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조지아주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한 뒤, 최태원 회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조지아주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한 뒤, 최태원 회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달 2일 4대 그룹 총수들과 오찬 회동을 갖는다. 문 대통령이 총수들과의 만남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과 관련해 전향적인 입장을 밝힐지 재계의 이목이 쏠린다.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문 대통령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고 자평한 뒤,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론이 솔솔 지펴지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미 “별도 고려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고까지 한 상태다.

그동안 이 부회장 사면론은 재계와 일부 지자체 등이 중심이 돼 제기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청와대쪽에서 언급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6월 2일 첫 ‘4대 그룹 총수 초청’ 청와대 오찬

지난 27일 문 대통령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청와대로 초청한다고 발표했다. 삼성그룹은 수감 중인 이재용 부회장을 대신해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DS부문)이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4대 그룹 총수와 오찬 만남을 갖는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청와대 측은 25일 경 각 기업에 연락해 초청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21일(현지시간) 열린 한미정상회담에 동행했던 기업인들이 모두 귀국한 직후 회동을 추진한 것이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대기업 총수들과 향후 긴밀한 소통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번 정상회담 기간 중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 그룹은 반도체, 전기자동차, 배터리, 바이오 분야를 중심으로 총 44조 원 규모의 미국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최 회장 등 기업인들을 일으켜 세운 뒤 ‘감사하다’라는 말을 연달아 세 번 했다.

문 대통령은 4대 그룹 총수를 만나 한미 협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준 데 대해 감사를 표하고, 지속적으로 민관 협력이 중요하다는 당부를 전할 것으로 알려진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이들과 계속해서 소통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낼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오찬에 수감 중인 이재용만 불참...이 부회장 거취 논의될 가능성 높아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유일하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만 이번 회동에 불참한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국정농단 재판’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확정받고 법정구속돼 참석이 불가하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이 길어지자 재계와 종교계, 정치권에서 이 부회장의 사면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이 길어지자 재계와 종교계, 정치권에서 이 부회장의 사면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불참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이 부회장에 대해 문 대통령과 4대 그룹 총수가 자연스럽게 이 부회장의 거취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재계는 문재인 대통령이 다가올 오찬 회동 자리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에 대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주목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달 10일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경쟁이 세계적으로 격화되고 있어서 우리도 반도체산업에 대한 경쟁력을 더욱 더 높여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국민들의 많은 의견을 들어 (이 부회장의 사면에 대해) 판단해 나가겠다”고 했다.

연설 사흘 뒤에는 평택 삼성전자 공장을 방문, 이 부회장 사면에 힘을 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 25일 이재용 사면에 대해 “별도의 고려가 있을 것” 언급

그러던 것이 문 대통령의 방미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 가능성이 조금씩 고조되는 분위기이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이 길어지자 재계와 종교계, 정치권에서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정권의 핵심층에서도 서서히 사면 가능성을 열어두는 언급이 나와 주목됐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2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과 관련해 “별도의 고려가 있을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사진=김현정의 뉴스쇼 캡처]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2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과 관련해 “별도의 고려가 있을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사진=김현정의 뉴스쇼 캡처]

사면 가능성의 포문을 연 사람은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이 실장은 지난 25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전화 인터뷰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에 대해 "경제계나 종교계, 외국인 투자기업들로부터 그런 건의서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그에 대해서는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국민적인 정서라든지 공감대 등도 함께 고려해야 되기 때문에 별도의 고려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청와대는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해 '검토할 계획이 없다'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지난달 27일 경제5단체가 이 부회장 사면건의서를 제출했을 때의 답변이다. 지난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는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에 대해서는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라며 사면 논의 자체를 차단했지만,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10일에는 '국민 여론을 살필 것'이라고 분위기가 다른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나아가 이날은 '별도 고려가 있을 것'이라고 한단계 진일보한 언급이 나왔다는 점에서, 사면의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이호승 정책실장의 발언 이후, 주호영 의원 “이재용 사면을 문 대통령이 결단해야”

이 실장의 이 발언이 나온 다음날인 26일, 문 대통령은 여야 5당 대표와 오찬 회동을 가졌다. 전날 이 실장의 발언을 토대로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 논의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있었지만, 실제 이와 관련해 어떠한 말도 오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날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주 의원은 "이 부회장이 (감옥에) 오래 있을 경우 삼성의 경영 문제가 생기고 삼성이 반도체 전쟁에서 지면 국가적으로도 손해다"라며 "그런 상황을 감안해 문 대통령이 결단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전 세계가 반도체 전쟁 국면에 있다"며 "반도체 전쟁은 엄청난 투자가 전제돼야 하는데 고용된 사장이 이를 결정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28일 열린 국민의힘 경북도당 핵심 당직자 간담회에서 당권 주자인 주호영 후보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주 후보는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과 관련,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28일 열린 국민의힘 경북도당 핵심 당직자 간담회에서 당권 주자인 주호영 후보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주 후보는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과 관련,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실제 이 부회장의 사면 요구는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확산하고 있다. 한국 주재 미국기업 800곳을 회원으로 둔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는 지난 21일(현지시각)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을 일주일 가량 앞두고 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이 부회장의 사면을 촉구했다.

제임스 김 암참 회장도 “이재용 사면은 미국과 한국에게 최선의 경제적 이익” 강조

제임스 김 암참 회장은 파이낸셜타임즈(FT)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에서 가장 중요한 임원인 (이재용 부회장) 사면은 미국과 한국에 있어 최선의 경제적 이익일 것"이라면서 암참은 '비정치적' 단체라고 강조했다.

여권 내에서도 사면 촉구 의견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반대 의견이 우세했던 이전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졌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일 "(이재용 부회장이) 반도체 부분과 백신 부분에서 좀 더 미국의 요청이 있고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사면도 긍정적으로 좀 검토를 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뇌물·횡령 등 중대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을 제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으며, 이를 현재까지 지키고 있다. 이런 이유로 재계 안팎에선 이 부회장의 사면이 어렵지 않겠냐는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의 언급에 따르면, 이 부회장에 대한 핵심층의 기류가 바뀌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최종 결정은 문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에 달려 있다. 후보 시절의 공약과 최근의 정치 경제적 상황과의 간극 사이에서 문 대통령의 고민은 깊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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