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재회 소장 임기 8년차에 '3년씩 3회 넘게 재임 불가' 정관 명시 요구
김기식, "북핵 탁상공론만 반복" "연구 안하고 20몇억을…" USKI 폄하 어록
정무위 민주당 간사로 2014년부터 문제제기, 20대 국회 이학영이 이어가
USKI 소장 교체시도 靑 개입설 부인…"홍 행정관측 심각하게 봐" 반박정황
'외유성 로비' 부인한 김기식, KIEP 유럽예산 3억 '17년 반영 부대의견 건의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사진=연합뉴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사진=연합뉴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9대 국회 정무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간사 시절인 2015년 5월말 피감기관이자, 국무총리실 산하에 있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예산 3000만여 원으로 다녀온 9박10일 해외 시찰이 다각도로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정무위원 김기식'이 한미연구소(USKI) 예산을 4000만원 삭감한 지 6개월여 만에 떠난 이 시찰 당시 미국에서 구재회 USKI 소장을 만나 2007년부터의 '장기 재직'을 문제삼은 정황이 드러났다. 북한 정권의 핵시설을 감시·보도하는 38노스(North)를 운영하는 USKI 활동이 "북한 문제 연구와 네트워크 활동에 너무 치우친 느낌"이라는 게 그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한다.

참여연대 핵심 출신인 김기식 금감원장은 KIEP 예산으로 다녀온 출장에 앞서, 2014년부터 정무위에서 "USKI에 예산만 지원할뿐 통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표적 공세를 벌여온 인물이다. 20대 국회에서 정무위 민주당 간사직을 물려받은 이학영 의원도 그와 똑같은 입장을 갖고 지난해 8월부터 구 소장의 장기 재직을 걸고 넘어졌다.

9일 동아일보는 "청와대가 미국 존스홉킨스대 USKI 구재회 소장 교체를 요구하고 20여억원 규모의 예산 지원 중단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김 원장이 2015년 5월 구 소장을 직접 만난 직후 '소장 임기는 3년으로 세 번 이상 재임할 수 없다는 내용을 연구소 정관에 명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당시 구 소장이 (2007년부터) 8년간 재직한 점을 감안하면 '1년 후에 사퇴하라'고 종용한 것"이라며 "지난달 정부 산하 KIEP가 USKI 소장 교체를 요구하고 예산지원 중단을 통보하기 3년 전에 김 원장이 비슷한 요구를 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동아일보는 "정무위가 KIEP로부터 제출받은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김 원장은 민주당 의원이던 2015년 5월26일(현지시간) KIEP 관계자들과 미 워싱턴의 USKI를 방문해 구 소장, 제니 타운 부소장, 칼 잭슨 교수를 만났다"며 "자유한국당이 '황제 출장'이라고 비판하는 그 출장 도중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때 김 원장은 "연구소가 북한 문제 연구와 네트워크 활동에 너무 치우친 느낌이다. 북핵 문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슈들을 적극 반영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USKI가 북핵 관련 오래된 이슈에 대한 평가와 탁상공론만을 반복하고 있다"고 폄하했다.

그는 특히 연구소 운영을 문제삼고, 구 소장과 38노스 운영자 조엘 위트 선임연구원을 직접 거명하며 "기본적으로 사람에 의해 프로그램이 좌우되거나 시스템이 흔들리는 구조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고 압박했다. USKI 관계자들과 면담한 후 김 원장은 KIEP 측에 소장 임기와 연임 회수 제한을 명시하는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김 원장은 2014~2015년 KIEP 예·결산 심사 과정에 "USKI가 한·미 관계, 한반도·북한 연구를 한다는데 사실 연구는 안 하면서 매년 20몇억을 주는 사업이 아니냐"며 "한국학 전공 학생들 네트워크 쪽으로 지원하는 게 낫다"고 운영 방향을 돌릴 것을 종용한 것으로도 나온다.

20대 국회 정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이학영 의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후원회장으로 있어 눈길을 끈다.
20대 국회 정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이학영 의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후원회장으로 있어 눈길을 끈다.

