원과 함께 국군장병 처우 문제, 여성편향 정책에 의한 20대 남성들의 역차별 문제를 제기해왔던 이준석 전 최고위원을 필두로(이 전 최고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남성들이 20·30 여성을 싸잡아 혜택만 누리며 책임은 지지 않는 무능한 집단으로 몰아세우는 분위기는 몹시 아쉬웠다.

서울시장 재보궐에서는 많은 화두가 나왔다. 가장 많은 화두는 집권여당의 중추인 운동권 386 집단을 향한 20·30과 60·70의 분노였다. ‘건국 이래 가장 성공한 세대’라는 386은 정치권에서는 전(全) 세대가 마치 자신들에게 민주화라는 빚이라도 지고 있는 양 뻗대고 국가경영에 있어서도 무능함을 드러냈다. 일반기업에서는 회사가 어려워져도 정년을 연장해가며 신입사원과 기업의 비전을 갉아먹는다. 실제 IMF 당시 비교적 젊은 중년 나이에 퇴사한 58년생 개띠 세대와 달리 386들은 여전히 고위직에서 자본을 잠식 중이다.

두 번째는 ‘정의’, ‘민주’의 가치를 내세우며 상대 당인 보수 야당과 보수 야당의 지지자들을 ‘적폐’, ‘친일파’로 몰아세우던 현 정권이 뒤로는 입시 비리, 도쿄 부동산, 청와대의 불법 선거개입, 주가조작 의혹에 ‘더불어’ 제1 도시, 제2 도시의 시장들이 차례로 성범죄를 저지른 끝에 보궐선거를 치름에도 반성 하나 없는 위선에 대한 심판의식이었다. 경제 파탄, 코로나 방역 실패,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분노들은 기본 옵션이었지만 어쨌든 현 집권당에 국민이 기대한 것은 능력보다는 자격이었기에 많은 시민의 분노는 위선, 비리, 불공정, 386의 장기집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심판의 잣대가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가리키고 있다. 재보궐 선거의 승리는 비단 국민의힘과 오세훈의 승리가 아닌 ‘너희가 좋아서 찍어준 것 아니야’라는 국민의 승리와 다름없었기에, 서울시장 선거 때 논의된 화두와 우리 정치에 바라는 열망들이 전당대회를 끌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열망은 ‘세대교체’로 발현되어 장기집권세력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김웅 의원을 필두로 ‘초선의원들의 신선한 당권 도전 정도’로 시작했던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0선 중진’ 이준석 전 최고위원의 등판으로 비(非) 선거 시즌 대한민국 최고의 정치 이벤트가 됐다. 당과 명운을 같이하는 당원들이야 여러 가지 계산들로 속이 복잡하겠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은 말한다. “X나 재밌다.”

‘이준석 돌풍’은 오롯이 이준석 개인의 카리스마로 만들어 낸 현상일까? 아니다. 정치문화에 대한 변화를 갈망하는 이 시대가 이준석이라는 상징을 만들었다. 기존의 전당대회나 대선급 후보자를 선출하기 위한 당내 경선을 살펴보자. 네임드 중진 의원이 출사표를 던지고 당내 무슨 무슨 위원회들이 줄을 서서 조직을 만들어내 전화와 카톡을 주구장창 돌린다. 여의도의 한 사무실 혹은 층 전체에 선거 캠프를 치고 유세 연설이 가능한 본선 2주 전까지 회의를 위한 회의가 진행된다. 이준석 당대표 후보자의 선거운동은 이 공식들에서도 벗어나 있다.

이준석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보수 유권자들은 기성 중진 정치인들의 ‘뻔한 정치’ 에 상당히 지쳐 있다. 매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의 취약지지층인 여성과 청년 표를 겨냥해 여성 할당제·청년 할당제를 주장하지만, 본질은 ‘줄 세우기’였다. 보수의 가치들 즉 재산권 보호, 법치 존중, 힘에 의한 평화, 기업 존중, 지속가능한 복지 등을 주장하지만 정작 국회에서 그들이 양산해 내는 법안들은 민주당의 그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선거철에 내놓는 공약을 보면 ‘생각하고 만든 공약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선전·선동과 프레임 씌우기의 달인인 민주당의 공격에 당 지도부가 항상 당하고야 만다. 당한 후 열 받아서 부들부들 하다가 꼭 경상도 출신 국회의원 할저씨(할아버지와 아저씨의 중간 즈음의 나이를 지칭하는 인터넷 용어)중 한 명이 시대와 동떨어진 말실수를 기어코 하고야 만다.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선거에서 대패하면 ‘무릎 꿇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유권자들로 하여금 ‘저 당에 표를 준 공범’ 된 기분을 느끼게 하는 등 짜증을 자아낸다. 호남에 투자한다면서 실천론적인 전략이나 당 차원의 예산 투입은 전무하고 그저 5.18 묘지에 가서 비석만 닦아댄다.

물론 이준석 후보가 당 중진들이 저지른 폐해들과 반대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도 그런 사람일 수 있다. 당대표가 되고 나서 그의 행보를 지켜보고, 아니다 싶으면 심판하면 될 일이다. 다만 이변 없이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전당대회에서 승리를 거머쥔다면, 나 대표가 당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지에 대한 해답은 명확하다. 이준석이라는 상징에게 보수 유권자가 바라는 것들을 실현해 나가면 된다.

한편 처음에는 팝콘 씹으며 관전하던 민주당은 불안하게 됐다. 자신들의 전유물로 생각했던 20대 표심 과반 이상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으로 넘어간 것도 모자라, 이러다가 헌정사상 최초의 30대 당대표가 보수야당에서 먼저 나오게 생겼으니 말이다. 민주당은 ‘386은 한 번도 주인공인 적이 없었다’ 라는 김태년 전 원내대표를 필두로 전대협 운동권 출신 86세대의 장기집권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러다 86세대와 함께 깃발도 못 들어보고 은퇴하게 생긴 ‘70년대생’을 대표하여 박용진 의원이 대선 출마를 한 상태다. 어쨌든 칼 슈미트의 명언, ‘적이 있어야 정치가 존재한다.’라는 말처럼 민주당에도 심심한 응원을 보낸다.

여 명 (서울시의원·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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