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김보미, 강명진, 은하선, 박한희 씨.(EBS 방송화면 캡처)

 

EBS(한국교육방송공사)에서 방영되는 <까칠남녀>가 물의를 빚고 있다. 다른 방송도 아니고 국민의 세금으로 제작되는 공영 교육방송에서 다양성 옹호라는 명분 아래 논란의 여지가 큰 문제를 여과 없이 소개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EBS <까칠남녀>는 지난해 성탄절(12월 25일)과 올해 신정(1월 1일), ‘성 소수자 특집’을 2부작에 걸쳐 방영했다. ‘성 소수자 특집’은 LGBT(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를 합쳐서 부르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201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레즈비언이라고 밝힌 김보미, 2000년 시작된 '퀴어문화축제'를 8년 동안 이끌어 온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강명진, '이기적 섹스' 저자 겸 섹스 칼럼니스트 바이섹슈얼 은하선, 국내 1호 커밍아웃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가 출연하여 LGBT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제작진은 이번 방송에 대해 “출연진 4인방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고백을 통해 시청자들의 오해와 편견을 깬다”고 소개했다. 이는 무조건적인 미화나 옹호가 아니라 젠더에 대한 ‘올바른 교육 차원’이며 ‘인권 및 성적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EBS <까칠남녀> 시청자 게시판에는 ‘공영 교육방송이 소수자 인권 보호와 다양성이라는 명분 아래 왜곡‧편파적 시각만을 보여주는 상황’을 지적하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시청자는 “성 소수자들만 패널로 나와 편향적인 성적취향과 왜곡된 가치관을 교육방송에서 방송하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며 “편협한 생각을 마치 일반적인 생각으로, 그게 지성인인 것처럼 말하는 게 불편하다”고 평했다. “우리 아이가 볼까 두렵다”는 거부 반응도 빈번하게 올라왔다.

한 시청자는 “폐해는 왜 감추어진 채로 방송하는가. 일면만 아는 것은 왜곡이다”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동성애를 조장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용기 있다고 치켜세우며 미화되는 반면, 에이즈 등 동성애가 초래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면 폐쇄적이라고 매도받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표출됐다.

학부모 및 교육 시민단체로 구성된 연합기구인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약칭 전학연)은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2시 EBS 사옥 앞에서 소속 단체 학부모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항의 집회를 열고 “학생들이 건강한 가정을 기반한 성가치가 확립되기 전에, (EBS가) 매번 남성혐오와 편파적 남성상 왜곡으로 남녀분쟁을 극대화시키고, 그도 모자라 이제는 <젠더 감수성>이라는 이름으로 동성애를 조장하고 급진적 페미니즘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EBS 까칠남녀 시청자 게시판.(EBS 홈페이지 캡처)

 

이전부터 ‘성 소수자 옹호 對 비판’은 대립됐지만, 이번 논란이 부각된 가장 큰 이유는 EBS의 영향력 때문으로 분석된다. EBS는 온가족을 대상으로 주로 교양방송과 다큐멘터리,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방영해왔다. 덕분에 아이들 사이에서 EBS는 친숙하고 신뢰도있는 방송이며, 학부모들 입장에서도 EBS 방송은 권장되고 믿고 맡길 수 있는 방송으로 자리매김해왔다.

EBS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며 신뢰받아왔던 만큼 학부모들과 일부 시청자들에게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주 시청자가 성 관념이 형성되기 이전인 학생들이 많은 상태에서 동성애와 트랜스젠더에 대해 무분별하게 수용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공영 교육방송의 성격상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육방송을 통해 보여진 성 소수자 인권 주장은 성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그럴듯해 보이는 착시를 낳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교육방송 사유화’라는 지적도 나왔다. 최혜경 제작본부장이 개인신념을 EBS 교육방송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제작본부장이라는 사람이 제 철학과 신념이라며 일방적으로 EBS를 사(私)방송화한 것”이라며 “이는 EBS 방송강령을 위반한 것"이며, "일부 독선적이고 자기 맹신에 빠진 이상주의자들의 놀이터로 전락한 EBS이기에 두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제작진의 가치 판단이 공정 교육방송 성격보다 우선시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작년 12월 28일 EBS에 항의하러 갔던 단체대표들이 최혜경 EBS 제작본부장에게 <까칠남녀> ‘성 소수자 특집’ 내용을 파악했냐고 질문하자, 최 본부장은 “그렇다”며 “30년 동안 공부했기에 내용을 알고 했고, 내 자녀에게도 보여줄 수 있고, 만일 내 자녀가 선택하면 그 선택을 존중해줄 수 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성 소수자 특집’에 대한 비판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까칠남녀>에 전문가 패널로도 참여 중인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그들의 염려와 달리 특집이 아주 건전하고 유익했다’고 자평했다. ‘(성 소수자는)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이미지로 정형화되어 사회적 편견 아래 놓이게 된다. 그리고 다수의 편견은 차별을 정당화한다’고 설명하며 우리들 시선에 그들의 존재가 가시화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얘기하기 어려운 소재를 공론화하고 솔직하게 의견을 나눈다는 점과, 지루한 교육방송의 선입견을 깨뜨리며 흥미를 이끈다는 점에서 지지를 받기도 했다.

이번 방송 출연자인 김보미 씨는 "(사람들은 우리 보고) 조용히 살고 나오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하는데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싶은 우리의 권리가 있다. 그래서 더 떠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방송 내용에 오류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걸 다루는 것 자체를 문제시해서 방송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고도 덧붙였다.

<까칠남녀>는 과거에 여성우월적 시각이 크게 반영된다는 점에서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페미니스트 우선'이라는 비판에 대해 김민지 PD는 “한국 사회에서 젠더 문제는 여성에게 불평등한 것들이 너무 많아 우선적으로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며 “남성 역시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만큼 향후 역차별이나 가장으로서 책임감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다뤄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논란 당시 프로그램 기획, 연출, 작가 모두 합쳐서 11명 중에 9명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 부각되기도 했다.

‘성 소수자 특집’은 방영 소식이 전해진 이후 지난해 12월 23일부터 현재까지, EBS 시청자 게시판에는 2000여개가 넘는 공방이 오고갔다. 그 중에서도 학부모들의 방송 반대 및 우려 섞인 목소리의 비중이 높았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까칠남녀 폐지 청원도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EBS <까칠남녀>는 매주 월요일 밤 11시 35분 EBS 1TV에서 본방송되며, 매주 일요일 오전 1시 25분 재방송된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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