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기록이 실제인지 일방적 주장인지 탈북민들 주장에 대한 확인 검증 부족하다"
지난 2월22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 상대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고소한 건, 경찰이 '각하'
서울 종로경찰서, "李 장관 발언의 대상이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피해자 특정 어려워"
박선영 물망초재단 이사장, "3만여 탈북민들 가운데 실제 공개 증언 나선 이들 몇 안 돼"
4명의 고소인들의 이의 제기로 사건은 검찰로...'집단 표시 명예훼손' 인정될까?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 종로경찰서 정문 앞에서 박선영 사단법인 물망초재단 이사장(왼쪽)과 탈북민 이동현 씨(오른쪽)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 4. 30. / 사진=박순종 기자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 종로경찰서 정문 앞에서 박선영 사단법인 물망초재단 이사장(왼쪽)과 탈북민 이동현 씨(오른쪽)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 4. 30. / 사진=박순종 기자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당한 사건을 서울 종로경찰서가 각하(却下)한 데 대해, 이번 고소를 주도한 북한 인권단체 ‘사단법인 물망초재단’(이사장 박선영) 관계자들이 30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 처분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인영 장관은 지난 2월3일 열린 외신 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북한 인권기록물 공개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기록이 실제인지 일방적인 (탈북자의) 의사(意思)를 기록한 것인지 아직 확인·검증 과정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에 최성국·김태희·이은택·이동현 등 탈북민 4명은 같은 달 22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이 장관을 고소한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제출했다. 이들은 고소장에 “북한의 인권 침해 실태는 극히 일부밖에 알리지 못했고, 대다수 탈북자들의 증언 또한 빙산의 일각(一角)만이 겨우 드러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탈북민들의) 증언을 거짓말인 양 해외 언론들, 특히 주한(駐韓) 외신 기자들에게 발언한 것은 용서받지 못할 명예훼손 행위이자 북한 이탈 주민들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적었다.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사건을 넘겨 받아 이들의 고소 건을 검토한 종로경찰서는 최근 해당 사건을 각하 처리하고 ‘불송치’ 처분하기로 했다. 이 장관의 발언 대상이 ‘경기도민’ 또는 ‘서울시민’과 같이 막연하고 광범위해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경찰의 이같은 사건 처분에 반발한 이 사건 고소인들과 이들 고소인을 지원하는 북한 인권 단체 ‘사단법인 물망초재단’은 이날 종로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사건 처분 결과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밝혔다.

고소인 중 한 사람인 이동현 씨는 이 자리에서 “당시 통일부 장관 이인영이 국제 언론 앞에서 탈북민들의 증언에 신뢰성이 없어 다시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데 대해 3만5000여명 탈북민들의 심정을 대변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경찰은 이 장관 발언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고 막연하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씨는 “민중의 지팡이가 돼 주어야 할 경찰이 권력에는 무능하고 약자에게는 몽둥이가 돼서야 되겠느냐”며 경찰 처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선영 사단법인 물망초재단 이사장(前 국회의원)은 “(경찰은) 이 사건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실은 피해자가 특정됐다”며 “이 장관의 발언은 이들 탈북자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는 것으로써, 3만여명의 탈북자들 가운데 실제로 방송 등에 출연해 북한에서의 삶을 증언하는 이들은 20명 내지 30명으로써 5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우리 법원 판례를 보면 피해자가 50명 미만이면 특정이 되는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탈북민들의 고소 건에 대한 이의가 접수된 만큼, 개정 형사소송법·검찰청법 등에 근거해 경찰은 이 사건을 검찰로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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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 탈북민 4명이 이 장관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건에 대해 서울 종로경찰서는 최근 각하 처분을 하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기로 했다. 이들 고소인은 30일 종로경찰서에 이의를 제기했다. 2021. 4. 30. / 사진=박순종 기자

한편, 앞서 대법원은 이번 사건과 비슷한 사례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모욕’과 ‘무고’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은 전(前) 국회의원 강용석 변호사에 대해 지난 2014년 3월27일 대법원은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의 판결에서 ‘모욕’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방법원으로 환송(대법원 2011도15631)했다.

집단 표시에 의한 모욕이 집단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모욕죄를 구성하는 경우 및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한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집단표시에 의한 모욕은, 모욕의 내용이 집단에 속한 특정인에 대한 것이라고는 해석되기 힘들고, 집단표시에 의한 비난이 개별 구성원에 이르러서는 비난의 정도가 희석되어 구성원 개개인의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에 이르지 아니한 경우에는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모욕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봄이 원칙”이라며 강 변호사의 ‘아나운서 비하발언’으로 개별 구성원이 피해자로서 특정됐다고 볼 수 없으므로 죄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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