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이후 연 2회 실시된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의 도상훈련CPX)도 코로나 여파로 축소된 채 실시됐다. 올해 8월로 예상되는 하반기 한미연합훈련의 규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사진은 지난 2월 16일 용산 미군기지 뒤로 보이는 국방부와 합참 청사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8년 이후 연 2회 실시되던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의 도상훈련CPX)도 코로나 여파로 축소된 채 실시됐다. 올해 8월로 예상되는 하반기 한미연합훈련의 규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사진은 지난 2월 16일 용산 미군기지 뒤로 보이는 국방부와 합참 청사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 우리 군에 대한 미국 측의 코로나19 백신 지원계획의 배경을 두고 양국 간 엇갈린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당초 미국이 한국군 55만명에게 코로나19 백신을 공급하는 지원계획이 양국의 연례 연합 군사훈련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해석됐다.

그런데 지난 26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5당 대표 오찬 간담회에서 8월로 예상되는 하반기 한미연합훈련과 관련해 "북미를 고려해 판단이 있지 않겠느냐"며 "코로나19로 대규모 군사훈련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한미연합방위 체제를 공고화하겠다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한반도 정책과는 전혀 다른 노선을 제시한 셈이다. 오히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지난 3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강행하면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공갈을 친 데 대한 ‘화답’이라는 해석을 낳고 욌다.

임기말 문 대통령, 냉각된 남북 및 북미관계 재시동 위해 8월 연합군사훈련 포기 시사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상황’을 언급하면서 정체된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에 재시동을 걸기 위해선 대규모 훈련은 지양해야 한다는 속내를 밝힌 것이다. 한국군에 대한 미국의 코로나 백신 지원 방침으로 3년 만에 대규모 야외 실기동 훈련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던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대규모 연합훈련 가능성’에 선을 그은 셈이다.

문 대통령의 이 발언은 정의당 여영국 대표가 "8월 예정된 한미연합훈련 취소나 연기 의지를 실어서 남북 군사공동위원회 개최를 북한에 제안해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자"고 제안한 데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5당 대표 오찬 간담회에서 연합훈련과 관련한 정의당 여영국 대표의 질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로 대규모 군사훈련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5당 대표 오찬 간담회에서 연합훈련과 관련한 정의당 여영국 대표의 질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로 대규모 군사훈련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그동안 한미 양국군은 코로나19 전파·확산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훈련을 축소해 실시해왔다. 하지만 우리 군이 이미 30세 이상의 장병들을 대상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개시한 데다, 미국 정부도 우리 군에 대한 백신 지원을 약속하면서 추후 백신 접종 추이 등에 따라 ‘훈련 정상화’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

한미 양국 군은 2018년까지만 해도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의 도상훈련(CPX)은 연 2회, 대규모 야외 실기동훈련(FTX)은 연 1회 병행하는 방식으로 연합훈련을 실시해왔다.

그러다가 그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 관련 논의를 뒷받침한다는 취지에서 양국은 연례 연합훈련을 축소하기로 했다. 그 결과 연대급 이상 대규모 FTX는 한미 양국군이 독자적으로 실시하고, 대대급 이하 훈련만 양국군이 함께하는 형태로 연중 분산 시행 중이다.

게다가 CPX 방식의 한미연합훈련마저도 작년 전반기에는 코로나19 유행의 여파로 취소됐다. 이후 2차례 훈련도 이전보다 축소된 채 실시됐다.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한국군 55만명이 백신 맞으면 8월 대규모 훈련 가능해져”

따라서 미군 내에서는 한미훈련 축소 시행에 대한 불만이 여러 차례 감지돼왔다. 이임을 앞둔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13일 한 행사에서 "북한이 중대 위협을 제기하는 한 우린 확실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평시에 땀을 흘려야 전시에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있다"며 실기동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해 이목이 집중됐다.

이와 관련 미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냇 선임연구원은 24일 보도된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군 장병 55만명이 8월까지 백신을 다 맞으면 코로나19 확산 위험 없이 미군과 FTX를 하는 게 가능해진다"고 말해, 대규모 연합 훈련 가능성이 점쳐졌다.

마이클 오핸런 미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역시 24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그동안 중단돼 왔던) 대규모 한-미 군사훈련이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그동안 유지해 온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일시 유예 입장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조만간 취임할 예정인 폴 라캐머러 신임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도 최근 상원 군사위원회 인준청문회에서 'FTX를 포함한 대규모 한미훈련이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실제 훈련이 컴퓨터 모의훈련보다 훨씬 더 좋다"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는 3년 전 싱가포르 합의 때처럼 훈련 축소 검토?

한미연합훈련 규모가 2018년 6월 싱가포르 합의 이후처럼 올해도 축소될지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군 안팎에선 하반기 한미훈련 때 실기동훈련이 재개될지의 여부는 "향후 북미관계와 그에 따른 미국 측 의중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이 미국과 남측의 대화 제의에 호응한다면 축소 가능성이 클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협상을 외면한 채 고강도 도발에 나선다면 한미도 이에 대응해 연합훈련 강도를 높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한미연합훈련의 시기나 규모 등과 관련해서는 아직 결정된 게 없다"면서 "구체적인 일정과 훈련 방식 등은 한미 간 협의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도 셈법이 복잡하다. 현재 중단 상태에 있는 남북 교류와 북-미 대화를 재개하는 한편, 임기 내 전시 작전권 전환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작권 전환을 하려면, 매년 8월 열리는 한미 군사훈련을 가급적 실기동훈련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럴 경우 북한이 크게 반발하며 대화의 기회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3월 16일 내놓은 한미연합훈련 비난 담화인 '3년 전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다'가 이날 오후 북한 전 주민이 보는 조선중앙TV에서도 보도됐다. [조선중앙TV 화면]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3월 16일 내놓은 한미연합훈련 비난 담화인 '3년 전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다'가 이날 오후 북한 전 주민이 보는 조선중앙TV에서도 보도됐다. [조선중앙TV 화면]

김여정은 지난 3월 축소된 한미연합훈련도 맹비난...문 대통령은 안보보다 북미대화 재개에 관심

실제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지난 3월 실병력 이동이 없는 ‘지휘소 훈련’으로 간소하게 치러진 한미연합훈련에도 “남조선 당국이 우리 공화국을 겨냥한 침략적인 전쟁련습을 강행하는 길에 들어섰다”고 항의하며 “3년 전의 따뜻한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날렸다. 김 부부장은 한발 더 나아가 남이 “대화를 부정하는 적대 행위에 짓궂게 매달리면 △조국평화통일위원회(남의 통일부) 정리 △금강산 국제관광국 등 관련 기구 해체 △9·19 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 파기 등 남북 관계의 ‘완전한 파탄’을 의미하는 여러 보복 조처를 취하겠다”는 위협도 했다.

결국 문 대통령은 전시 작전권 전환보다는 ‘남북 교류와 북-미 대화 재개’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동맹들이 처한 개별적 특수성을 고려’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전략상, 백신 55만명분을 받고도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에 나서지 않는다면 ‘한국의 특수성’으로 인정해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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