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역사왜곡방지법 발의의 배경과 주요 내용

5월 13일 여당 김용민 의원의 대표발의로 ‘역사왜곡방지법’이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법안의 제안 이유로는 헌법 전문에서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선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하거나 관련 역사에 대한 왜곡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미비한 현실에서 헌법적 가치를 지키고, 국가의 존엄을 유지하고자 역사왜곡행위를 금지하고, 위반 시에 처벌하는 규정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법안은 3.1운동과 4.19 민주이념의 계승을 실현하기 위하여 역사에 대한 왜곡행위 및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하는 행위를 방지하여 국가의 존엄과 국민의 역사인식 고양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며, 이를 위해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행위들을 금지하고 있다.

첫째, 공연히 3.1운동, 4.19민주화운동, 일본제국주의의 우리나라에 대한 폭력적ㆍ자의적 지배 또는 그 지배 하에서 범하여진 폭력, 학살, 인권유린 및 이에 저항한 독립운동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둘째, 공연히 일본제국주의의 우리나라에 대한 폭력적ㆍ자의적 지배 또는 그 지배 하에서 범하여진 폭력, 학살, 인권유린을 찬양⋅고무⋅선전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셋째, 외국인 또는 외국의 국가⋅단체가 역사왜곡 또는 일제찬양을 하는 것에 동조하거나 경제적 지원을 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넷째, 공연히 일본제국주의를 찬양⋅고무⋅선전할 목적으로 일본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군사기 또는 조형물을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또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 여부 등을 전문적으로 심리하기 위하여 ‘진실한 역사를 위한 심리위원회’를 설치하며, 역사왜곡 등으로 재산상 손해를 입히거나 인격권 침해 또는 그 밖의 정신적 고통을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으며, 악의적인 경우 5배 이내의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며, 그밖에 강력한 형사처벌까지도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다.

진보 정부의 언론관은 모든 것을 처벌로 해결하자는 것인가?

얼핏 보기에는 법안의 취지나 내용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국가가 나서서 무엇이 진실한 역사인지를 결정하고, 이를 비판하는 견해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오남용될 소지가 작지 않으며, 제2의 대북전단금지법, 5⋅18비판금지법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과거 진보진영의 지향점은 독재와의 투쟁이었고, 구시대적 억압과 규제를 극복하고 민의에 따른 정부의 구성과 국가질서의 합리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진보 정부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의 최근 모습은 그렇게 비판하던 독재 정부의 데칼코마니처럼 보인다.

다수 의석을 앞세워 국회를 일방적으로 운영하고, 국민의 여론과 심지어 국제사회의 비난까지 아랑곳하지 않는 입법폭주에 대해서 날카로운 비판들이 계속되고 있는데, 여전히 다수의 횡포, 다수의 독재에 대한 반성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규제의 칼날부터 들이대는 모습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을 가짜뉴스로 몰아세우며 규제하겠다고 하였던 것이나,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 북한 김여정의 요구에 따라 대북전단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에 이어서 5⋅18비판금지법과 역사왜곡방지법에 이르기까지…

물론 따져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것들은 아니다. 가짜뉴스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으며, 5⋅18이나 독립운동 및 정신대 문제 등에 대해 근거 없는 비판으로 물의를 불러일으킨 경우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법을 양산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해결인가?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과거사 청산을 추진하면서도 ‘진실과 화해’를 내세우고, 처벌을 강조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가? 한편으로는 이를 통한 갈등의 확대를 원치 않았던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 주도의 과거사 청산이 새로운 왜곡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았던 까닭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여당의 압도적인 다수 의석에 힘입어 적폐청산을 장기화했다. 이제 국민들의 적폐청산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지자, 적폐청산이라는 말 대신에 5⋅18 비판, 친일 옹호 등을 처벌하겠다면서 긴장과 갈등을 고조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7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며 큰절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7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큰절을 하고 있다.

정부가 역사를 결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한다. 물론 그 또한 절대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 기업비밀, 국가기밀 등을 침해하는 표현은 규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민주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가운데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며, 특히 정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 독재정권에 대해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던 이들이 집권한 후에는 정권에 대한 비판을 억압하려 해서는 안 된다. 민주국가에서 정권에 대한 비판의 가장 큰 의미는 - 그 진실성 여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 - 정권에 대한 비판 자체가 허용된다는 점에 있으며, 정부와 여당이 논쟁을 통해 비판이 정당하지 못함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키는 대신에 법률로 이를 억압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다.

더욱이 무엇이 올바른 역사인지를 정부가 결정하고, 이에 대한 비판을 처벌하려는 것은 역사에 대한 검열이 될 수 있으므로 지극히 위험스럽다. 역사 속의 수많은 사건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밝혀졌고, 또 밝혀질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부가 구성한 위원회에서 이를 확인하고 판단한다는 것은 사실상 정부가 결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중국의 동북공정과 유사한 일이 대한민국에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는가?

더욱이 진보진영에서는 국가보안법 제7조에 따라 북한 및 그 구성원 등을 찬양⋅고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억압이라고 주장해 왔고, 실제로 문재인 정부에서는 북한 김정은의 찬양 등에 대해 국가보안법 제7조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의 북한에 대한 찬양⋅고무보다 일제강점기 지배에 대한 찬양을 더 무겁게 처벌하도록 한 역사왜곡방지법을 발의한 진보정권의 이중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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