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성 기자.
윤희성 기자.

공짜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만약 주식 1주(株)가 순식간에 1000주로 늘어난다면 누구도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이런 일이 실제 삼성증권에서 벌어졌다.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잘못 발행된 주식을 회사에 보고한 직원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일부 직원들은 새어 나오는 기쁨을 애써 숨기며 문제의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지난 6일 삼성증권은 우리사주 조합원 2018명을 대상으로 28억1000만 원을 배당하려다 담당 직원의 단순 '클릭 실수'로 28억1000만 주를 배당해버렸다. 5일 결제를 올린 이 직원에게 원(돈)을 주(주식)로 잘못 기입했다는 것을 알려준 상사는 없었다. 

삼성증권이 정관상 발행할 수 있는 총 주식 수인 1억2000만 주보다 23배나 많은 28억1000만 주가 갑자기 발행됐지만 그 누구도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1주가 1000주가 되는 환상적인 경험을 한 2018명의 우리사주 조합원 중 16명은 자신의 계좌로 잘못 날아든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오전 9시 장이 열리고 16명의 폭발적인 매도가 시작됐고 갑자기 많은 물량이 풀리면서 삼성증권의 주식가치는 급락하기 시작했다. 16명의 삼성증권 직원들은 500만 주 이상을 매도했고 3만9000원대던 주가는 3만5000원대로 10% 이상 떨어졌다.

내부적인 전산 실수로 큰 잡음 없이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이번 사건은 16명의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장의 실수를 해결해야 할 직원들이 오히려 그 실수를 이용하려고 했다. 16명은 현재 대기발령 중이고 회사에 입힌 손실도 보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증권 일부 직원의 형편없는 직업윤리를 극명하게 보여준 이번 사고로 금융당국의 허술한 주식시장 운영의 민낯도 드러났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등 주식시장 담당 기관도 삼성증권의 주식이 갑자기 불어나 시장에 급속도로 유입된 것을 막지 못했다. 뒤늦게 '희대의 사건'이라며 법석을 떠는 금융감독원도 "장이 마감된 후 정산을 해서 주식 수 등에 이상이 있는지를 잡아내기에 실시간으로 이상 거래를 걸러내지 못한다"고 스스로 한계를 고백했다.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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