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23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최로 열린 '국정원 해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전국시국기도회'에서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3.9.23(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23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최로 열린 '국정원 해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전국시국기도회'에서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3.9.23(사진=연합뉴스)

국가보안법 폐지법률안이 20일 기어코 국회에 접수됐다. 발의 의원은 강은미 정의당 의원 등 10명으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국가보안법은 15년만에 다시금 존폐 위기에 처하게 됐다.

20일 국가보안법 폐지법률안(2110236)은 강은미 의원을 비롯해 정의당의 비례대표인 배진교·장혜영·류호정·이은주 의원과 심상정(경기 고양갑)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용빈(광주 광산갑) 의원과 기본소득당 비례대표 용혜인 의원, 김홍걸·양정숙 무소속 비례대표 의원이 발의했다.

이들은 "한반도의 구체적 현실은 구시대 냉전체제가 해체된 뒤 평화적 공존체제의 구축을 위해 경주하고 있다"라며 "남과 북은 그동안 6·15 정상회담과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양국간 긴장이 완화되는 등 선과를 쌓았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냉전시대의 유산인 국가보안법은 현행법으로 존재하면서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과거 국민기본권을 유린한 국가보안법은, 평화통일로 나아가기 위해 폐지하고자 한다"라고 밝힌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이라는 단체가 지난 19일 저녁 입법 청원 10만명 달성에 따른 공지사항을 올렸다. 2021.05.19(사진출처=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이라는 단체가 지난 19일 저녁 입법 청원 10만명 달성에 따른 공지사항을 올렸다. 2021.05.19(사진출처=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국가보안법 폐지론은 이미 4년 전인 2017년 대선 직전 문재인 대통령이 "이뤄지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는다"라고 언급했다. 그의 이같은 발언은 20일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이라는 단체의 폐지 입법 청원 조건 10만명을 넘기면서 현실화됐다.

여기서, 청원인은 국가변란의 주동자인 이석기 前 통합진보당 의원을 거론하며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받고 있는 사례로 들었다.

놀라운 점은, 국가보안법 폐지법률안이 이석기 전 의원을 당수로 했던 통진당의 후신격 정당인 '정의당'이 주축이 돼 발의했다는 것.

그렇다면 정의당계가 국가보안법을 없애려고 애쓰는 데에 숨겨진 배경은 무엇일까. 이는 이석기 의원과 연계된 통합진보당 사건과도 무관치 않다.

일명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라는 단체의 회원들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이 7일 오후 서울 을지로에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2019.12.7(사진=연합뉴스)
일명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라는 단체의 회원들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이 7일 오후 서울 을지로에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2019.12.7(사진=연합뉴스)

정의당의 뿌리는, 2008년 민주노동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재단의 유시민 現 이사장이 대표로 있던 국민참여당과 새진보통합연대가 민주노동당과 통합하면서 통합진보당으로 합쳐졌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그 내막에 '진보적 민주주의' 개념을 품고 있던 것으로 드러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13년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과 당수 이석기 의원이 '진보적 민주주의' 개념이 이념적 지향점으로 두고 있다고 봤다(2013헌다1). 다음은 헌법재판소의 판시 내용 요약문 일부이다.

▶ 우리 사회를 외세에 예속된, 천민적 자본주의 또는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로 보고, 이 모순이 국가 주권을 말살하고 민중들의 삶을 궁핍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신대안체제이자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과도기 단계로서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제시.

▶ 그 강령적 과제로 민족자주(자주), 민주주의(민주), 민족화해(통일)를 제시하면서 최종 강령적 과제인 '연방제 통일'을 통한 사회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먼저 남한에서 민중민주주의변혁이 이루어져야 하고, '통일·민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주'를 선차적으로 달성해야 한다고 인식.

▶ 기존의 우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여 집권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이는 최종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

26일 오후 경기도 수원지검 대회의실에서 검찰이 공개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총책인 'RO' 조직체계도.2013.9.26(사진=연합뉴스)
26일 오후 경기도 수원지검 대회의실에서 검찰이 공개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총책인 'RO' 조직체계도.2013.9.26(사진=연합뉴스)

▶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북한을 추종하고 있고, 그들이 주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거의 모든 점에서 전체적으로 같거나 매우 유사하다. 또한 민중민주주의 변혁론에 따라 혁명을 추구하면서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다.

▶ 진정한 목적과 활동은 1차적으로 폭력에 의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 피청구인이 추구하는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는 조선노동당이 제시하는 정치 노선을 절대적인 선으로 받아들이고 그 정당의 특정한 계급노선과 결부된 인민민주주의 독재방식과 수령론에 기초한 1인 독재를 통치의 본질로 추구하는 점에서 민주적 기본질서와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민항쟁 등 폭력을 행사하여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전복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역시 민주적 기본질서에 정면으로 저촉된다.

정의당은 통합진보당의 후예격 정당으로도 볼 수 있는 단체다. 통합진보당이 위헌정당 해산심판으로 쪼개진 뒤, 등장한 진보정의당은 후일 '정의당'으로 개명한 뒤 국회로 진입했다.

26일 오후 경기도 수원지검 대회의실에서 검찰이 공개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압수품.2013.9.26 (사진=연합뉴스)
26일 오후 경기도 수원지검 대회의실에서 검찰이 공개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압수품.2013.9.26 (사진=연합뉴스)

앞서 밝힌 국가보안법에 얽힌 정의당계 전직 인사 이석기 전 의원의 사례 외에도, 국가보안법 폐지법률안을 내놓은 국회의원들은 북한의 위협이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에 대해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따른 인식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헌법 제4조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인권존중·국민주권·권력분립·사법독립·복수정당제'를 뜻한다(2013헌다1).

지난 1월, 북한 지도부는 "핵(核)무력 증강"을 천명함하면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무너뜨리려는 반(反)국가단체로서의 존재 의미를 다시금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정의당 소속 인사들은 "긴장 완화"라고 진단했다. 폐지 청원에 나타난 '양심과 사상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자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용인하려는 모양새다.

이를 막으려는 민주주의 작동 태세를 '방어적 민주주의'라고 일컫는다. 한마디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스스로 붕괴되는 결과에 이르지 않도록 조정하는 장치인데, 그 대표적인 구현 수단이 '국가보안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은 '진보'를 자처한 입법부의 헛발질로 존폐 위기에 처한 모양새다.

한편,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기자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공격에 따라 그에 대응해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야 한다"라며 "6·25전쟁의 경험 등을 비롯해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우리의 지난 헌정사는 국가안보 등이 반영돼 왔음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 류호정 정의당 의원, 강은미 정의당 의원.(사진=연합뉴스)
심상정 정의당 의원, 류호정 정의당 의원, 강은미 정의당 의원.(사진=연합뉴스)

 

조주형 기자 chamsae9988@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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