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인터뷰] '트러스트미' 화제의 작가 김규나
[창간 인터뷰] '트러스트미' 화제의 작가 김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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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탓,사회탓 종지부 찍고 개인으로 회귀하자"
법치주의-자유민주주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소설가'

읽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는 소설이 있다. 김규나 작가(51)의 <트러스트미>다. <트러스트미>는 독자들 사이에서 '인증샷' 열풍을 일으키고 화제를 모으고 있다. PenN이 창간에 맞춰 김 작가를 단독 인터뷰했다.

<트러스트미>는 김 작가가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등단한 이후 처음으로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10년 만에 긴 호흡의 기지개를 켰다. 불안과 공포, 분노가 넘치는 문단속에서 그는 ‘개인의 존재’를 밀도 높게 독자들 앞에 내려놓았다.

(김규나 작가 제공)
잉글랜드 무어에서 보내온 독자의 <트러스트미> 인증샷 (김규나 작가 제공)

<트러스트미>는 지하철 5호선 기관사인 강무훤의 눈에 푸릇한 가시가 돋는 것으로 시작된다. 모델 지망생인 유리가 런웨이에 설 수 없는 걸음걸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무훤이 운전하던 전철에 뛰어든 뒤의 일이다. 무훤은 병원을 찾지만 세계적 권위를 가졌다는 안과 전문의는 그에게 적출을 권한다. 그러나 강무훤은 죽음이 다가올수록 끊임없이 삶의 이유를 찾으려 하고 결국 자신을 둘러싼 가족과의 단절, 자신과의 불화, 자신을 이해하고 믿고 용서하는 의미를 알아가게 된다.

김 작가는 <트러스트미>가 삶을 사랑해가는 이야기, 용서해가는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택하고, 행동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후회하지 않는 것입니다”라는 소설 속 구절은 김 작가가 소설 <트러스트미>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압축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진 짐을 가장 힘들게 느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인간은 거기서부터 다시 발돋움해 희망으로 나아가는 존재다. <트러스트미>는 지금껏 기존 소설이 해왔던 남 탓‧사회 탓에 종지부를 찍고 개인으로 회귀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게 나로부터 시작되고 내가 끝이 된다는 점이다. <트러스트미>를 기점으로 개인으로 회귀해 나를 돌아보는 소설이 쏟아져 나오면 좋겠다.”

김규나 소설가 (사진=이세원 사진 작가)

-첫 장편 소설이 나왔다

"그동안 생계를 위해 지인과 함께 작은 출판사를 운영해왔다. 10년 정도 출판사를 하면서 글을 썼다. 그런데 그렇게는 장편 소설을 쓰기가 힘들었다. 장편은 굉장한 몰입이 필요한 작업이다. 어느 순간 '이러다가는 평생 장편 소설을 한 권도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2년에 일을 그만뒀다. 그 때부터 장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트러스트미를 쓰는데 7년이나 걸렸다고 하던데

“지난 2010년에 극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파독 간호사를 인터뷰하게 됐다. 여든 네 살이신데 외국어와 춤을 배우며 열정적으로 살고 계셨다. '멋지다' 싶어 이 분의 얘기를 소설 소재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출간까지 7년이 걸린 거다. 그 분은 소설 속 인물 ‘에바’의 모델이 됐다.”

-주인공 무훤은 지하철 기관사다.

“소설 집필을 하던 당시, 강남 스크린도어 사고가 터졌었다. 2015년 8월 즈음이다. 뭔가 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큰 자석에 작은 쇠들이 달라붙는 듯한 느낌이 온 거다. 무훤의 직업을 정하면서 이전에 써둔 소설 조각들이 하나로 이어졌다. 2016년 1월부터는 칩거하며 소설만 썼다. 새벽5시반부터 자정까지 몰입했다. 그렇게 두 달 만에 소설을 완성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장면들이 드라마처럼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수필가로 등단했다. 하지만 수필이란 그릇은 당시 나의 혼란을 담기에 너무 작았다. 그 때 고민을 하다 2년 정도 드라마를 공부했다. 아마 그 영향으로 많은 분들이 내 소설을 영화나 드라마화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등장인물 유리를 꼭 죽여야 했냐’는 질문을 하는 독자들도 많다

“유리를 통해 주인공 무훤의 삶이 다 무너졌다. 소설에도 썼지만, 유리의 죽음은 단순히 유리만의 죽음이 아니다. 삶을 죽이려 한 '살의'를 죽인 거다. 소설 <데미안>에서 나오듯 한 세계가 태어나려면 알이라는 안온한 세계를 깨야만 한다. 무훤이 불안한 삶을 깨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죽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작가 소개 부분에 ‘대한민국 소설가’라고만 적었는데, 어떤 의미인가