 

김 원장과 이학영 의원이 민주당 정무위 간사직을 갖고 USKI 예산 지원을 문제삼는 행보에 관해, 동아일보는 19대 국회 정무위 새누리당(현 한국당) 간사였던 김용태 의원과 통화에서 "김기식 의원이 하도 '우리 예산 20억원을 어떻게 썼는지, USKI가 내는 성과가 뭔지 알아야 한다'고 해서 KIEP가 참여하는 이사회를 구성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김용태 의원은 또 "이 의원이 정무위에 들어와서는 '회계보고서 등 각종 운영자료를 다 보고하라'고 했고, 이에 USKI는 '말이 되느냐'고 반발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에 관해 동아일보는 "외교 소식통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실세들과 친분이 있던 구 소장을 교체하려는 게 가장 큰 목적이라는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 로버트 갈루치 USKI 이사장과의 통화에서는 "한국 (문재인) 정부에서 '구 소장을 해임하라'는 많은 메시지를 받았으며 제니 타운 부소장 해임 요구도 있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보도했다.

구 소장은 하버드대 출신으로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입각을 시도했을 정도로 자타공인 보수 성향 인사로, 이명박 정부 실세로 꼽히던 이재오 전 의원과 막역한 사이라고 신문은 소개했다. 

청와대는 정무위 민주당 인사들과 같은 관점에서 USKI의 성과 폄훼에 앞장서면서도, 예산 지원 중단의 주도자(김 원장·이 의원)를 빼놓고 '여야 합의의 결과였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 차원 움직임에 관해서는 지난 8일 "청와대가 나서서 구 소장 교체를 요청한 사실이 없다. 이 문제는 국회의 문제제기에 따라 (KIEP) 관리 감독을 맡은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사연)가 진행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태호 청와대 통상비서관과 홍일표 선임행정관이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김준동 KIEP 부원장이 지난해 11월 2일 이 비서관과 홍 행정관에게 보고하겠다고 왔다. 두 사람이 별도로 지시를 내린 건 없다"고 했다. 홍 행정관은 김 원장과 같은 참여연대 출신이며, 의원실 보좌관을 지냈다.

이런 가운데 USKI 측이 언론에 공개한 김준동 KIEP 부원장의 이메일("11월 2일 KEI와 USKI와 관련해 (청와대의) 이태호 통상비서관과 정책실장실 홍일표 행정관에게 USKI에 대해 보고할 예정이며 홍 행정관 측은 이 사안을 굉장히 심각하게 보고 있고 과감한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한다")에선 개입 흔적이 역력하다고 9일 중앙일보가 지적했다.

이 신문은 구 소장이 7일(현지시간) 통화에서 "지난해 이 의원이 국회 예·결산 심사 과정에 '인적 개혁'을 요구하기 전 홍 행정관과 이 의원 보좌관이 이미 사전 협의한 증거들을 갖고 있다"고 발언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김 원장의 '황제 출장' 파문이 친북성향 민주당과 정권 차원의 대북(對北)연구소 공격 의혹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한편 김 원장은 이처럼 USKI 운영에 적극 개입하면서도 KIEP에는 '황제 출장' 이후 약 3억원의 예산을 추가 확보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출장이 '외유성 로비' 성격이 있다고 논란이 되자 김 원장은 8일 금감원 공보실을 통해 "현장점검 이후 KIEP가 추진했던 유럽사무소 신설에 대해 준비 부족이라고 판단해 유럽사무소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며 "관련 기관에 대해 오해를 살 만한 혜택을 준 사실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청와대 측도 “김 원장이 유럽을 방문한 것은 유럽지부를 설립하려는 KIEP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으나, 실제 출장을 다녀온 뒤에는 유럽지부 설립이 필요 없다고 판단해 비토권(거부권)을 행사했다"고 대변했다.

그러나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김 원장은 출장 약 5달 뒤인 2015년 10월 26일 정무위 예산결산심사소위 회의에서 "저는 작년 예산심사 때부터, 결산 때도 그랬지만 (KIEP) 유럽사무소를 만들어야 됩니다, 연구기관 차원에서"라며 "EU와 관련해서 뭔가 우리가 여러가지 노력을 해야 되는데 그 중에서도 국책연구기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 위원회 부대의견으로 KIEP를 주관으로 하는 유럽사무소 설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을 저희 부대의견으로 해서 넘기는 것으로 하고, 내년에는 예산을 반영하고 그 운영계획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좀 검토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무위는 2016년 예산안 예비심사보고서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유럽사무소 설립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해 2017년도 예산안 편성 시 반영할 것'이라는 부대의견을 달아 국회 예산결산특위로 넘겼고, '16년 10월 '유럽 현지 모니터링 사업'이란 명목으로 2억9300만원가량이 이듬해 예산안에 반영됐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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