“독특한 소개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소설가’라는 것이 너무 당연하기도 하지만 어마어마하기도 하다. 사실 출판사 대표가 ‘대한민국을 바로 보고 제대로 이해하는 소설가가 김규나 작가밖에 없지 않냐’는 의미로 먼저 제안했다. 단순히 대한민국 태생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내가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 또 우리가 이룬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부모님 세대가 이뤄 놓으신 것들이 자랑스럽다. 그래서 대한민국 소설가로서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

-<트러스트미> 출판 과정은 어땠나

"사실 트러스트미를 다 쓴 뒤 대형 출판사들에 전부 보냈었다. 어떤 출판사도 답을 주지 않았다. 거절의 의사도 없었다. 작품에는 정말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문단 권력이나 출판사가 선호하는 색과는 많이 다르다. 그런 것들 때문에 거절을 받는 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다른 기준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던 중 10년 동안 블로그 이웃으로만 지내던 한 친구에게 글을 보내게 됐다. 그 친구가 읽어봐주면 좋을 것 같았다. 그 때까지 얼굴도 한 번 안 본 사이였다. 출판사를 하는 줄도 몰랐다. 글을 보낸 지 2주일이 다 되갈 때쯤 연락이 왔다. '이 소설 제가 내겠다'고. 그 땐 정말 감동받았다. 오히려 다른 출판사에서 연락이 없던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소설가로서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 (사진=이세원 사진 작가)

김규나 소설가는 지난해 12월16일,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연설을 두고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은 여전히 그들(중국)이고, 우리는 그들을 숭앙하는 지나가는 엑스트라 정도”라며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가슴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그의 글은 페이스북을 통해 회자되며 널리 퍼졌다.

-페이스북을 활발하게 하는 것 같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 문화예술인 명단'이 계기였다. 지난 2016년 말 블랙리스트라며 공개됐는데, 그 명단에 내 이름이 포함돼 있었다. 명단에 이름을 올린 ‘김규나’가 나인지 동명이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찾아보니 수필가가 한 명 더 있었다. 하지만 그게 동명이인이라 하더라도 나는 내가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페이스북을 찾았다. 내가 아무개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내가 비록 4,110명 중 한 명이라 하더라도, 역사에 그렇게 영원히 남길 순 없었다.”

-그 이후엔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활용하고 있는 것인가

“페이스북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보고 듣지만, 모든 말에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작가의 의도와 달리 시청자의 의견에 따라 결말이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개인적으로 그건 작가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자기가 보고 겪은 것을 통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자기 삶을 반추해보고 새로운 생각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것이 작가의 소통이다.”

-“한반도 남쪽에 두 개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작가로서 바라본 현재의 대한민국은 어떤가

“우리나라는 전쟁을 쉬고 있는 나라다. 이를 두고 일부 국민들은 ‘이대로도 괜찮으니 그들과 다 같이 잘 살자’고 하는 반면 ‘그건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화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있다. 이 둘은 도무지 소통이 안 된다. 이를 기반으로 다른 문제로까지 생각의 차이가 벌어진 거다. 큰 문제다. 지금 대한민국은 해일의 시대를 겪고 있다. 다만, 이 격변기는 역사적으로 꼭 한 번은 겪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꼭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고, 건너야 할 강이다.”

당분간은 어려운 시간이 이어지겠지만, 김규나 작가는 여전히 ‘희망’을 이야기한다.

“천 개의 꽃이 피었다는 것은 천 개의 겨울이 있었다는 증거야.
씨앗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하나의 겨울을 견디는 게 아니지.
저마다의 겨울을 홀로 이기는 거야.
죽음의 끝에서 돌아온 씨앗만이 꽃을 피우는 거야.”
소설 <트러스트미> 中

대한민국도 겨울을 견디고 나면 다시 꽃을 피울 거라는 메시지다.

“내가 나를 존중하고 신뢰하듯 다른 사람을 대해야 한다. 모두가 자기 삶을 가장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각자 개인을 존중해주자는 뜻이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비롯되고 나로 귀결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보다 좋은 세상은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이 진정한 개인주의를 이해하는 것으로 읽히면 좋겠다. 트러스트 미. 트러스트 유.”

☞소설가 김규나는?

한 마디로 진실을 찾으려 애쓰는 소설가. 단편 <내 남자의 꿈>으로 2006년 부산일보 신춘 문예에, 단편 <칼>로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저서로 단편소설집 <칼> (2010년), 우리 시대 대표 소설가들의 리얼 러브 스토리 <설렘>(공저, 2009), 되돌아보고 나를 찾다 <반성>(공저, 2010), 우리시대 대표 문인들이 전하는 특별한 수업이야기 <수업>(공저, 2010), 그림책 <호랑나비야 날아라>(2009), 에세이집 <날마다 머리에 꽃을 꽂는 여자>(2006) 등이 있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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